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나는 여태껏 단상이 '짧을 단'을 사용해서 짧은 생각인 줄 알았다. 이 글을 쓰면서 정확하게 하려고 사전을 찾아보니 '짧을 단'이 아니었다. '끊어질 단'이었다. 옷을 재단한다고 할 때 그 단. 단절이라고 할 때 그 단. 짧은 생각이 아니라 '끊어진 생각'이었다. 살다 보니 생각은 정말 끝이 없다. 출근할 때 드는 생각, 집에 있을 때 드는 생각, 먹을 때 드는 생각, 걸을 때 드는 생각, 폰을 만지작거릴 때 드는 생각...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생각은 때와 장소에 따라 끊임없이 솟구쳐 나온다. 종류는 달라도 결국은 모두 나의 생각들이었다. 끊어지지 않고 흐르는 강물처럼. 생각의 흐름을 그대로 좇다 보면 지쳐버리기도 한다. 생각 그 자체에 시달려 버릴 수 있다니. 이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뭔가를 하고 싶다. 그런데 그게 가장 어려운 것 같다. 단상에 대해 생각하고 쓰다 보니 다른 데로 빠지는 것 같아서 일단은 여기서 끊기.
나는 여행을 할 때 학생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계속 뭔가 '거리'를 만들어 준다. 특히나 생각할 거리를 꽤 던지는 편이다. '단상'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내가 그때 상황에 맞는 단어를 선정해서 던져주는 방식이다. 이번 여행 기간 동안 내가 제시할 단상 주제는 총 다섯 가지. 주제를 제시하는 그날이 되기 전에는 어떤 주제가 나올지 나도 모른다. 그날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 중에서 고르는 거니까.
첫 번째 주제는 '시작'이었다. 고민을 좀 했다. 우리 첫 번째 숙소 소재지였던 '감천문화마을'을 주제로 할까. 여행과는 너무 동떨어진 것 같기도 하고. 이른 아침에 혼자 마을 산책을 하면서 고민을 거듭하다가 '시작'으로 정했다. 좀 더 특이한 주제를 골라보고 싶었는데. 그래도 자전거 여행을 막 시작하는 시점에서 시작만큼 맞는 게 없겠다 싶었다. 그 이상으로 생각이 나지도 않았고.
두 번째 주제는 '고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둘째 날 일정의 절반을 차지한 두 고갯길. 모두 '고개'라고 부르지만 이란성쌍둥이처럼 달랐던 고개들. 그리고 앞으로 넘어가야 할 여러 고개들. 고개와 삶을 연결해서 생각해 보게끔 던졌다. 이제 16살. 부모님 도움으로 철 모르고 살았던 기간을 빼고 진짜 자신들이 산 삶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몇 년일까. 길게 잡아야 5년이려나. 어쩌면 너무 어려울 수도 있는 주제겠지만 평소에 안 해보던 생각들을 해봐야지. 나는 완성된 생각을 바라는 게 아니니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을 뿐.
우리는 모두 일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일상의 큰 흐름에서 빠져나와 여행이라는 작은 흐름을 타고 있었다. 일상에서 '끊어져' 있었기에 '끊어진' 생각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끊어진 생각들이 앞으로 다시 돌아갈 일상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 밀물처럼 밀려드는 생각들 틈바구니에서 벗어나 잠시 한숨을 돌릴 수 있는, 강 한가운데 있는 작은 바위처럼. 나는 학생들이 어설프게나마, 짧게나마 해본 그 단상들이 언젠가는 잠깐은 앉아서 쉴 수 있는 그런 작은 바위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일상을 살다가 지치고 질려버리면 여행의 기억들이 슬쩍 올라왔으니까. 언제였든 간에, 장소가 어디였든 간에, 여행의 기억들은 숨통을 틔워준다. 그러니까 얘들아. 내가 너희를 괴롭힌 게 아니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