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6일 목요일 오후 4시경. 나는 자전거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 쪽으로 국토 종주를 하는 중이었다. 날이 너무나 좋았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았다. 하늘도 멋졌다.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구름이 가득했다. 마주 오는 바람은 시원했다. 이런 풍경에서 자전거를 타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국토 종주 출발점인 낙동강 하굿둑에서 출발한 지 4시간 정도 지난 때였다. 첫날 숙소 위치는 밀양 어디인가였는데 절반 정도 달렸을 것이다. 마흔을 넘어선 내가 자전거 여행을 할 수 있게 됐다니. 이런 기회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것도 16박 17일이라니.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 글을 읽고 있는 이들 10명 중 8명은 나를 부러워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10명 중 2명은 집에 있는 걸 더 좋아할 것 같다. 물론 집에서 누군가(들)를 다 내보낸 후에.)
사실 나는 혼자 여행을 간 게 아니었다. 그런데 자전거를 혼자서 타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뒤처졌다. 그것도 아주 많이. 간략하게 설명을 하겠다. 나는 대안학교 교사다. 2023년에 16살(중학교 3학년) 학생 6명의 담임을 맡게 됐다. 3학년 가을에는 긴 여행을 떠나는데 자전거 국토종주를 하는 것으로 결정이 난 것이다. 학생 6명과 보조 선생님 1명 그리고 나. 모두 다 해서 8명. 출발은 같이 했다. 그런데 나는 점점 뒤처졌다. 앞서 간 7명은 그림자도 안 보였다.
아, 자신 있었는데. 25살 무렵에는 배낭까지 짊어지고 일주일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었는데. 뒤처지기 전까지는 학생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사명감과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그 힘으로 자전거를 몰았고, 앞서 가서 학생들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여행 다큐멘터리를 위한) 영상을 찍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인가부터 내 몸에서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너 무리하고 있다고. 뭐야. 첫날인데. 그것도 출발한 지 이제 2~3시간 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 신호를 보내? 신호의 발원지는 무릎이었다. 더 정확히는 양쪽 무릎의 위쪽 근육. 시큰한 느낌이 무릎을 타고 머리로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뒤처지기 시작했다. 학생들을 앞서 보내고 맨 마지막 학생의 등을 보면서 달렸다. 그 학생의 등판이 작아지는 만큼 걱정은 커졌다. 첫날부터 이렇다면 마지막까지 갈 수 있을까. 내 무릎이 버텨줄까. 나는 완주할 수 있을까. 다들 나보다 잘 탔다. 학생들을 걱정할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여행을 가기 약 3개월 전. 부모님들께 자전거 여행 준비에 대해 발표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학생들은 여행 경로, 숙소, 각자의 자전거, 여행 문집, 여행 다큐멘터리 계획을 소개했다. 그날 부모님들께서 말씀하셨다.
"걱정이에요."
"아이들은 잘 해낼 겁니다."
"저희는 선생님들이 걱정이에요."
아하. 학생들이 아니라 선생님들을 걱정하신 거였군요. 나는 실제로 전혀 걱정하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학생들이 나를 잘 따라올 수 있을까 걱정했다. 진심으로. 유전적으로 강인한 허벅지, 자전거 여행 경험, 인내와 끈기. 이런 것들을 갖춘 나를 잘 따라올 수 있겠어. 그런데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첫날부터 나는 저 멀리 뒤처지기 시작한 것이다. 뒤처지고 얼마 안 있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 부모님들 말씀이 맞았습니다. 저는 이제 제 걱정을 해야 할 처지가 됐어요. 무릎에서 신호를 보낼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렇게 첫날부터 여행의 마지막 날까지 나는 꽤 많은 시간을 혼자 달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