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는 분들에게
첫 문장부터 이렇게 써서 미안합니다만 우울을 극복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희망을 빼앗자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제가 이렇게 쓴 이유가 있습니다. '극복'을 쉽게 표현하면 '이겨내다'일 겁니다. 더 정확히는 곤란, 곤경을 이겨낸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우울을 극복한다는 건 우울을 이겨낸다는 뜻이 될 겁니다. 우울은 이겨낼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에요. 아니, 이기고 말고 할 대상이 아니라고 해야 맞을 겁니다.
우울을 이겨내려고 하는 모습을 이렇게 비유할 수 있어요. 차를 타고 가다가 기름이 떨어지면 주유등이 들어오잖아요? 주유등 들어오면 우리는 가까운 주유소를 찾습니다. 기름을 넣으면 주유등이 꺼져요. 이런 사람은 못 봤을 겁니다. 주유등을 끄려고 계기판을 툭툭 두드리거나 발로 차거나 하는 사람. 혹은 등이 빨리 꺼지라고 고 중얼거리는 사람. 운전자가 이러면 얼른 내려야죠.
그런데 이런 사람은 많이 봤을 겁니다. '우울'이라는 감정이 올라왔는데 그 감정을 없애고 누르려고 하는 사람.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자신이 그랬을 수도 있어요. 저도 우울이 올라오면 꾹꾹 눌러 없애려고 애썼고 혹은 사라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결과는? 당연히 안 사라졌어요. 시간이 가면서 자연스레 풀어지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해결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다시 우울이 올라오면 같은 상황이 반복됐으니까요.
기쁨, 슬픔, 즐거움, 외로움, 만족감, 서운함처럼 우울도 여러 감정 중 하나예요. 감정 자체를 없애는 게 가능할까요? 불가능하죠. 그래서 첫 문장에서 우울을 극복하는(이겨내는) 방법은 없다고 썼습니다. 결국은 감정을 없애자는 거니까요. 그럼 우울이 올라왔을 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각 감정은 신호입니다. 대학이든 회사든 합격 소식을 들으면 기쁨이 올라와요. 합격 소식을 '인지'하면서 만족감, 편안함, 자신감 등을 느낄 것이고 동시에 기쁨이 온몸에 가득 찰 겁니다. 발걸음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뭔가로 가득 채워진 것 같고 손놀림은 바빠지죠. 이 좋은 소식을 가족이든 친구든 전해야 하니까. 이런 때 한 턱 내라고 하면 쏠 가능성이 99% 일 겁니다. (전화를 바로 끊을 가능성 1%는 남겨두는 걸로) 기쁨은 무언가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입니다.
이제 반대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불합격입니다. 불만족, 불안, 허탈, 자괴감 등을 느낄 것이고 손끝부터 발끝까지 우울로 가득 찹니다. 발걸음은 천근만근이고 마음은 공허합니다. 집에 있는 경우라면 바로 침대로 직행이죠. 핸드폰은 조용합니다. 가족이든 친구든 먼저 연락을 해서 물어보지는 않을 거예요. 눈치 없는 친구가 전화로 캐묻다가는 욕을 바가지로 먹을 가능성이 99%입니다. (전화 바로 끊을 가능성 1%는 똑같이 남겨두는 걸로) 우울은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려주는 강력한 신호입니다. 그러니까 뭔가 자신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거죠.
그렇다면 우울이 올라왔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일단 멈춥니다. 자신을 재촉하거나 우울을 누르려고 하지 않아요. 대신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뭔가 힘들구나.
뭔가 잘 안 풀리나 보다.
고생이 많다.
위로가 필요하구나.
스스로를 공격하는 모든 말도 내려놓습니다. 괜찮다고 다독이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위에 쓴 것처럼 '우울'은 신호예요. 그런데 이 신호 뒷면을 보면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너 잠깐 멈춰서 스스로 좀 돌봐야 돼.
보통 우울과 한 묶음으로 오는 게 무기력일 겁니다. 지금 저는 무기력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아요. (예전에는 우울, 무기력을 싸잡아서 내다 버리고 싶었는데) 무기력 뒷면을 보면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힘 다 빼놓을 테니까 더 나대지 말고 스스로 좀 돌봐라 좀.
그래서 저는 뒷면에 쓰여 있는 말대로 합니다. 왜 멈추라고 신호가 올라왔는지,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이었는지 되짚어 보기도 하고 평소 먹고 싶었던 것을 사 먹기도 합니다. 그리고 주변 누군가에게 털어놓기도 해요. 무엇이 속상했는지 말하기도 하고 그냥 우울한데 위로 좀 해달라고 하기도 합니다. 말이라는 게 그 자체에 힘이 있는 것이라 "속상했구나", "그래서 우울했구나"라는 말 한마디만으로 마음이 풀리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우울이라는 주유등이 켜지면 위안, 위로, 공감의 주유소를 찾는 셈이죠.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누군가에게 다짜고짜 그냥 저 말을 해 달라고 부탁해도 도움이 됩니다. 진짜예요. 그게 말 자체의 힘입니다.)
우울은 단지 여러 감정 중 하나였고 자신을 돌보라는 신호라는 것을 알아챈 것은 몇 년 안 됐습니다. 그전까지는 우울이 올라오면 거기에 끌려다녔습니다. 그 감정을 부정하려고 했고 없애려고 했으며 자신의 부족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마치 주유등을 발로 차서 끄려고 하는 것처럼 그랬습니다.
'우울증 경력자'로서 과거의 저처럼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오기를 무수히 반복하며 괴로워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꾹꾹 눌러 담아서 이 글을 남깁니다.
우울은 신호일뿐입니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려는 내면의 노력이에요. 그러니까 이 감정, 너무 미워하지는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