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통계포털에서 확인한 22년도 연간 혼인건수는 19만 1,690건, 이혼건수는 9만 3,232건이었다. 한 해에 100쌍이 결혼하면 48쌍의 누군가는 이혼한다는 것이다.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기 마련이라는 고사성어도 있지만 실제 수치를 눈으로 확인하니 그간 흘러온 세월만큼 변화된 사회적 인식도 체감할 수 있었다.
브런치스토리에서는 직장인 퇴사만큼 이혼이라는 주제가 인기글 상위에 차지하고 있다. 방송에서는 <돌싱글즈>, <우리 이혼했어요>, <결혼과 이혼사이> 등 예능프로그램을 만들어내며 관계에 대해 훨씬 자유로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20년 전만 해도 이혼에 대한 언급은 요즘과 달리 거의 금기시되는 분위기였다.
여기저기 많이 들리는 이혼 소식은 예전에 없다가 요즘 들어서 많아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어린 시절 외가에서도 이혼소식이 들려왔는데 엄마가 직접 말씀해 주신 적은 없었다. 부부관계가 깨진 것이지 범죄자가 된 것도 아닌데 꼭 절대 알려지면 안 되는 것처럼 느껴져 추측만 하게 되었다.
베이비붐 세대의 부모님은 이혼을 마치 실패한 개인, 넓게는 자녀의 앞길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생각하셨던 것 같다. 엄마는 이혼한 외삼촌에게 아픔을 위로하기도 전에 개인의 직장과 하나뿐인 자녀의 미래 혼사를 먼저 걱정하셨다.
엄마는 내조의 여왕이었다. 매일 똑같은 집안일을 해도 다음날이 되면 리셋되는 살림과 육아를 도맡은 것은 물론이고, 주요 수입원이었던 아빠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기꺼이 투자하셨다. 가장으로서 아빠는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새벽부터 밤까지 도서관에서 업무와 관련된 자격증을 취득하고자 공부하셨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아빠는 꼭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을 챙겨가셨다. 엄마는 아빠의 완벽한 조력자였고, 자녀의 눈에는 전혀 동등한 관계로 보이지 않았다. 엄마도 처음부터 아내와 엄마로 살아가려 태어난 것이 아닐 텐데 말이다. 그녀도 꿈 많은 소녀였을 것이라는 생각은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든 생각이었다.
장남으로 태어났어야 할 아빠의 첫 아이는 딸이었다. 아빠는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딸을 아들처럼 키우겠다고 마음먹으셨고, 이후 가정은 집안의 유일한 남성이었던 아빠를 위주로 돌아갔다. 그러는 동안 자연스럽게 아빠와 시간을 가지지 못한 채 성장한 청소년은 무언가 부당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사극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식사예절과 웃어른 공경은 당연하고, 아빠의 기분은 항상 태도로 드러나기에 모녀는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밥상을 뒤엎는 일도 발생했고, 함께 일하는 여자 동료에 대해 집에서 흉을 볼 때는 여성을 낮잡아 이르는 말을 집안의 여성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입에 올리셨다.
아빠 딸도 여자인데?
이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성인이 되면 엄마 같은 사람이 되겠다는 느낌표가 생겨났다. 주방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하는 아빠에게 물 한잔까지도 직접 배달해 드리고선 설거지하며 중얼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았다. 엄마에게 도움이 되려 주방에 들어서자 돌아온 답은 미래를 귀로 듣게 된 순간이었다. ‘결혼하면 많이 할 텐데 뭐.’
사랑해서 결혼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은 희생 그 자체였다. 직접 언급하신 적은 없지만 마치 엄마가 이 가정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두 딸들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딸들에게 한 번도 의사를 묻지 않으셨는데 그저 대화 없는 가족이라도 그 형태를 유지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적막이 흐르고, 같이 있으면 어색해서 오히려 빨리 잠들어버리고 싶은 부녀관계. 싫은 것을 싫다고 표현하기도 어려웠지만 아닌 것을 아니라고 표현하자 위협당할까 두려워 겁먹었던 날이 있었다. 아빠에게 들었어야 할 사과는 듣지 못하고, 애꿎은 엄마는 미안하다고 하셨다.
내내 상상하고 추측만 했던 것에 대해 확신을 가진 순간이었다. 양부모가 다 있다고 모두가 행복한 건 아니라고 스스로 증명했다. 곧장 집을 나갔어야 했는데 내방 책상에서 펑펑 울며 이런 생각만이 나를 에워쌌다. '이럴 거면 차라리 이혼을 하지.'
삶과 죽음에 관련된 글이나 강연을 보면 꼭 나오는 것이 있었다. 본인이나 부모님의 마지막 삶의 순간을 내일이라고 생각하며 하지 못했던 말들을 당장이라도 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항상 보는 관계이기에 오글거려서 의례 생략하던 사랑한다는 부류의 말들이다.
10대에는 학교란 교육기관이 있기에 입으로 말씀드리지는 않았어도 종종 편지를 써서 드렸던 기억이 있다. 20대가 되어 사회에 나오고 가정을 꾸리며 아무리 극단적인 상황을 상상해 보아도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표현이 잘 나오지 않았다.
하루에도 여러 번 내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부모님께는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었을까 떠올려보니 내가 직접 들어본 기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이 있어야 할 곳에 없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후회로 남을 것도 없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해야 할 일은 아이들에게 더 많이 사랑을 표현하고 안아주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