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묵었던 숙소 이름은 적교장 모텔. 자전거 국토종주를 하는 여행자들에게는 최적의 위치에 있었다. 부산 낙동강하굿둑 인증센터에서 대구 달성보 인증센터까지 거리는 174km 정도. 하루 60km씩 달린다고 하면 2박을 해야 한다. 적교장 모텔은 두 번째 숙소로 가장 적당한 곳. 게다가 자전거 여행자들을 위해 특화된 곳이었다. 자전거 보관 공간이 따로 있었다! 각 공간을 열쇠로 채울 수 있었다! 자전거 걱정 없이 안심하고 잘 수 있었다는 얘기다. 건물이 약간 오래되어 보이기는 해도 불편하지는 않았다. 고단한 여행자들에게는 너무나 안락한 곳이었다. 이틀 전 예약을 미리 해두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상당히 난감할 뻔했다. 우리가 입실을 한 후에 얼마 있다가 만실이 됐다는 표지판을 봤으니까.
10월 8일 일요일 아침 8시 30분. 우리는 국토종주 세 번째 날을 시작했다. 목적지는 대구 강정보 인증센터. 중간에 합천창녕보, 달성보 인증센터를 거친다. 거리는 약 69.5km. 그리고 넘어야 하는 고개가 또 두 개였다. 무심사 고개 그리고 다람재. 거리도 거리지만 넘어야 할 고개가 두 개라니. 우리는 적교장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합천창녕보 인증센터로 향했다. 자전거를 같이 탄 지 3일째가 되니 모양새가 잡혔다. 서로 속도와 간격을 유지했고 서두르지 않았다. 첫날 질주에 목말랐던 모습들은 안 보였다. 우리만의 흐름에 올라탄 것이다.
이렇게 한 구간씩 달리는 와중에도 나는 대구 숙소를 어디로 잡으면 좋을지 아직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강정보 바로 옆 10분 거리에 있는 숙소는 위치는 너무 좋았지만 예산이 안 맞았다. 더군다나 2박을 해야 하기에 더더욱. 자전거를 타다가 중간에 쉬는 시간만 되면 나는 예산과 위치 모두 적당한 숙소를 검색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창녕보 인증센터 바로 다음이 다람재. 여기서부터는 두 팀으로 나누어졌다. 무심사 고개를 넘어가는 팀과 우회 도로를 이용하는 팀. 보조 선생님과 두 명의 학생이 우회도로를 이용하고 나와 네 명의 학생이 무심사 고갯길을 넘어가서 만나기로 했다. 무심사 고개로 들어서는 길. 축사가 보였다. 그리고 울타리 뒤로 소들이 보였다. 멀뚱히 쳐다보는 눈빛들. 몇몇 소와 눈을 마주치며 자전거를 끌었다. 축사 앞을 지나는 길이라 그렇지 않아도 숨이 찬 데다가 (소들한테 미안한 얘기지만) 냄새 때문에 호흡이 힘들었다. 여기도 자전거로만 넘어가겠다고 오르막을 끙끙거리며 올라가고 있는 학생들이 보였다. 나중에 그 경험담 어디에 써먹으려고.
무심사 고개는 영아지 고개처럼 길지는 않았지만 만만하지 않았다. 고개를 넘어가서야 마주하게 되는 무심사. 절 이름이 절묘하게 맞아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심하게. 생각 없이. 마음 비우고. 오로지 한 발씩 앞으로. 나와 같이 출발한 학생들은 아마 벌써 저 너머에 도착해 있겠지. 너희는 마음이 바쁘겠지만 나는 여유 있었단다. 무릎 때문이 아니야. 마음을 내려놓는 방법을 알거든. 하지만 내려놓지 못하는 한 가지가 있었다. 대구 숙소 어떻게 하지?
고개를 넘어서 다른 팀과 합류했다. 보조 선생님은 차량으로 이동하고 우리는 다시 하나로 뭉쳐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그때가 11시 10분쯤이었다. 강정보까지는 약 다섯 시간 정도 거리.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숙소가 확정 전이었으니까. 달리기도 달려야 하고 숙소도 예약해야 하고. 다섯 시간 내에. 아니지. 최소 세 시간 내에는 확정을 짓고 두 시간 동안은 편안한 마음으로 타야지.
나는 쉬는 틈틈이 다른 곳을 계속 찾아봤다. 그런데 없었다. 있긴 했는데 문제가 있었다. 가격이 맞는 곳들은 강정보 근처에 없었다. 도착한 후에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인가 더 이동을 해야 했다. 거의 지쳐들 가는데... 도착해서 지하철을 타고... 그것도 자전거를 끌고... 그것도 일곱 대인데... 다른 승객들 눈치를 보면서... 이건 할 짓이 아니었다. 예산을 넘어가도 인증센터에서 자전거로 10분 거리에 있는 숙소로 가는 게 맞았다. 잠은, 휴식은 편안하게 취하는 게 맞다. 자전거 타기에 온 힘을 쏟아야 하니까. 그나저나 이따가 다람재는 어떻게 넘지. 숙소도 잡아야 하고.
다람재 앞. 잠시 멈춤. 지도가 가리키는 방향이 달랐다. 대구 달성보로 가는 길이었는데 내비게이션에서 가리키는 방향은 직진이었다. 고개일 텐데 직진이라고? 알고 보니 터널이 새로 뚫린 것이었다. 지나면서 보니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터널로 뚫려 있는데 굳이 다람재를 넘어야 하나. 넘는다면 정말 일부러 넘는 셈이었다. 잠깐 고민은 됐지만 체력도 시간도 여기에 쏟기에는 남은 거리가 적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내 몸속 당 성분을 유지해야 했다. 왜냐하면 숙소도 잡아야 했거든. 다람재까지도 (굳이) 넘었다는 무용담보다 숙소가 너무 편하고 좋았다는 후기가 필요했다. 그렇다면 빨리 달성보에 도착해서 숙소부터 확정을 지어야 했다. 다행히 학생들도 직진(!)에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달성보에 도착 후 예약을 하려고 숙소에 전화를 했다. 예약을 확정 지으려면 입금을 해야만 했다. 당일 투숙이니까. 방법은 두 가지. 에어*앤비 어플을 사용해서 예약하기 혹은 계좌이체. 나는 어플을 사용하기로 했다. 계좌이체를 하려면 쉬고 계신(일요일이었다) 행정 선생님께 연락을 드려야 했으므로. 나는 내 손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어플을 받고 내 신분증을 찍고 학교 카드를 등록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렇게 하고는 드디어 아니, 결국 예약에 실패했다. 아니, 왜. 뭐가 문제였던 거야. 내 신분증이 제대로 증빙이 안 된 건가. 혹시 신분증과 카드 명의가 일치해야 하는 건가.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아이들은 기다리고 있고, 예약은 안 되고 있고. 이러다가 다른 누군가가 그 숙소마저 잡아버린다면. 지하철을... 안 돼. 이제는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목적지에 곧 도착한다. 결국은 행정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에 계좌이체를 부탁드렸고 그렇게 해서 도착하기 두 시간 전쯤 숙소를 확정 지었다. 살았다. 게다가 2박을 해야 하는데. 못 잡았으면 큰일 나는 거지. 그런데 그로부터 3개월 후. 내가 대구 숙소를 잡느라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했던 행동 중 한 가지가 엄청난 사건을 일으킬 뻔했는데... 아니. 사실 반쯤은 일어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