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체중

by 쥐방울

겉모습으로만 보았을 때 나도 전성기라는 것이 있었다. 때는 바로 유치원생 시절. 사진을 보면 작고 여리여리한 꼬맹이가 내가 맞나 싶지만 얼굴을 보면 맞긴 맞다. 이것은 이 시기가 아무 고민 없이 마음이 평온하고 행복했음을 의미한다. 이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것은 정확히 초등 2학년이었다.


외향형이었던 여자아이는 보직을 맡고 있던 2학년 학급에서 어느 날 선생님과 아이들이 단체로 개똥벌레 동요를 개사해 잘 가라는 의미로 불러주셔서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 다음날 다른 지역의 학교로 등교했다. 다음 해에는 또 새로운 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마지막 전학은 초등 5학년으로 기억한다.


먹고사는 게 더 중하기에 따로 어린 자녀와의 상의는 없었다. 그저 입력받으면 출력하는 식으로 계속 적응의 연속이었다. 여기서 적응할만하면 저기서 또 애써보라며 리셋버튼으로 눌러 새로운 명령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그동안 계속 먹었다.


살기 위해 먹는 건지 먹기 위해 사는 건지 모를 만큼 맛있는 건 주위에 널렸다. 배가 고파서 먹기도 하고, 잘 차려진 밥상에 눈이 돌아가서 먹기도 하며 코끝을 자극하는 밥내음에 손이 움직이기도 했다. 여자아이에게 따로 몸을 움직이는 사교육은 시키지 않으셨고, 나 역시 운동에는 흥미가 없었다.


2차 성징이 시작되며 부모보다 친구관계가 더 중요한 고학년에는 내 불어난 몸집이 또래와 가까워지는데 걸림돌이 된다는 말을 들었다. 충격적이었지만 먹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오히려 더 먹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얼마 못 가서 엄마의 눈에도 그렇게 비쳤는지 돼지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자극받기를 바라셨다.


지금은 이렇게 귀여운 돼지가 그때는 눈물 나게 듣기 싫을 정도였다. 당근이 필요한 아이에게 매를 든 것이다. 안아주고 같이 산책하는 대신 그저 덜 먹기를 바라셨다. 잘못된 저격이었으니 당연히 변화된 결과는 없었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내 편은 없는 것 같을 때 중학교 배정 원서를 쓰며 새로운 시작을 도모했다.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대개 집 근처 중학교를 가는 분위기였고, 부모님도 당연히 그럴 거라고 예상하셨다. 하지만 나는 버스를 타고 20분 가야 하는 신설 중학교에 배정되었다. 의아한 결과에 나는 추첨식이라 뭐 그런가 보다 하며 태연하게 넘겼지만 그것은 스스로 1순위에 써낸 학교가 배정된 당연한 결과였다.


공지영 작가의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에세이에 사랑이란, 홀로 있기를 가장 행복해하는 사람이 자신의 일부를 다른 이를 위해 내어 주는 것이라고 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집 근처 중학교에서 힘들 것을 예상하여 도망친 곳에서 힘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몸과 마음 그리고 학업으로 힘든 학창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단짝친구가 매 시기마다 있었다. 나처럼 잘 먹는 친구였을 때도 있고, 입이 짧거나 잘 먹지 않아 마른 친구였을 때도 있다. 결혼을 하며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려도 몸에 대한 평가는 끊임이 없다.


출산 후 수유를 하며 계속 먹어대는 나에게 미혼인 동생은 출산 후 6개월이 골든타임이라며 친절히 팩트폭격을 날려주었다. 누가 그걸 모르겠냐며 되받아치고 싶기도 했고, 임신 때 밥 한번 먼저 먹자고 해주지 않았으면서 그게 무슨 조언이냐고 반응할뻔했다. 쓸데없는데 에너지 소비하고 싶지 않은 나는 그냥 거리를 두었다.


세 번째 출산을 하고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엄마가 집에 방문하신 날이었다. 엄마는 홈쇼핑에서 속옷 세트를 샀는데 너무 많다며 3세트나 주고 가셨다. 디자인도 사이즈도 나한테는 맞지 않는 속옷들을 한구석에 처박아놓으며 잠시 떠올렸다. 아줌마가 된 몸뚱이를 이제 엄마와 정말 동일시하는 것일까, 아니면 포기한 것일까.




요즘이야 닭갈비도 집에서 만들어먹고, 샐러드도 배달로 주문을 하며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지만 먹지 못하는 고민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님 세대는 달랐을 것이다. 흰쌀밥은 제사상이나 생일날에만 보았고, 귀한 반찬들은 식구 많은 집에서 가장이 아니고서는 먹기 어려웠다고 들었다.


사랑을 원했지만 굶기지 않을 뿐 아니라 맛있는 밥상을 항상 차려내던 엄마의 마음도 사랑이었을 것이다. 고기와 생선을 밥 위에 올려주던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사랑한다고 말 한마디 표현하지 않았지만 자녀를 배불리 먹이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고 사랑이라고 보여주시는 것 같았다.


명절에 큰아버지댁에 가면 큰어머니는 오자마자 따끈따끈한 밥과 생선이 포함된 상을 차려주셨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간식을 먹었던 나는 엄마에게 배가 고프지 않다고 신호를 보내지만 엄마는 그냥 조금만 먹어보라고 눈짓을 보내셨다.


여러 풍파를 겪은 내 몸도 이제 고요해졌다. 마구잡이로 음식을 찾지 않고, 수유가 끝나자마자 무언가를 입에 넣지 않는다. 수렵 채집 사회의 인류처럼 아침부터 고기를 찾아서 먹을 때도 있고, 한 끼를 건너뛰기도 한다. 배가 고프면 몸에 음식을 넣어주고, 배가 고프지 않으면 산책을 하거나 다른 활동에 집중하려고 한다.




초등학생인 첫째 아이의 건강검진 결과서에는 과체중에 동그라미 표시가 되어 있었다. '과하다'는 의미의 '과'는 이상하게 어감이 좋지 않다. 그래도 이미 벌어진 결과보다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도 했다. 식사는 저녁 6시 먹고 끝내며 산책과 안아주는 것. 음식을 찾을 때마다 배가 고픈지 물어보는 것이 전부다.


먹는 것에 관심이 없는 둘째 아이는 누나와 장난을 치다가 이런 문장을 써 놓았다.

"우리 누나는 살이 쪘다. 잡식이다. 또 누나는 돼지다. 그리고 우리 누나는 나한테 멸치라고 했다."

흔한 남매에서 보았을 때는 즐거워했지만 직접 본인이 이런 상황에 놓이자 첫째 아이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신경을 한껏 곤두세우고 있는 아이 앞에서 화사의 <I Love My Body> 노래를 재생하고 가사를 잘 들어보자고 말했다. 상대방이 장난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장난은 더 이상 장난이 아니라고 말해주며 둘째 아이에게 우리는 멜로디를 입혀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불렀다.

"살 빠졌네 안 빠졌네?" 그게 왜 궁금한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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