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서쪽 끝에 카슈가르라는 곳이 있다. 중국 영토 내 실크로드 마지막 도시다. 그곳에서 서쪽으로 더 가면 카라쿨 호수라는 곳이 있다. 해발이 높은 곳이다 보니 구름은 가까워 보이고 해 질 녘에는 주변 눈 덮인 산이 금빛이다. 본래는 카슈가르가 실크로드 여행의 종착지였지만, '언제 또 가 보겠나' 생각하면서 내친김에 간 곳이다. 그곳의 풍경도 좋았지만 사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고산병이다.
고산병. 말로만 들어봤지 겪은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게 고산병인 줄도 몰랐다. 호수 주변을 산책하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슬슬 두통이 오기 시작했고 조금 있다가 속이 메슥거렸다.
체했나.
뭘 잘못 먹었나.
산책을 끝내고 그날 묵기로 한 민가로 들어가서 누웠다. 두통도 나랑 같이 누웠다. 저녁식사가 나왔는데 영 못 먹겠는 것을 억지로 먹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다. 두통도 그대로 속이 안 좋은 것도 그대로. 민박집주인 오토바이 뒤에 앉아서 버스 타는 곳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그대로.
버스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카슈가르로 돌아가면 뭔가 수가 있겠지. 버스가 왔다. 만석이었다. 갔다. 1시간 정도 후에 버스가 또 왔다. 또 만석이었다. 그렇게 몇 대를 보내고 나니 정말 환장하는 줄 알았다. 돌아갈 수는 있는 것인가. 그렇게 지쳐갈 무렵. 반가운 '소식'이 다가왔다. 택시였다. 그리고 또 '반가운 이들'이 보였다. 영국인 여행자 세 명. 나는 혼자. 네 명이면 택시는 출발할 수 있다!
택시를 타고 카슈가르로 향하면서 기사에게 내 증상을 말했더니 대번에 고산병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평지에 가깝게 내려가면 바로 나을 거란다.
아하, 이게 그거였구나.
평지에 거의 도착할 무렵. 택시에서 내리기도 전. 두통과 메슥거림이 바로 사라졌다. 그때 그 신기함이란. 만약 내가 카라쿨 호수까지 버스가 아닌 자전거를 타고 갔다면, 어쩌면 고산병 증세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해발이 높아질수록 산소 농도가 떨어지는데 몸이 차근차근 적응을 하면서 올라갔을 테니 말이다.
최근 '실패'를 여러 형태로 정의해 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문득 실패와 고산병이 연결됐다. 내가 생각한 닮은 점은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높은 고도까지 급히 올라가는 것은 조바심 내어 급하게 무언가 성취를 이루려 하는 모습과 닮았다. 급하게 하면 분명 놓치는 게 생기고 실수나 실패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두 번째, 고지대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는 상태와 실패한 사실 자체에만 빠져드는 것은 닮았다. 두통이나 소화불량 같은 증세가 올라오듯이 자책감과 자괴감이 온몸을 덮을 것이다. 세 번째, 일정 고도로 내려오면 증세가 씻은 듯 사라지는 것처럼 실패에서 한 발짝 물러나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기 시작한다면 자괴감이나 자기 비하는 사라질 것이다. 결국 실패를 괴로워하는 모습은,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 있었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실패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뒤로 숨어있는 자신의 진심이다.
내가 또 고산병을 겪을 일이 이후에 또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실패를 겪을 가능성은 거의 99%다. 세상에는 내가 아직 모르는 것들이 많다. 그 모르는 것에 도전했을 때 실패 가능성은 당연히 높아진다. 여기서 한 가지 내가 명심해야 할 것은, 조급하고 조바심을 내면 분명 무언가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차근차근 짚어 올라간다면 '고산병 증세'는 없거나 약할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보니 고산병과 실패가 참 많이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