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 아침 우리를 맞이한 건 비였다. 왜 하필 마지막 날인가 싶으면서도 차라리 마지막 날이어서 잘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를 쫄딱 맞고 나면 무엇보다 빨래가 문제니까. 그 많은 빨래를 돌리는 것도 문제 그리고 그리고 그 빨래들을 다음 날 출발 전에 건조하는 건 더 문제. 집에 가서들 돌리면 되니까 정말 다행이었다. 숙소에서 최종 목적지인 수원까지 약 40km. 안양천을 따라 계속 내려가는 경로였다. 중간에 쉬는 시간까지 생각한다면 3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 이제 정말로 끝이구나. 점심때쯤에는 도착하게 될 터였다.
학생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부모님들께 미리 연락을 받은 게 있었다. 우리가 도착할 때쯤 점심으로 치킨을 준비해 놓겠다고 하셨다. 빗길을 달려야 했고, 마지막 구간이었기 때문에 바짝 긴장을 해야 했다. 그래서 얘기를 안 했다. 괜히 치킨 생각하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여행 마무리가 엉망이 될 수 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정도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은데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어쨌든 끝낼 때 더 조심해야 하는 건 맞는 것이니.
안양천 옆을 따라 달리는 건 순조로운 편이었다. 비가 오고 있었기에 산책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잠깐 쉬는데 한 아주머니가 안타깝다는 듯 비를 맞으면서 가느냐고 얘기를 꺼내셨는데 수원으로 간다고 동문서답을 했다. 아무리 자전거길이 있어도 전 날까지 달린 구간만은 못했다.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고, 계단을 올라야 했고, 길을 찾느라 헤매야 했다. 한 번은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오른쪽으로 큰 화물 트럭들이 일렬로 주차되어 있었다. 우리 중 일부는 그 트럭 앞에 서서 신호를 기다렸다.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여기가 트럭이 이렇게 주차되어 있을 곳인가. 왼쪽 위에 있는 신호등을 보고 나서 나는 빨리들 인도로 올라오라고 했다. 그 트럭들은 신호대기 중이었는데 워낙 크고 또 일렬로 서 있다 보니 도로가 아닌 주차공간이라고 착각을 한 것이다.
마지막 구간이라 그런지 괜히 더 길게 느껴졌다. 분명 가까워져 가기는 하는데. 마음이 급해서 그랬을까. 끝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어느덧 우리는 의왕에 진입했다. 의왕호수공원은 우리가 봄에 자전거 타기 연습을 하면서 다녀왔던 곳이다. 거기서 학교까지는 10km 정도. 이제 정말 다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 있는 동네처럼 오가던 곳이니까.
최종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긴장되기 시작했다. 뭐가 그리 긴장됐을까. 매일 등하교하고 출퇴근하는 곳이었는데. 깃발이라도 달거나 혹은 이마에라도 붙이고 싶었다. 우리는 부산부터 여기까지 왔다고. 인천도 찍고 오는 거라고. 누군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무언가를 해냈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그 사실을 누군가가 알아주는 것. 누군가가 이름을 불러줘야 내가 그 존재가 되는 것처럼 누군가가 알아줘야 우리가 해낸 것들의 가치가 인정받는 것 같다.
이제 5분 거리. 진짜 다 왔다. 목적지가 지척에 가까워졌을 때 나와 계시던 몇몇 부모님께서 앞에서 영상을 찍고 계셨다. 나도 마지막 도착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자전거를 천천히 몰면서 영상을 찍었다. 한 명씩 도착. 드디어 도착. 우리는 국토종주를 완료했고 최종 목적지까지도 모두 무사히 닿았다. 모여서 한 명씩 이름을 부르면서 수고했다는 박수를 쳤다. 그러다가 갑자기 목이 메었다. 뭘까. 뭐라고 해야 할까. 아이들에 대한 대견함. 긴 과정을 해냈다는 것에 대한 감동. 이런 것들이 뒤섞인 것 같다. 자, 이제 우리를 기다리는 치킨을 만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