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첫째 아이의 인기척에 눈을 뜨고 비타민 한 알 입에 털어 넣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이미 식탁 의자에 앉아 식사를 기다리는 아이에게 빵과 우유로 간단히 아침을 차려주고, 아이들 물병에 물을 채워 넣었다. 아참, 배우자의 물병도 함께.
곧이어 일어난 둘째 아이는 아침엔 영 입맛이 없기에 바나나 하나로 가볍게 합의를 보고 다른 날과 다름없이 집안일 루틴을 이어갔다. 쌓인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식기세척기도 ON. 학교 갈 준비를 마친 아이의 머리를 묶어주고, 엄마인 나는 세수만 한 채 외투를 입고 둘째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세탁을 마친 빨랫감을 다시 건조기에 넣어주니 막내가 일어났다. 부스스한 모습으로 우유 한잔 마시고 외출준비를 해서 함께 마트로 향했다. 사람이 많은 대형마트에서 꼬맹이를 카트에 태워 한 시간을 꼬박 분주히 스캔하며 카트 한가득 채워 담았다.
어찌어찌 장본 물건들과 아이를 차에 다 실어서 아파트 주차장까지 왔으나 이제 집으로 올라가는 것이 관건이었다. 커다란 타포린백에 자잘한 것들을 모두 담고, 엘리베이터로 두 번을 오가며 옮겼다. 같이 이동한 아이는 본인이 고른 시리얼과 바나나를 들고 현관을 열어주며 제 몫을 해주었다.
한숨 돌리고서야 아이에게 아점으로 주먹밥과 과일을 차려주며 나도 델리코너에서 구입해 온 초밥을 꺼내 흡입했다. 30대가 되어 초밥의 맛을 알게 되었지만 배우자는 후쿠시마 오염수방류 사건으로 해산물을 멀리하게 되었다. 그래서 초밥 같은 건 이제 혼밥 하지만 그렇다고 행복감이 줄어들진 않았다.
오전 내내 기계 속에 있던 빨랫감이 이제 보송한 채로 나와 제자리를 찾아주니 어느새 아이들이 하교와 하원할 시간이 되었다. 방과 후 요리수업에서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만들어온 아이는 집에 오자마자 사진으로 남겨두어야 한다며 촬영을 했고, 우리는 촬영을 마치고 맛볼 생각에 기다리고 있었다.
케이크를 반정도 먹고, 오늘 장 봐온 딸기도 내어주었는데 그래도 배고픈 아이는 이른 저녁을 먹고 싶어 해서 파스타를 해주었다. 면을 좋아하지 않는 둘째는 원하는 대로 밥과 치킨너겟을 차려주었다. 그렇게 저녁 6시도 되지 않아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주방을 마감했다.
각자 할 일을 마치고, 배도 불러서 몸으로 놀기 시작한 아이들은 점점 텐션이 올라갔다. 잔소리 타이밍을 보고 있던 찰나 이틀 전에 주문해 둔 책이 택배로 도착했다. 학습만화와 좋아하는 시리즈 신간이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한 권씩 들고 한 명은 소파, 한 명은 침대에서 자유롭게 보기 시작했다.
조용해도 너무 조용해졌다. 그리고 얼마 뒤 먼저 완독 한 아이가 바꿔보자는 제안에 각자 다른 책이 손에 쥐어지고 또 조용해졌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행복감이 온몸에 사로잡혔다. 아무리 하루를 돌이켜보아도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는데 왜 이리도 행복하다고 느끼며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라는 물음표만 생겨났다.
평안한 느낌이 행복감을 주는 하루를 내가 느껴본 적이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처음인 것만 같아 자꾸만 그 이유를 찾고 싶어졌다. 별일 없는 하루, 가야 할 곳이 있는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남아있는 하루였기에 J형인 사람으로서 스트레스가 없기도 했지만 행복의 피라미드 가장 높은 곳에 있던 것은 케이크였을 것이다.
첫째 아이가 만들어온 케이크는 12월에만 세 번째 케이크였다. 둘째 아이가 유치원 쿠킹클래스에서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만들어왔었고, 얼마 전 유치원 졸업식에서 졸업선물로 원에서 선물을 받기도 했었다. 생에 매주 이렇게 홀케이크를 끊이지 않고 먹어본 적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린 시절 산타의 존재를 유추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크리스마스는 우리 집에서 특별히 기대되는 날이 아니었다.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에 선물상자가 와있거나 하는 일은 당연히 없었고, 어딜 가나 사람이 많은 시즌이기에 집에서 보내는 날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 하면 생각나는 딱 한 가지는 케이크였다. 엄마는 어딜 놀러 가거나 특별한 선물이 없는 것이 미안하셨는지 기분을 내기 위해 생일이 아니었는데도 케이크를 사주셨는데 중요한 건 꾸준했다는 것이다. 10대의 크리스마스날에는 항상 케이크가 있었다.
처음에는 케이크칼로 잘 잘라서 접시에 덜어먹다가 입이 짧은 동생과 달콤한 디저트를 잘 드시지 않는 부모님 덕분에 항상 케이크는 거의 내 차지였다. 나중에는 덜어먹지도 않고 상자에서 꺼낸 채 숟가락으로 퍼먹는 수준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참 행복했었던 기억이 있고, 여전히 시전 중이다.
직접 만든 케이크가 신데렐라 음식이라며 다음날까지 먹는 게 좋다는 말을 하는 첫째에게 나는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싱긋 웃으며 동그라미 제스처를 보여주었다. 가족 중 아무도 생일이 아닌 12월에 먹는 케이크가 부모님의 사랑에서 아이들의 사랑으로 이어지고 있다. 모두의 사랑으로 내가 행복해지고 있다. 이런 날이 인생에서 더 많이 채워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