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去后悔, 去更后悔。
안 가면 후회하는데 가면 더 후회한다.
2005년 7월 21일. 실크로드. 란저우(兰州). 목적지는 병령사 석굴. 버스 안에서 지도를 펼쳐 들고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 이유는 이렇다.
내가 가야 하는 곳은 유가협. 버스를 타면서 기사에게 물었다.
"이 버스가 유가..."
맨 마지막 글자는 중국어 발음을 몰라서 앞의 두 글자만 말하니 기사가 물었다.
"유가... 가는 거?"
"맞아요."
나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비는 1원. 그 당시 우리나라 돈으로 치자면 150원 정도. 계획이 순조롭게 착착 진행되는구나. 기분 좋게 감자를 한 입 베어 물고 차창 밖을 내다봤다. 그렇게 반쯤을 갔을까. 뭔가 이상했다. 방향이 아닌 것 같은데. 혹시나 해서 지도를 펼쳤다. 아뿔싸. 정반대 방향이잖아.
내 목적지는 유가협(刘家峡)인데 기사가 이해한 곳은 유가보(刘家堡). 공교롭게도 앞의 두 글자가 똑같아서 별 의심을 안 했던 것. 버스는 황하를 건너 종점에 도착했다.
길 한가운데서 지도를 펼쳐 들었다. 정말 막막했다. 숙소에 제때 돌아갈 수는 있으려나. 나는 버스를 타고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일단 그곳으로 가서 다시 되짚어가자는 생각이었다.
출발지였던 기차역에서 내린 후 소형 버스들이 대기하는 곳으로 가서 인상 좋은 버스기사에게 유가협에 어떻게 가는지 물었다. 그 버스기사가 매표원과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주고받다가 나한테 올라타란다. 일단 탔다.
두 사람은 대화를 하다가 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아니란다. 나는 이미 익숙했다. 누가 그랬는데. 내 외모가 중국 남동쪽이라나. 덧붙여 얘기를 하나 하자면 길림 쪽 여행하다가 조선족 아주머니한테 칭찬도 들었다. 한국말 잘한다고.
기사는 나를 자신의 옆자리에 앉히더니 내릴 때가 되면 알려준단다. 너무 늦으면 어떡하지. 버스 끊기면 나 못 돌아오는데. 버스는 황하를 건너기 직전 멈췄다. 기사가 말했다. 다리 아래로 내려가면 유가협으로 가는 버스가 올 거라고. 그리고 혼자 다니는 여행길이니 조심하라는 말도 덧붙여줬다. 너무나 고마웠다.
다리 아래로 내려가니 여러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됐다. 남은 감자를 꺼내서 배를 채웠다. 오전 9시 54분. 버스가 왔다. 유가협으로 간다는 목소리. 두 시간 걸린다고 한다. 그렇게 가까운 건 아니었구나.
12시 30분. 유가협에 도착했다. 이제 병령사 석굴까지만 가면 되는데. 문제가 생겼다. 배를 타야 갈 수 있었다. 배 종류는 두 가지. 모터보트는 왕복으로 세 시간. 보통 배는 왕복으로 여섯 시간. 이렇게 되면 란저우에 있는 숙소까지 못 돌아가는데. 그래도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목적지를 앞에 두고.
큰 호수를 쳐다보면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현지 사람이 한 마디 해줬다.
여기 사람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있어. 不去后悔, 去更后悔。(안 가면 후회하는데 가면 더 후회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결심했다. 그래. 숙소에는 돌아갈 수 있어야지. 여기서 묵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시간도 너무 부족할 것 같고. 나는 병령사 석굴을 포기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깨달음이 왔다. 그 말은 거기 사람들 말이었잖아. 거기 사는 사람들이야 사실 바로 옆에 있는 곳이라(중국에서 두 시간이면 가까운 편) 기회는 항상 있다. 그리고 가까이 있으니 그 소중함도 크게 다가오지 않을 거다. (멀어져야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게 사람 관계만이 아닌가 보다.) 나라도 거기 사람이었다면 그랬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현지 사람이 아니었다. 정말 마음 독하게 먹거나 정말 가봐야 할 어떤 상황이 아니라면 다시 갈 일이 없다. 어쩌면 그때가 마지막 기회였을 것이다.
그 후로 나는 여행을 가서 어딘가 갈까 말까 고민이 되면 그때 일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 기회가 또 올 것인가 말 것인가 생각해 보고 결정을 내린다. 그때 병령사 석굴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생각의 이정표를 하나 얻은 것 같달까. 이 정도면 충분한 수확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