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베개

by 쥐방울

술에 취한 아빠의 모습을 처음 본 것은 내 나이 5세 무렵으로 기억된다. 전후사정은 전혀 기억나지 않고, 사진처럼 스며든 딱 한순간은 아빠가 만취상태로 택시에서 내리는 장면이다. 술에 대해 좋고 싫음이 없는 나이에 술을 마시면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마주했다.


초등학교에서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부모님께 쓰는 편지에는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감사하다는 거의 공식적인 문장 외에 빠지지 않고 쓴 것이 있었다. 술을 조금만 드시라거나 줄이시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매년 문구만 바꿔서 마무리했었다.


편지를 받아본 아빠는 항상 별다른 답변이 없으셨다. 술을 줄이라는 딸의 편지는 마치 매년 명절에 뉴스에서 고속도로 정체 소식을 전하는 것과 다름없이 느끼셨던 것 같다. 바람과는 달리 집에서 반주를 즐기시던 아빠는 특히 딸들이 채워주는 술잔을 흐뭇해하셨다. "받으세요."


부모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알지만 아빠의 독재적인 양육태도 때문에 초등 저학년 때는 싫어도 싫다는 표현을 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점점 내가 싫은 게 무엇인지조차 모르게 되고, 부모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싫은 것을 표현해도 되는지 애매한 적도 많았다.


집에서 반주를 드실 때 술병을 들고 술잔을 채워드리는 행위는 아빠가 술을 적당량 드시기에 딱히 어린이로서 불편한 점은 없었다. 온몸의 신경이 한껏 예민해지는 경우는 아빠가 밖에서 술을 드시고 귀가하는 날이었다. 술을 과하게 드시기에 집에 돌아오시면 평소와 달리 굉장히 감정적인 사람으로 변한 듯 느껴졌다.


기분이 좋은 경우, 잠들지 않은 딸들에게 술냄새를 풍기며 애정표현을 하셨다. 기분이 나쁜 경우, 화를 그대로 집까지 품고 들어와 괜한 엄마와 딸들에게 화살이 돌아가곤 했다. 평소 대화가 없이 정적만 흐르는 관계도 무섭지만 잠시라도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더 무서웠다.


몸과 마음이 또 한 번 성장하는 청소년기가 되자 더 이상 술을 마시고 표현하는 과한 감정을 감당할 수 없어 피하기 시작했다. 생각해 낸 최선의 방안은 자는 척이었다. 누워서 잠들지 않았을 때 현관문 소리가 들리면 재빨리 눈을 꼭 감았다. 숙제를 하다가도 재빨리 불을 끄고 이불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 무렵부터 나는 아빠의 술잔을 채우지 않았고, 아빠가 권유하는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잠들고 싶지 않은 순간, 아무리 누워도 잠이 오지 않는데도 이불속에 몸을 욱여넣었던 것은 본능적으로 그곳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몸과 달리 깨어있는 머리는 계속해서 눈시울을 붉혔다.


눈물베개의 시작이었다. 알코올향 가득 품은 뾰족한 턱수염의 애정표현을 피하고, 바깥에서 겪은 억울함과 화의 불똥을 피하고자 도망친 이불속은 습관이 되어버렸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도움을 요청하기보다는 행여 스스로에게 그 원인이 돌아올까 두려워 눈물로 베개를 적시는 일이 다반사였다.


신체활동 부족으로 몸은 점점 불어만가고, 내성발톱을 수술해서 엄지발가락은 붕대로 칭칭 감아졌다. 밤새 소리 없이 흘린 눈물로 눈도 퉁퉁 부어 있던 때가 중2였다. 얼굴부터 발가락까지 겉으로만 보아도 일반적이지 않았을 그때 아무도 묻지 않았다.


'눈이 왜 이렇게 부었어?'

'내성발톱 수술이 n번째인데 괜찮은 거야?'

'배가 고픈 거야? 마음이 고픈 거야?'

'요새 힘든 일은 없어?'


나조차도 그때의 붓기, 몸무게, 신발사이즈 모두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발가락에 붕대를 풀었어도 신발사이즈는 발이 커졌는지 큰 신발에 익숙해졌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내 눈의 붓기도 눈물베개만큼이나 익숙해져 있었다.


눈물베개에는 사랑이 없다. 그리고 어느새 습관이 되어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베개에 익숙해진다. 함께 울어줄 이가 없다면 베개를 끌어안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 숨을 참아가며 몰래 울지 말고, 세상에 태어났을 때처럼 나 힘들다고 살려달라고 숨 쉬며 울어야 했다.

'호흡하며 울고 살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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