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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Nov 22. 2023

짜고 치는 구구단

"딱 한 개만 골라보자."

아기랑 마트에 가면 나오는 단골멘트다. 그렇게 아기들은 숫자를 자연스레 알아간다. 두 자릿수는 엘리베이터, 세 자릿수는 아파트 동수, 네 자릿수는 차 번호판을 보고 읽는 법을 배웠다. 이후 연산은 유아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워크북 한 권으로 끝냈다.


대형 업체의 학습지 한번 해보지 않고 입학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는 1학년 생활을 무리 없이 마칠 수 있었다. 한글을 따로 학습하지 않아도 그림책을 보다가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수학을 미리 배우지 않아도 간단한 연산 정도는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학습지나 학원을 다니지 않는 아이에게 방학마다 주어진 과제를 위해 연산문제집을 구입해 주었다. 여름방학에는 덧셈과 뺄셈, 겨울방학에는 다가오는 곱셈구구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책꽂이에 꽂혀있었고, 아이는 아주 심심해서 몸부림치는 날 정도만 겨우 한 번씩 꺼내보는 정도였다.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간 아이는 수학에서 별다른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세 자리 수와 여러 가지 도형, 덧셈과 뺄셈, 길이 재기 등 무난히 1학기를 마치는가 싶었는데 마지막 단원은 곱셈이 기다리고 있었다. 곱셈의 원리를 배우며 함께 진행되는 구구단은 지금까지 다른 단원들과는 달리 빠르게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아이가 미처 체감하기도 전에 주간학습계획으로 미리 확인한 나 역시 당황스러웠다. 월요일 2단, 화요일 3단, 수요일 4단... 한 교시에 하나씩 해치우며 2주면 9단까지 배움을 완료하고 수행평가까지 보는 식이었다. 왜 그렇게 모든 가정에 구구단 벽보가 붙어있고, 미리 선행학습을 하는지 알 것만 같은 순간이었다.


마치 미리 배우고 온 것들을 학교에서는 개념설명을 듣고, 최종확인을 받는 느낌이었다. 아이는 예상대로 모든 구구단을 완벽히 숙지하지 못했다. 정확히 알고 있는 부분은 2단과 3단, 5단과 9단으로 드러났다. 어려워 보이는 9단을 아이가 숙지하게 된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곱셈구구 중에서 9의 단은 두 손을 잘 이용하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두 손으로 하는 9의 단 곱셈구구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합니다. 먼저 손바닥이 보이도록 두 손을 펴고 왼쪽부터 차례대로 손가락을 1부터 10까지 수를 매깁니다. 그림과 같이 9의 단에서 곱해지는 수의 손가락을 접습니다. 접힌 손가락을 기준으로 왼쪽 손가락의 개수는 10의 자리, 오른쪽 손가락의 개수는 1의 자리가 됩니다. 그림에서 접혀 있는 손가락을 기준으로 왼쪽에 손가락이 두 개, 오른쪽에 손가락이 일곱 개가 있으므로 27이 됩니다.

- 조수윤, 수학개념사전 1, 뭉치수학왕, 2021

두 손으로 9의 단 곱셈구구가 되는 까닭은 먼저 9의 단이 가진 특징 때문입니다. 먼저 9의 단 곱셈의 결과는 십의 자리 수와 일의 자리 수를 더하면 항상 9가 됩니다. 손가락은 하나씩 접으면 항상 9개가 됩니다. 또한 9의 단 곱셈구구에서는 십의 자리 숫자는 1씩 늘어나지만 일의 자리 숫자는 1씩 줄어드는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점이 바로 손가락 곱셈구구가 가능한 이유가 됩니다.


유일하게 빈둥거리며 읽기를 좋아하던 아이는 책을 보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암기하지 않아도 두 손으로 9의 단 곱셈구구를 알게 된 것이었다. 한마디로 운이 좋게 다행히도 얻어걸린 식이다. 2학년 여름방학부터 한겨울이 다가오는 요즘도 틈만 나면 잊지 않도록 알림장에는 '곱셉구구 연습'이 쓰여있다.



어쩔 수 없이 펼쳐드는 연산문제집에 7단이나 8단이 보이면 밝기만 하던 아이의 낯빛이 어두워지는 것만 같아 애써 모른 척 외면한다. 하지만 나서지 않아도 될 때 굳이 나서서 어려움을 도와주려는 이가 있다. 두 살 아래 동생은 예비 초등학생이지만 집에서 보고 들은 게 있으므로 구구단 정도는 오히려 더 자신감이 넘친다.


모르는 것은 누나나 엄마에게 물어봐서 2단부터 9단까지 화이트보드에 빼곡히 적어둔 뒤, 누나에게 말한다.

"누나, 문제를 불러봐. 내가 말해줄게!"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다."


아이는 아주 흐뭇한 표정으로 동생이 들려주는 답을 누워서 떡먹기 하듯 적고 있었다. 그 동생은 본인의 아이디어가 놀라운 듯 세상 사람 좋은 미소를 장착하고 애써 또 외면하는 나에게 말을 건넸다.

"엄마, 우리 천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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