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대구 숙소 거실 탁자에 둘러앉아서 내 노트북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 보고 있었다. 이게 이렇게 재미가 있는 거였나. 집중도 좀 보소. 아이들은 영상을 보는 것도 아니었고 지도를 보는 것도 아니었다. 사진을 보고 있었다. 각자의 사진들을. 총 16장씩. 1살 때 사진부터 16살 때 사진까지. 그 사진들을 모두 모으면 96장. 여행을 떠나기 전에 각자 사진을 내게 미리 보내놓으라고 했다. ‘나의 어린 시절’이라는 글을 쓰기에 앞서 자신들이 자라온 모습들을, 모두 함께 보는 자리였다.
사실 조금 놀랐다. 너무 재미있게들 쳐다봐서. 태어난 순간의 사진, 욕실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사진, 동네 친구와 노는 사진,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 그 사진 한 장마다 이야기가 있었다. 사진과 사진 사이에 있었을 수많은 순간들, 말들, 생각들, 느낌들. 그 순간들을 남기기 위해서 카메라를 들었을 부모님들, 친척들, 친구들.
예전에 어떤 책인가에서 이런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어딘가에 갔을 때 바쁘게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마음에 남기는 게 더 좋다고. 그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맞아. 중요한 건 마음에 남기는 거야. 사진 찍느라 진짜 그 순간을 놓칠 수 있잖아.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사진으로 남겨야 마음에도 남는다고. 그 증거가 바로 우리가 함께 사진을 봤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남겨진 사진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서로 태어난 모습들을 보면서 웃을 수 있었을까. 젖살이 빠지고, 걷고, 뛰고, 장난치는 그 순간들을 같이 보면서 떠들 수 있었을까.
사진을 보다가 다시 보니 눈 깜짝할 새에 16살의 모습으로 내 앞에 앉아 있는 학생들. 몇 년 지나면 20살 됐다고 앞다투어 선생님 술 사드리겠다고 전화를 할 아이들. 각자 자신의 길을 걸어갈 아이들. 걷다가 서로 안부를 물을 아이들. 어쩌면 나중에 자신들을 닮은 아이들 사진을 또 찍고 있을 아이들. 그때쯤이면 내 나이는... 생각이 왜 여기로 갈까.
얘들아. 앞으로도 사진들 많이 찍어 둬라. 요즘은 필름 값이 드는 때도 아니니 마음껏. 남기고 또 남겨라. 그 순간을 묶어두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아, 필름이 뭔지는 알지?)
자. 여기서 문제 나갑니다. 위 내용 중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 * *
여행이 끝난 후 일기와 글들을 모았고 (험난했던) 긴 편집 기간을 거쳐서 책으로 엮어냈다. 16년간 학생들의 변화를 볼 수 있는 16장의 사진들은 글과 글 사이에 들어갔다. 나중에 사진을 보면서 무슨 생각들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