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중요한 결정은 뭘까?
지방의 미분양된 아파트 분양권을 '줍줍'으로 매수한 지 2년이 지났다. 입주가 다가온다. 이 겨울이 지나고 내년 봄이면 입주가 시작된다.
며칠 전 사전점검이 있어 KTX를 타고 2시간을 이동해 남쪽으로 내려갔다. 거의 완성된 아파트 단지를 구경하고 세대 내 하자 여부를 점검하는 첫날이다.
기대했던 대로 거실에서의 조망은 '뻥 뷰'로 거침없이 트였고 적당한 거리에서 KTX 역사와 공원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전용 84 제곱 내부 구조가 시원하게 잘 빠졌고 기본 천정고가 2.4m라 40평대 느낌이 든다. 1,000세대가 넘는 대단지는 멋진 조경과 최신 커뮤니티 시설을 자랑한다.
"참 좋다~ 가격도 정말 착하고~"
여기 분양가는 3억 중반이다. 완공을 앞두고 프리미엄은 없다. 대신 마이너스 P가 많다.
이곳은 역세권 택지지구 '분양가 상한제'라 기존 시내 아파트 가격보다 20%가 저렴했다. 그렇지만 초기 신도시가 다 그렇듯.. 주변 편의 시설들이 아직 없고 초등학교도 공사 중이라 개교가 입주 1년 후에나 가능하다. 한마디로 당분간 황량한 역세권 벌판에 아파트만 순차적으로 들어서게 된다.
'뭐 처음부터 예상은 했지만, 결국..'
사실 2년 전에도 이렇게 될 거 알면서도 결정했다. 부동산 투자는 '좋아질 입지를 보고 장기 투자하는 거야'라고 아내에게 큰소리치며 뛰어들었다. 하지만 눈앞에 '장기 투자'란 현타를 맞으니 생각이 많아진다.
'개발 속도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 희망고문이었다. 모든 게 늘 예상보다 더디다.'
그런데,
아파트 자체는 신축 상품으로 필요한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어 가성비가 좋다. 이게 만약 수도권에 들어선다면 이 가격에는 어림도 없다. 수도권 외곽도 전용 84 제곱 분양가는 6억에서 시작한다. 여기는 반값이다.
물론 이곳이 수도권 아파트와 경쟁하는 건 아니다. 가까운 기존 시내 지역 그리고 인근 지방 대도시와 경쟁하는 입지다. 수도권에 비해 참 싸다는 '착시현상'때문에 내 판단이 오염되었을까?
그럼에도 지금 타이밍은 마이너스 P로 매도할 시기는 아니다. 가능하다면 일정 기간 내려와 살아도 보고 싶다. 이건 내 고질병일까? 함께 온 아내에게 물었다.
"와.. 지금이 무리해서 팔 때인가? 아님 보유하고 기다릴 때인가?"
"반성할 때이다."
"미국 주식과 비교하면 이게 투자 수익이 더 좋을까?"
"성공하면 투자! 실패하면 투기! 아니겠어?"
나는 성공적인 투자를 원한다. 조금이라도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투자 공식에서 중요한 변수는 투입되는 시간의 양이다. 즉 부동산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돈보다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이다. '시간'이라는 땔감을 더 집어넣고 아침이 오는 것을 기다려 보는 것이다.
그 땔감이 공짜는 아니다. 그래도 경험상 입지와 상품이 괜찮다면 시간이란 매직이 '판단 실수'를 어느 정도 희석시켜 줄 수 있다.
얼마 전까지 허허벌판이었던 곳에 멋진 새 아파트라는 주거공간, 새로운 도시가 창조되었다. 그날 내 머릿속은 어수선한 정보들과 미래 고민들로 꽤 분주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인간은 하루 최대 3만 5천 개의 의사결정 상황에 노출된다고 한다.
아마 이날은 5만 개 이상의 의사결정 상황에 놓였던 거 같다. 돌아오는 KTX 안에서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머릿속의 신경망은 사냥꾼같이 바짝 곤두서고 깨어있었다.
결국 기차에서 내려 저녁 메뉴를 뭘로 할까 고민조차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이런 수고스러움.. 미래에 대한 탐색들을 피해 간다면..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런 과정들이 모여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면.. 그게 나만의 고유한 생존방식이 될 수 있다. 이건 매우 중요한 의사 결정 사항이다.
그래서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고민은 또 내일 하기로 한다.
존 레넌의 노래 'One day at a time'을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