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쥐방울 Sep 17. 2023

모국어는 한국어가 맞습니다만

아침 8시 50분. 둘째 아이의 유치원을 데려다주러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리는 순간 어떤 말들이 들려온다. 이미 아이의 등교 혹은 등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엄마들이 서로 아는 사이인지 짧게 대화를 주고받는다. "남편이랑 화해는 했어?" 상대방의 표정은 썩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지만 더 이상의 사생활이 노출될까 염려되어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입에 살짝 갖다 댄다.


아이가 유치원에 등원 후 막내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들은 없고, 집으로 들어가기 아쉬운 엄마들이 서로 삼삼오오 모여있다. 적으면 둘, 많으면 다섯 정도의 인원이 모여서 꽤 진지한 표정을 하고 길 모퉁이에 서서 한참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 곁을 지나가다 우연히 듣게 되는 말은 99% 스몰토크 혹은 가벼운 험담이었다.


다수가 이러한 방식으로 아무렇지 않게 관계를 맺어가는 풍경을 수년간 마주하니 어떤 순간에는 스몰토크가 어려운 스스로가 이상하게 느껴지는 착각이 들기도 하고, 외로운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도 했다. 그래서 빠르게 막내와 놀이터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을 내 마음 챙김의 하나로 행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날은 스몰토크에 적극적인 이들을 놀이터에서 만나기도 했다.


유치원에서 하원한 아들이 또래 아이들과 놀기 위해 다 같이 놀이터로 향했는데 아이들의 보호자였던 엄마들은 마치 약속한 것처럼 아이의 가방을 챙겨 구석에 있는 벤치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막내와 아이스크림을 사서 놀이터에 도착한 나는 아이들에게 수박바를 하나씩 나눠주고 비닐은 모두 수거했다. 다른 엄마들이 앉아있던 벤치는 오두막 형태의 모양을 하고 있어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뜨거웠던 늦은 오후 땀 흘리며 놀고 있는 아이들 곁에 있던 나는 당연히 그들 눈에 띄지 않았을 것이다. 이상해 보이지 않게 엄마들 사이에 나란히 앉아있지 않고, 그늘 없던 곳에서 아이들이 웃고 뛰노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내 선택이었다. 불편한 스몰토크를 들으며 어색해지지 않게 더 활짝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짓는 대신 귀여운 아이들을 보면서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렇게 영원히 접점이 없을 것만 같던 나에게도 우연히 반모임의 순간은 찾아왔다. 유치원 공개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같은 아파트로 티타임을 가지러 가시던 분들 중 한 분이 나에게도 제안을 해온 것이다. 그래서 커피 6잔을 앞에 두고 6명의 엄마들은 야외테이블에 둥그렇게 앉았다. 가정보육 하는 막내까지 동행했으니 모두 7명이었고, 친목도모를 목적으로 모인 이들의 스몰토크라고 불리는 가짜 대화가 시작되었다.


"저희 아이가 발표할 때 개미목소리가 되는 거 알고 있긴 했어요."

-> "그래도 밖에서는 말 잘하던데요."


"둘도 키우기 힘든데 어떻게 셋을 키우세요."

-> 소리 없이 웃음


"2학기 상담은 어떻게 하세요."

-> "저는 방문이요." "저는 전화요."

     "저는 안 해도 될 거 같던데요."


어색한 순간에 더 활짝 웃는 사람으로서 오고 가는 대화와 옆자리에 앉은 막내의 컨디션을 살피며 정신이 반쯤 나가있었던 듯하다. 상대방의 관심사와 취향을 반영한 질문들을 할 수 없는 다수가 모인 자리에서 스몰토크에 쥐약인 스스로의 취약성을 다시금 마주했다. 모국어로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말들을 어느 순간부터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대부분은 가장 가까운 관계인 가족들의 가벼운 험담을 타인에게 하는 것이었다. 배우자와 다퉜던 이야기, 자녀가 양육자의 말을 듣지 않는 상황, 부모님 일로 고생한 이야기 등. 그중에서도 특히 자녀의 험담을 배우자에게 늘어놓지 않기로 했다. 아이들과 지역 내 문화행사를 즐기기 위해 여러 채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 일환으로 유일하게 가입하지 않은 커뮤니티는 맘카페가 되어버렸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야 착각쟁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