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의 제목을 '믿음의 순간'이라고 거창하게 붙여도 될까. 이 이야기를 하자면 먼저 한 가지를 밝혀야 한다. 우리 학교에서 여행을 떠날 때 학생들은 핸드폰을 집에 두고 온다. 여행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서. 비상 연락을 위해서 인솔 교사만 핸드폰을 소지한다. 학생들과 떨어지게 되면 연락할 방법은 없는 것이다. (물론 여행 기간에는 교사와 학생이 거의 동행한다.)
첫 번째 날. 내가 학생들로부터 뒤처지기 시작할 무렵, 낙동강변에 있는 황산공원을 지나게 됐다. 목적지는 양산물문화관 인증센터. 이 인증센터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공원이었다. 무릎을 달래 가며, 멀리서 달리고 있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공원에 들어섰다. 얼마 안 있어서 갈림길이 보였다. 내비게이션은 왼쪽 길로 가라고 나오는데 저기 멀리 앞서 간 학생들은 일렬로 오른쪽 길로 가고 있었다. 큰 목소리로 불러봤지만 이미 들릴 수가 없는 거리. 가다가 아니면 돌아오겠지. 잠시 기다리다가 지도를 자세히 보니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끝에서는 길이 만나게 되어 있었다. 나는 서둘러 왼쪽 길로 달렸다. 빨리 가서 공원 오른편을 보면 분명 아이들이 보이겠지. 맨 뒤에 있던 내가 없는 것을 알아채고 당황할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라서 조바심이 났다. 공원 중간쯤까지 가서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약간 멀기는 했지만 일렬로 달리는 아이들 모습은 충분히 보일 정도 거리였다. 그렇게 5분을 바라봤다.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점점 초조해졌다. 연락 수단도 없었다. 보조 선생님은 차를 몰고 첫날 숙소로 먼저 이동을 하신 상황. 나는 공원 반대편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아이들을 찾기 시작했다. 길을 되짚어 잠깐 가기도 해 보고, 무리 지어 오는 자전거 행렬이 없는지 유심히 살폈다. 아, 어쩌지. 이렇게 떨어질 수 있다는 걸 왜 생각 못했을까. 긴장감이 올라왔다. 학생들을 책임지는 사람이 학생들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고민에 빠졌다.
다음 인증센터로 가야 할까. 아니면 여기서 기다려야 할까. 아이들을 찾아야 할까. 찾다가 더 엇갈리면 어떻게 하지. 아이들도 나를 찾고 있을까. 찾고 있을 텐데. 그래. 믿어보자. 인증센터로 먼저 가자. 분명 거기로 올 거다. 그 정도는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다. 인증센터까지는 3km 정도. 10분이면 도착할 거리였다. 나는 아이들을 믿으면서 목적지로 향했다. 얘들아, 나를 찾지 말고 인증센터로 가야 한다.
자전거를 몰고 인증센터로 향했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인증센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이기 시작했다. 그 앞 의자에서 앉아서 쉬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아이들을 만났다는 안도감이 올라오는 순간 배신감이라는 더 큰 파도가 안도감을 집어삼켰다. 아, 나는 무엇을 한 것인가. 아이들은 멈추지 않고 인증센터로 바로 달린 것이다. 아이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나를 찾지 않았다. 인증센터로 가서 기다린 것이다. 나를 찾지 말고 인증센터로 가야 한다고 생각은 했으면서 내심 나를 찾기를 바랐던 것인가. 탁구공만 한 안도감과 볼링공만 한 배신감. 맨 뒤에서 시큰한 무릎으로 힘겹게 자전거를 타는 내 생각은 정녕 안 했단 말이냐. 허탈해하는 나에게 한 학생이 다가와서 물었다.
"선생님, 저희 걱정 때문에 울어서 눈이 빨개진 거죠?"
아니야. 40대 넘어서 시큰한 무릎으로 두 시간 정도 학생들한테 뒤처지면서 자전거를 타면 눈이 왜 벌겋게 됐는지 이해할 거야.
우리는 그 자리에서 약속을 했다. 만약 지금처럼 나와 떨어지게 되면 (혹은 그게 누구라도) 기다리지 말고 다음 목적지까지 가서 기다릴 것. 인증센터에서 인증도장을 찍은 후 우리는 첫날 숙소로 향했다. 숙소까지는 아직 40km 정도가 남아 있었다. 40km라면 수원에서 서울까지 정도 거리.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