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진 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내 누군가 곁을 맴돌듯 풍문처럼 말해주었다. 생후 28개월. 엄마가 뱃속 아기를 출산하러 병원에 있는 동안 난 처음 보는 외할머니에게 맡겨졌다. 그 시절 외할머니는 감히 상상도 하기 어렵지만 8번째 출산으로 엄마를 낳으셨다.
마음과 달리 몸이 많이 약해졌을 외할머니에게 아기를 돌보는 일이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막 두 돌을 넘긴 아기와 시장에 나간 외할머니가 길을 잃어 돌아오지 않는다는 소식이 엄마에게 전해졌고, 결국 갓 출산한 몸으로 엄마는 우리를 찾기 위해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엄마는 어미와 새끼를 지키는 여인이었다.
베이비부머 세대에게는 남아선호사상이 잔존해 있었는데 혼전임신으로 태어난 아기가 기대와 달리 딸이었다. 혼전임신이냐는 질문을 감히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결혼기념일과 출생 연도를 따져보았을 때 나올 수 있는 단 하나의 결론이었다. 결국 세상에 나온 딸을 아들처럼 잘 키워보자는 마음으로 키워나가셨다.
하지만 자녀계획은 약속시간을 지키는 것처럼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예상과는 달리 두 번째 자녀를 맞이하게 된 부모는 또 한 번의 딸이 탄생함으로써 아쉬움이 잠시 스치기도 했다. 그래도 그것은 잠깐이었고, 아들처럼 키우는 것은 첫째 하나로 족했다. 모든 막내가 부모에게 그러하듯 귀여운 생명체 그 자체였다.
그렇게 가족 구성원이 완성되었다. 첫째로 태어난 자녀는 한 번쯤 이런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내게 언니나 오빠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물론 그 가정은 친절하게 공부를 알려주는 언니나 교회 오빠 같은 스타일이었을 때 가능하다. 그리고 외동이었다면 심심하긴 했을 테지만 그 사랑을 온전히 다 차지하기도 하겠지라는 상상.
5세 무렵 한 순간이 기억난다. 엄마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한낮에 주거래은행을 걸어서 자주 다니셨는데 나는 동생이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도 유모차에 앉아서 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만 봐야 했다. 부러움에 목소리를 내면 한 번에 질문을 잠재우는 마법과도 같은 답변이 들려온다. "동생이니까."
먹는데 진심인 부모님은 제철음식을 잘 챙겨드셨다. 봄에는 주꾸미, 여름에는 보양식, 가을에는 새우, 겨울에는 굴. 집에서 굵은소금을 팬에 깔고 통통한 생새우를 사다가 소금구이를 해 먹던 날이었다. 어느 정도 배가 찼을 때 엄마는 새우껍질을 까서 느리고 입이 짧은 동생의 접시 위로 손이 바삐 움직였다.
몸에서 필요한 에너지 열량만큼 충분히 섭취했으니 멈추어도 되었을 식사를 멈출 수 없었다. 엄마의 마음이 자꾸만 기우는 것 같았다. 어리고 약해서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싫었다. 엄마가 껍질을 까놓은 새우는 물론이고 껍질을 직접 벗겨서 동생이 먹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먹기 시작했다. 과식의 시작이었다.
형제, 자매, 남매들이 많이 싸우면서 성장한다고 하지만 우리에겐 그럴 틈이 별로 없었다. 식당에서는 말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있어야 했고, 집에서는 TV를 틀어주셨으니 당연히 대화는 사라졌다. 그리고 아빠의 무서움이 큰 몫으로 작용하여 목소리가 커질 틈이 없었다.
그러니 청소년이 되어서야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시면서 우리는 진짜 싸울 수 있었다. 집에 나와 동생 단 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싸움의 원인은 언제나 그러하듯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개 가까운 거리의 사람들이 서로를 배려하지 않고 말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그날도 화가 났고, 화를 표현했다. 화는 내면 낼수록 더 커지는 법이었다. 그러데이션처럼 점점 커지는 이 화를 시시하게 마무리하면 얕보일 수 있으니 화룡점정이 필요했다. 그 순간 생각난 것은 아침저녁으로 집안에 울려 퍼지는 막장 드라마. 막장드라마가 브라운관에서 현실 속으로 튕겨져 나왔다.
심의에 따른 프로그램 연령 제한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어린이에게 과도하게 자극적인 장면이 노출된 결과 부작용이 발생했다. 드라마 속 장면이 한동안 꿈속에 나와 수면을 방해했고, 동생과 싸우는 현실 속에서는 복수를 꿈꾸는 여주인공으로 빙의되어 찰싹 소리가 울려 퍼지고 말았다.
사랑은커녕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첫째 자녀들이 둘째나 외동이 되는 헛된 상상을 하는 동안 둘째나 막내들은 집안에서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갔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부모도 일조할 수 있지만 막내에게 제일 퍼붓는 건 바로 손위형제다.
가훈은 남녀가 혼인하여 가정을 이룬다고 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자녀의 출생신고와 함께 탄생되는 것도 아니다. 초등학교 알림장에 가훈을 써오라는 숙제가 있던 날, 엄마에게 우리 집 가훈을 물었다. 갑자기 가훈이 있을 리가 없으니 엄마는 아빠에게 물어보라고 하시면서 가훈의 생성을 위임했다.
그 결과 <거짓말을 하지 말자>라는 가훈이 나왔고, 그것은 자녀들에게 특히 강조되었다. 타인에게만 요구되는 도덕적 실천 가르침이라는 것이 이상했다. 아빠처럼 나도 초등 고학년이 되었을 때 초등 저학년인 동생에게 욕을 하지 말자는 개똥철학을 설파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함께 비속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실천했다.
초등학생 때 피자와 햄버거를 먹어본 일이 손에 꼽을 만큼 적었던 이유는 모두 엄마 덕분이다. 전라도 여성인 엄마는 손이 크고 손맛이 좋아 대부분의 한식 메뉴를 뚝딱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초등 저학년 때 친구를 데리고 집에 온 날 엄마는 집에 있는 재료로 무엇이든 한상을 차려내셨다.
동생이 초등 저학년 때는 엄마가 일을 시작하셔서 평일 오후가 되어도 나와 동생 둘 뿐이었다. 동생의 친구들이 놀러 온 어느 날 나는 엄마처럼 집에 있는 과일을 깎고, 라면을 끓이며 간식거리를 내어주었다. 내가 받았던 베풂과 사랑을 고스란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