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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Sep 06. 2023

밥, 우울과 행복 사이

"엄마 밥 주세요!"

아침형 인간인 첫째 아이가 일찍 일어나서 먹을거리를 찾고 있었다. 이 어린이는 아침부터 고기에 쌈을 싸 먹을 정도로 대부분 입맛이 좋다.


일어나야만 한다. 전날 몇 시에 잠들었는지, 몇 시간을 잤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물먹은 솜뭉치 마냥 무거운 몸을 일으켜 에스프레소부터 내린다. 얼음을 가득 넣은 아메리카노를 들이켜서 정신을 차려야만 한다. 가장 큰 산인 첫째 아이의 식사가 끝나면 그제야 여유롭게 커피를 홀짝이며 느지막이 일어나는 둘째와 막내의 아침을 간단하게 차려준다.


미취학 어린이 세 명의 가정보육은 외출만이 살길이었다. 집 앞 놀이터라도 나가있어야 아이들이 뛰어놀 동안 잠시라도 햇볕을 쬐며 멍하니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두 시간 즈음 지났을까 갈증도 나고 허기가 지는 아이들은 집에 들어가서 점심식사를 하자는 말 대신 편의점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아이들에게 점심식사 후 편의점에서 고른 간식을 먹기로 약속하고 계산한다. 계산대로 쏟아지는 간식과 음료들 사이에 내가 먹을 김밥 한 줄도 쓰윽 내밀어 함께 계산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렇게 기분 좋게 바깥놀이를 마무리하며 집으로 돌아와서는 바로 주방으로 향한다.


점심식사를 준비하기 전에 제일 먼저 편의점에서 구입해 온 김밥 한 줄을 전자레인지에 빠르게 데운다. 밥과 국을 뜨면서 한입, 반찬을 꺼내고 달걀말이를 부치면서 한입. 아이들도 배가 고프지만 일어나서 커피 한잔 마신 게 전부인 나의 허기가 가장 급했다. 뭐라도 먹어야 차려낼 수 있다.


어느새 김밥 한 줄이 비워질 즈음 상차림도 완성된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동안 급하게 먹은 한 줄을 소화시키느라 또 멍하니 앉아 잠시나마 조용한 순간을 즐긴다. 엄마가 이미 배가 부르다는 것을 모르는 아이들은 한 마디씩 건넨다.

"엄마도 같이 먹어요!"


그래서 저녁식사는 함께하기로 결심했다. 퇴근이 늦는 배우자를 제외하고 나와 아이들의 4인 상차림을 완성했다. 내 앞에 놓인 비빔밥을 비비면서 이미 침이 고이는데, 이곳저곳에서 요구사항이 쏟아져 나온다.

"엄마, 물 좀 주세요."

"엄마, 이것 좀 잘라주세요."

"엄마, 이건 너무 맛있어요. 더 주세요!"

"엄마, 좀 질긴데 뱉고 싶어요."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을 때마다 일대일로 생겨나는 요구사항 덕분에 의자는 숟가락을 뜰 때만 잠시 앉을 수 있었다. 씹고 삼키는 것은 서서 돌아다니면서도 충분히 가능했다. 이것조차 번거로운 날에는 아예 스탠딩으로 식사를 진행했다.


비빔밥이 그릇에 한두 숟가락 남았을 때 두 돌이 조금 넘었던 막내의 화장실 신호가 왔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고 아이 손을 잡으며 화장실로 향했다. 오물오물하는 입을 대신해 눈빛으로 아이에게 잘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확실하게 뒷마무리까지 한 뒤 아이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화장실에 남은 나는 손을 씻으며 자연스레 세면대 위에 있는 거울에 시선이 갔는데 볼에 음식을 한가득 머금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렇게까지 밥을 먹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스치며 우아함과는 전혀 먼 거지 같은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마주하니 눈물이 소나기처럼 주르르륵 흘러나왔다.




그 무렵 야근과 출장이 일상인 배우자는 지방에서 일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건너뛴 채 퇴근 중이었다. 제때 끼니 챙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배우자는 이미 고된 하루와 허기짐으로 예민해져 있었다. 육아로 지친 아내에게 따로 식사를 차려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지만 평소처럼 집에 밥 정도는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루종일 정신없는 식사와 거울 속 모습을 보며 우울감을 느꼈을 아내는 이미 약간의 대화도 버거운 상태였다. 밥이 차려져있기는 커녕 아이들이 자고 있는 늦은 밤이라 오히려 조용히 해달라는 눈빛이 야속하기만 했다. 게다가 오늘따라 텅 비어있는 밥솥은 원망스러울 지경이다.


직장에서는 어떻게는 빨리 마치고 가정으로 돌아가기 위해 식사시간도 미루며 일해왔다. 이전에 회사에서 저녁을 먹지 않고 퇴근하던 날 반찬 가짓수는 많지 않지만 아내는 맛있는 일품요리를 내어 주었다. 잠든 아이들, 나만큼 피곤한 배우자, 먹을거리가 부재한 상황은 무얼 위해 일하나 싶은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2년 후.

초등학생이 된 첫째 아이는 주말에도 여전히 일찍 일어나지만 엄마를 깨우지 않고 찬장에 있는 시리얼을 꺼내어 우유를 말아먹는다. 좋아하는 책을 보다가 그래도 아직 일어나지 않는 엄마와 아빠에게 영상을 보고 싶다며 동의를 구한다. 누군가로부터 희미한 대답이 들려오는 것 같다. "응~"


아이의 정해진 영상 시청시간이 끝나가자 우리 부부는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어 먹을만한 것이 없다고 판단되자 외식을 제안했다. 미용실과 장보기를 핑계로 근처의 샤부샤부 식당이 동선에 딱 알맞다는 말도 덧붙였다.


셀프바가 있던 샤부샤부 식당에서 막내는 식빵에 딸기잼을 발라먹었고, 입이 짧은 둘째 아이는 어묵과 고기를 몇 점 먹었으며 야채가 투명으로 보이는듯한 첫째 아이는 끝까지 젓가락을 놓지 않은 1인이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의자에서 엉덩이를 한 번도 떼지 않고 그 많은 야채와 고기를 코끼리만큼 먹었다.


아이들이 흐물흐물해진 야채조차 먹지 않아도 우리 부부는 개이치 않았다. 어차피 머지않아 우리처럼 고기만 먹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까. 그리고 맛있는 것을 먹는 내내 누군가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식사를 하는 지금이 바로 행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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