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린 Oct 11. 2024

두 번의 고개

  자전거 국토종주 두 번째 날이 밝았다. 첫째 날 꽤 무리를 해서 그런지 다들 조금씩 늑장을 부렸다. 일어나기는 6시에 일어났는데 출발하려 보니 8시 30분쯤. 그도 그럴 것이 몸이 아직 자전거 주행에 익숙하지 않기도 했고 전날 거의 열두 시간을 자전거를 끌든지 타든지 하면서 보냈으니 지칠 만도 했다. 여행 때는 밥을 직접 지어먹는 게 대원칙이기는 했지만 첫째 날 저녁에는 차려준 밥을 먹을 기력 밖에 없었다. (보조 선생님께서 사주신 치킨이 아니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으려나.)


  여하튼 둘째 날은 둘째 날대로 일정이 있었다. 가야 하는 거리는 64km. 첫째 날보다는 10km 정도 줄어든. 하지만 문제는 두 개의 고개를 넘어야 한다는 것. 하루에 두 고개를 넘어야 한다니. 그렇지 않아도 무릎 통증이 있는 터라 내 걱정도 두 배가 됐다. 


  첫 번째 넘은 고개는 영아지 고개. 나는 고개가 시작되는 처음부터 자전거를 끌기 시작했다. 앞쪽을 보니 몇몇 학생이 경쟁적으로 자전거를 타고 고개를 오르는 게 보였다. 기어를 바꿔가면서. 쟤들은 무릎이 괜찮나 보다. 끝까지 자전거로만 완주를 해내겠다는 의지의 발현. 그래 지금 해 둬라.


  영아지 고개는 경사도가 완만한 편이다. 하지만 길다. 구렁이처럼 구부렁하게 오르고 또 올라야 했다. 평평한 곳이 나오면 타고 가다가 오르막이 나오면 무릎이 말했다. 내리라고. 이제 도착인가 싶으면 아니고, 거의 다 왔다 싶었는데 또 아니고. 여행을 가서까지 인생의 굴곡을 겪어야 했다니. 다 됐나 싶을 때 아니었던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드디어 꼭대기 구간을 지났다. 이제 내리막이다. 인생길 내리막은 서글프지만 자전거길 내리막은 신이 난다. 그렇게 신나는 구간은 왜 그리 짧은지. 미끄러지듯 내려가니 정자가 하나 보였다. 우리가 모이기로 한 장소. 앞서 간 학생들이 쉬고 있었다. 나도 거기에 올라 쉬기 시작했다. 두 고개 중 하나를 넘었다. 두 고비 중 한 고비를 넘겼다. 


  두 번째 고개는 박진 고개. 박진 고개는 영아지 고개와는 아주 딴 판이었다. 삼각형을 세워놓은 것 같달까. 영아지 고개보다는 짧은 거리였지만 경사도는 훨씬 가팔랐다. 이런 경사도에도 의지를 불태우는 몇몇 학생들이 보였다.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페달을 저으면서, 느리지만 조금씩 올랐다. 아니, 어떻게 여기서까지 타고 올라가지. 나는 진작에 내렸다. 그리고 자전거를 잡고 밀기 시작했다. 


  경사가 가파르다 보니 숨이 가빴다. 도로의 끝이 한눈에 보이기는 하지만 쉽게 닿지는 못했다. 헉헉거리면서 중간쯤 올랐을까. 뭔가 깊은 내음이 코를 찔렀다. 분뇨의 향. 이걸 향이라고 표현해도 되나. 어렸을 때 차를 타고 가다가 이런 냄새가 들어오면 부모님은 이렇게 표현하셨다. 고향의 냄새라고. 왼쪽을 보니 아래쪽에 무슨 공장 같은 게 보였다. 축사인가. 아니면 비료 공장인가. 그렇지 않아도 숨이 찬 상태인데 그 냄새가 코 안을 찌르니 숨이 더 차올랐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이 구간을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드디어 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먼저 도착한 학생들이 보였다. 끝이 눈에 보이기도 했지만 일행이 모습이 보이는 게 얼마나 반가운지. 도착하고 보니 쉼터가 있었고 그 아래로 낙동강이 보였다. 구름과 강줄기와 산줄기. 풍경이 휴식이 됐고 힘이 됐다.


  박진고개가 있는 곳의 지명은 낙서면이다. 그래서 고개 벽면에는 낙서가 한가득이다. 진짜다. 나는 처음에 농담인 줄 알았다. 낙서면에서도 이 이름을 은근히 즐기는 것 같았다. 어서 와서 낙서를 하라고 장려를 하는 것 같달까. 이번 종주가 두 번째인 학생들이 있었는데 몇 년 전에 와서 남긴 낙서가 그대로 있었단다. 그 학생들은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낙서면이라는 곳이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누군가는 의미 없다고 할 수도 있는 낙서들을 품어주는 넉넉함과 여유. 벽면이 지저분해진다고 깨끗하게 지워놓았다면 낙서면이라는 이름이 와서 콕 박히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저 특이하다고 생각하며 지나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혹은 힘들어서 그냥 지나갔을 수도.


  오르막 경사가 심했으니 내리막 경사도 상당했다. 안전이 최우선. 속도 조절을 위해서 평지까지는 내가 선두를 잡았다. 고개에서 내려와서부터 약 70분 정도를 달리니 숙소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두 번째 날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전 05화 무너진 자신감의 출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