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한강갑문 인증센터. 학생들은 서쪽 인천공항 방향을 향해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자전거여행을 하는 동안 윗학년 학생들은 호주에서 '나아가기여행'이라는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그 윗학년이 돌아오는 날이었던 것이다. 사실 학생 중 한 명이 제안을 하기도 했다. 인천 바로 옆에 있으니 공항으로 마중을 나가면 어떻겠느냐는. 오, 정말 괜찮은 생각인데. 나는 바로 계산을 해봤다.
A: 자전거로 마지막 인증센터까지 찍고 오는 시간(왕복)
B: (자전거를 끌고 공항으로 갈 수는 없으니) 자전거를 세워둘 위치
C: 공항으로 가는 대중교통 시간(왕복)
D: 인사와 기념촬영
E: 두 여행팀이 한 장소에 모이는 역사적인(!) 순간의 의미
A + B + C + D + E = 답 없음
답이 안 나오는 일정이었다. 완주를 포기하면 가능했다. 배웅 나가자고 완주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우리는 종주를 해내는 게 최종 목적이니까. 이런 연유로 우리는 인천공항 방향을 향해서 비행기가 오는 시간을 맞춰서 손을 흔들고 있던 것이다.
육안으로 보이는 비행기는 상당히 작았다. 거의 점 수준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어떤 점이 윗학년이 탄 비행기인지도 모르는 상황. 나는 우리가 인사를 했다는 것을 증거로 남기기 위해 영상을 찍었다. 학생들은 비행기가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물었다. 어떤 항공사인지. 학생들이 아는 항공사 이름이 하나씩 나왔다. 물론 다 빗나갔다. 선배 중 어떤 형이 코를 파는 게 보인다고도 했다. 인사를 마친 우리는 서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마지막 인증센터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빨리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에 조급해져서 그런가 누군가가 길을 늘여놓은 것 같았다. 그러니까 우리를 고무줄 위를 달리고 있는 개미라고 친다면 누군가가 고무줄을 쭉 늘여버린 것 같달까. 끝은 분명 날 건데 끝이 안 보이는 것 같은 착각. 저 멀리 풍력 발전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진짜 마지막 관문이 보인다. 처음 부산에서 출발할 때처럼 아치형으로 세워진 관문이었다. 그 관문을 통과하면 종주가 끝난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인증센터에 도장을 찍을 것이고 수첩을 들고 가서 '우리가 (국토종주를 해낸) 이런 사람들입니다'라고 보여줄 차례였다.
달팽이 선생님이 관문 앞에서 영상을 찍으면서 동시에 하이파이브를 위한 준비를 하고 계셨다. 학생들은 들어가면서 하이파이브! 나는 뒤따르면서 그 장면들을 영상으로 남겼다. 드디어 마지막 관문 통과! 들리지 않는 환호성과 박수가 들렸다. 첫날은 외롭고 무릎은 시큰했으나 마지막날은 외롭지 않았지만 무릎은 여전히 시큰했다. 학생들을 챙기는 것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끝을 본 것이다. (물론 수원까지 가야 하는 일정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수첩에 도장을 찍고는 어떤 사람들인지 보여주고자 아라타워로 이동했다. 종주 증명서를 발급해 주는 곳이 그 안에 있었다. 아, 그런데 점심시간이었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쉬는 시간을 가졌다. 긴장이 풀려서인가 졸음이 밀려왔다. 나는 따로 할 일이 하나 더 있었다. 아이스크림 약속을 지켜야 했다. 왠지 소프트콘 같은 것을 파는 아이스크림 트럭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었는데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내가 아이스크림 장사를 해도 거기는 안 갔을 것 같다. 생각보다 너무 한적해서. 하는 수 없이 가장 가까운 편의점으로 향했다. 영종대교 휴게소까지 10분 거리를 왕복해서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왔다.
점심시간이 끝났다. 우리는 한 명씩 수첩을 내밀고 국토종주 인증 스티커를 받았다. 인증수첩 뒤편에 스티커를 붙이는 곳이 따로 있었다. 스티커는 금빛이었다. 금빛. 노력과 성취를 인정해 주는 빛깔. 인증서와 메달도 주문했다. 이제 돌아갈 일만 남았다. 우리 모두는 왔던 길을 되짚어 여의도 쪽으로 돌아갔다. 아, 돌아간 후에 해야 할 아주 중요한 일이 있었다.
우리 모두의 성취를 기념하기 위해서 고기를 구웠다. 마침 숙소 근처에 맛집이라고 평점이 좋은 곳이 있길래 갔는데 정말 그랬다. 삼겹살에 김치에 (여행길 당 충전 동반자였던) 콜라에... 마음껏 먹으라고 했다. 먹고 싶은 만큼. 그만큼 수고가 많았고 그럴 자격이 있었다. 모두가. 우리끼리의 단출한 (하지만 배부른!) 잔치를 한 셈이다. 이 식사로 우리는 그날 일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제 남은 것은 수원까지. 여행의 마지막 한 조각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