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에서 뒤처진 나는 생각했다.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어디서 온 자신감이었을까. 내가 자전거 여행을 처음 했던 때는 20대 중반. 중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고 있을 때였다. 중국에서는 노동절 연휴가 꽤 긴 편이었다. 5월 1일부터 7일까지 일주일이라니. 한국에서는 쉰다고 해도 하루나 쉴까. 이 기간 동안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을 하던 차에 기숙사 룸메이트가 제안을 했다. 자전거 여행을 가자고. 바로 좋다고 했다.
당시 지내던 곳은 난징. 북쪽의 베이징처럼 남쪽에서 수도의 기능을 했던 도시. 난징대학살이라는 잔혹하고 슬픈 기억을 안고 있는 도시. 여기서부터 바다로 착각할 정도로(진짜 작은 파도도 친다!) 커다란 호수 '태호'를 끼고 있는 우시라는 도시까지 갔다 오기. 가는 데 4일, 오는 데 3일. 처음 해보는 자전거 여행이라 신이 났다. 그때는 정말 큰 배낭을 짊어지고 자전거를 몰았다. 그렇게 하면서도 한 시간에 15~20km씩은 거뜬하게 달렸고, 힘은 들었어도 한 번씩 먹고 쉬면 없던 힘도 다시 났다. 그로부터 17년 후. 나는 무리에서 멀리 뒤처져서 달리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놓친 것일까.
첫 번째는 지형의 차이. 내가 20대에 달린 곳은 중국의 동남쪽. 중국의 지형은 서고동저.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다. 우리나라와는 반대의 지형이다. 내가 달린 곳은 전부 평지였고 짧은 오르막조차도 거의 없었다. 자전거로 달리는데 눈 앞 풍경이 거의 비슷해서 너무 지루하고 심심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내가 국내에서 국토종주를 하면서 달린 자전거길은 심심할 틈이 없었다. 왼쪽으로 꺾었다가 오른쪽으로 꺾었다가,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산을 끼고 달리다가 어느새 강을 끼고 달렸다. 이러니 40대 내 무릎이 견뎌냈을 리가.
두 번째는 나이의 차이. 이걸 내가 몰랐을까. 아니면 모른 척했을까. 나는 첫 자전거 여행 후 17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사실 앞에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아니, 눈치를 못 채고 있었다. 일상생활 중 잠깐씩 자전거를 탈 때 무릎에서 탈이 나지는 않았으니까. '너 무리하고 있어'라는 신호를 그 어떤 부위도 보내지 않았으니까. (물론 '너 나이 먹고 있어'라는 신호는 여러 군데에서 보내기는 하는데)
다녀온 지 17년이 된 자전거 여행 경험을, 마치 어제 다녀온 것처럼, 이번 여행에 이어서 붙여버린 것이다. 그러니 진심으로 학생들이 나를 못 따라잡을 걸 걱정했지. 10월 10일 화요일 일기에 나는 이렇게 썼다.
뒤처지기는 하지만 놓치지는 않는다. 나는 내 리듬과 페이스에 맞춰서 주행을 한다.
현실 수긍인가. 정신 승리인가. 어쨌든 끝까지 같이 가는 게 목적이니까. 나는 어떻게 해서든 내 힘으로 끝까지, 자전거로만 목적지까지 가기로 마음을 먹은 터였다. 학생들이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도록 책임을 지는 것도 나의 임무. 그리고 내 스스로가 여행을 무사히 마치는 것도 나의 임무. 무릎 때문에 아이들한테 질 수는 없지. 나한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