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 선생님의 별명은 달팽이. 아이들에게 달팽이 선생님이라고 불렸다. 대구 도착 전날인가. 선생님께서 말씀을 하셨다. 예전에 대구 쪽에서 직장을 다닌 적이 있다고, 대구에서 지인 찬스를 한 번 써도 되겠느냐고. 지인 분께서 우리 저녁 식사를 사주신다고. 암요. 물론입니다. 예산도 아낄 수 있고 밥 안 해도 되고. (귀찮아서가 아니라 힘들어서요.)
우리는 대구에 도착한 직후 기념사진을 남기고는 숙소로 이동했다. 거실 하나, 방 셋. 이 정도면 8명이 2박 3일 지내기에 충분했다. 자전거를 한 곳에 잘 세워놓고, 짐을 정리하고 쉬었다. 그리고 달팽이 선생님의 지인 분께서 오시기를 기다렸다. 많이 피곤했는지 몇몇 학생은 거실 테이블에 엎드려 잠이 들어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지인 분께서 오셨다고 한다. 그런데 뭔가를 사 오셨다고 한다. 햄버거였다. 햄버거 세트였다. 30개였다. 응? 우리는 다 해서 8명. 잠깐. 갑작스러운 혼란이 왔다. 햄버거 세트는 세트대로 사주신 것이고 저녁식사는 밖에서 또 사주신다고? 이게 얼마... 아니지. 돈을 계산할 게 아니라. 잠깐. 햄버거 소식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간 것은 두 가지. 첫 번째는 우리 여행의 대원칙. 밥은 해 먹는다는. 물론 사 먹기도 하지만 아무거나 사 먹지는 않는다. 어쨌든 여태껏 학교 여행을 다니면서 패스트푸드를 메뉴로 잡아본 적이 없다.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 가령 마땅한 식사 장소가 없고 시간에 쫓기면 모를까. 우리 손으로 건강한 음식을 해 먹는다는 대원칙을 기준으로 봤을 때 햄버거 세트 30개는 그 기준을 완전히 뒤흔들어버리는 것이었다. 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학생들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 깊은 속에서부터 비죽비죽 흘러나오는. 햄버거를 말 그대로 원 없이 먹을 수 있게 됐으니. 두 번째는 이런 생각. 이걸 언제 다 먹지. 어떻게 다 먹어야 하지. 햄버거 30개, 콜라 30캔, 감자튀김 30개를 어떤 방식으로 먹어야 하지. 게다가 오늘 저녁은 밖에서 먹는 거잖아. 나는 고민을 10초 정도 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햄버거 세트 30개는 감사히 받는다. 이 순간만큼은 대원칙을 깬다. 원칙보다 중요한 건 챙겨주시는 마음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지인 분 입장에서) 16살 '꼬물이들'이 자전거로 국토종주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정말 대견한 마음에 챙겨주신 것. 그렇다면 그 마음을 감사히 받는 게 먼저다. 학생들도 그걸 알아야 했다. 그렇게 넉넉하게 챙겨주시는 그 마음을. 햄버거 세트는 학생 6명에게 먼저 나눈다. 1인당 세트 4개씩. 24개 세트. 나머지 6개 세트는 나와 달팽이 선생님이 3개씩 나누기. 밖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오면 야식으로 한 세트. 다음 날 아침, 점심 그리고 간식까지. 전부 햄버거 세트. 그래, 이번 기회에 아주 원 없이 먹어봐라.
햄버거 세트들을 고이 모셔두고는 모두 밖으로 나갔다. 자전거 여행길의 첫 번째 외식. 메뉴는 부대찌개. 정말 모두들 배부르게 먹었다. 첫 번째 구간을 끝낸 것에 대한 포상 같은 느낌이랄까. 그 어떤 상보다 좋았다. 거기에 더해서 우리 햄버거들이 숙소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니. (몇몇은 분명히 부대찌개 먹으면서도 햄버거 생각을 했을 거다.) 이 지면을 빌어 달팽이 선생님과 지인 분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햄버거 세트를 떠올리면서 신이 났던 건 학생들뿐만이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음, 괜히 고백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