생애주기의 재테크 특성
처음엔 드라마 제목이 너무 거창했다.
'다큐멘터리인가?'
최근에 시작한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제목 자체가 단순하고 무미건조하다. 제목만 보면 어떤 감흥이 별로 기대되지 않는다. 드라마 사극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진부한 선입관도 한 몫했고 역사의 결말을 교과서에서 언뜻 배웠기에 다 아는 내용인데.. 하는 식상함도 있었다.
그런데 보다 보니 제법 재미있다. 넷플릭스에서도 상영되니 그냥 KBS 사극 이상으로 보이는 착시 현상까지 더해진다. 아무튼 따로 챙겨보는 즐거움이 생겼다.
여러 스토리 중 흥화진 전투가 감동이다. 거란의 40만 대군에 맞서는 흥화진 전투는 TV화면 속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흡입력 있게 장렬히 묘사된다. 흥화진은 작은 성이지만 길목을 지키는 요새다. 양규 장군은 소수의 병력으로 마침내 성을 지켜낸다.
일단 양규 장군의 용맹함과 카리스마는 감탄하며..
그 승리의 이면에 있는 공성전(攻城戰)과 수성전(守城戰)의 개념을 생각해 본다. 특히 인생 재테크 관점에서 그렇다.
흔히 성을 공격하는 공성전은 수비하는 병력대비 몇 배 이상의 병력이 필요하다. 손자병법에도 성을 공격하려면 최소 3개월의 철저한 준비기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요새화된 성을 공략한다는 것은 많은 피해를 감수하고 병력과 물자 그리고 시간을 지속적으로 투입해야 한다.
반대로 수성전은 입지가 좋은 곳에서 방어가 유리한 위치와 길목을 미리 지킨다. 유리한 곳에서 적을 기다릴 수 있다. 공격하는 편보다 매우 적은 자원으로 방어가 가능한 이유다. 단 후방으로부터 지원이 계속되어야 승리할 수 있다.
얼마 전 통계청이 2021년 국민이전계정을 발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적 인생은 27세에 '흑자주기'로 진입하고 61세에 다시 '적자주기'로 진입한다. 돈 버는 시기는 누구나 27세 이후 길어야 30년이라는 통계치다. 즉 인생주기로 보면 60세까지는 돈을 벌기 위한 '공성전'이 필요하고 60세 이후에는 적자를 버텨내는 '수성전'이 필요한 셈이다.
50대를 넘어서면 슬슬 그동안의 '공성전' 결과인 자산 성적표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마음이 조급해질 수 있다. 50대는 오히려 '수성전'으로 태세 전환을 준비할 시기다. 아쉬움에 무리한 공성전을 펼칠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그리 간단치가 않다. 과거의 아쉬움과 다가올 걱정으로 고민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뭔가 더 준비해야 하는데..'
주말 아침 이런 고민 속에 아내와 커피 한 잔 나누며 이야기를 나눈다.
"내가 3,40대 나이에 부동산에 더 공격적으로 투자해야 했을까?"
"직장 다니며 당신만의 '투자 프로젝트'들 많이 했잖아.. 망하지 않은 게 다행이지."
"이제 방어 태세로 수성으로 들어가기엔.. 뭔가 부족하고 불안해서 그렇지."
"그렇다고 공성전? 그건 지금보다 몇 배의 자원이 더 필요하다며."
부동산 투자는 투자 종목 중 가장 많은 자원이 투입된다. 생활비를 제외한 여유자금과 함께 내 돈보다 몇 배 큰 대출금까지 동반된다. 그리고 실패 경험 없이 선구안을 키우기 어렵다. 그리고 수익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사실 돈보다 시간 투자의 영역이 더 많다.
'이렇게 어려운데.. 부동산이란 요새를 단번에 정복하는 특출한 비법은 없을까?'
없다. 발견하지 못했다. 어찌 보면 단순 무식하다. 성문이 열릴 때까지 약한 곳을 찾아 꾸준히 자원을 투입하고 지치지 않게 스스로의 사기를 진작해야 한다. 부동산은 속전속결이 거의 불가능하다. 경험상 인내심과 자기 관리능력이 더 중요하다.
시행착오 끝에 몇 개의 작은 성들을 정복하기만 하면 방어는 훨씬 쉽다. 남들보다 입지 좋은 곳을 미리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스크가 어디에서 오는지 루트도 미리 알기에 훨씬 적은 자원으로 대비할 수 있다. 그리고 정복한 그 성에서 '시세차익'이나 '현금흐름'이라는 형태로 힘이 비축되고 다시 성밖으로 나갈 여력이 생겨난다.
이건 누구도 생애주기에서 피할 수 없는 전투다. 다만 조금이라도 젊을 때 각자의 공성전을 미리 준비할 수밖에 없다. 아무튼 나는 생애주기상 이쯤에서 주섬주섬 수성전에 대비해야 한다. 머리 아픈 주제지만 이런 생각이나 탐색하는 과정 자체를 좋아하니 그나마 다행일 뿐이다.
나는 그렇다 쳐도.. 우리 아들은 어떨까? 젊어서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할까.. 이 생애주기의 전투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아빠, 나 올해 연봉이 좀 올랐는데.. 차 바꾸면 한심할까요?"
"... 그게 진정 네가 정복하고 싶은 성인가?"
"정복하는 성이 아니라 차요. 전기차.."
"아직 너에게 비싸지 않니?"
아들이 나를 보더니 진지하게 말했다.
"아버지.. 병들어 가는 지구 환경을 먼저 생각해야죠."
지구를 지킨다.. 그건 그래야지. 그럼 이제 성벽을 기어오르고 망루를 사수하는 비장한 공성전이나 수성전은 나만의 레트로 감성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