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린 Oct 21. 2024

글을 쓰시게

  우리가 대구에서 2박을 한 이유가 있다. 낙동강 하류 코스를 마치고 재충전을 위한 시간. 그리고 또 한 가지. 글을 써야 했다. 여행의 이름은 ‘돌아보기 여행’이다. 말 그대로다. 14살부터 16살까지 보낸 날들을 돌아보는 과정이다. 여행과 동시에 내가 살아온 날들을 떠올려보는 것. 이게 여행의 큰 목적이다. 그런데 그냥 떠올려 보기만 한다고 해서 뭐가 남겠어. 그 생각을 남겨야지. 때문에 학생들은 모두 여행 노트를 준비했다. 그리고 써야 했다. 


  학생들이 쓰는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일기 쓰기. 일기는 매일 써야 했다. 그날 무엇을 했다는 것만 써도 됐다. 피곤하면 그 다음 날 일어나서라도 써야 했다. 밀릴 수는 있어도 안 쓰면 안 됐다. 일기는 내가 매일 확인을 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여행이 끝난 후 이 기록들을 책으로 엮어야 했기 때문이다. 여행이 끝나면 한 주 동안은 연필로 썼던 일기들을 모두 파일의 형태로 타자를 쳐서 옮겨야 한다. 이렇게 모이고 모인 글들은 묶고 또 묶여서 책으로 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그 책은 우리가 이번 여행을 있는 그대로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도구가 된다. 때문에 나는 초등학교에서나 하던 일기 검사를 매일 해야 했다. 그렇다고 도장을 찍어주지는 않지만 자신들의 글이 묶인 책을 받는 게 도장이지. 그것도 아주 큰.


  또 다른 하나는 주제 글쓰기.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서 주제는 모두 정해놓은 상태였다.


  1. 나의 어린 시절

  2. 내가 설명하는 나

  3. 버킷 리스트와 그 이유들

  4.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이렇게 총 네 가지 주제. 돌아보기 여행인 만큼 과거부터 현재까지 짚어볼 수 있는 주제들을 던져 주었다. 학생들은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꺼내야 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도 돌아봐야 했다. 해내고 싶은 것들이 무엇인지도 고민해야 했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도 생각해야 했다. 이런 생각들을 자전거를 타면서 할 수는 없다. 고개를 넘고, 장애물을 피하고, 풍경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바쁘니까. 그래서 우리는 중간에 한 번씩 멈췄다.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서. 그리고 그 생각들을 글로 옮기기 위해서.


  물론 학생들은 글쓰기를, 보통은, 고통스러워했다. 괴로워했다고 해야 하나. 피하고 싶어 한다고 해야 하나. 생각하고 쓰는 데에는 많은 힘이 드는 게 사실이니까. 맞다. 글쓰기는 쉽지 않다. 보고, 듣고, 읽고, 쓰는 것 중에서 쓰는 게 가장 힘들다. 나도 여태껏 이 글을 쓰면서도 썼다가 지우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심지어 어떤 글은 완전히 뒤엎기도 했다. 도자기를 다 구워놓고도 깨버리는 심정이랄까. 그 모양이 어떻든 간에 다시 읽어보고는 마음에 안 들면 ‘깨버렸다’. 예전에는 아까워했고, 헛수고를 한 것 같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과정들을 거쳐서 글들이 완성된 후에 남는 건 글뿐만이 아니다. 생각의 폭과 시야가 조금씩 넓어진다. 썼다가 지웠다가 힘들어서 덮었다가도 다시 펼쳐들고 고민하는 사이에 생각의 근육이 붙는 것이다. 그리고 이 근육들이 삶과 관계를 지탱한다.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앞으로 갈 수 있게 온몸의 근육이 지탱해주는 것처럼. 그러니까, 노트 앞에 펼쳐놓고 엎드려서 잘 것처럼 눈이 내려간 거기 학생. 다시 정신을 차리고 글을 쓰라.


  선생님, 쟤 진짜 자는데요.

  에헤이.



이전 09화 햄버거 세트의 추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