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서울도 지방대도 아닌

by 쥐방울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집순이였던 부모님께서 일일드라마만큼 애청하신 방송은 시사교양프로그램이다. 아빠는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진귀한 일들을 보여주는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를 빠짐없이 보셨고, 엄마는 범죄와 추리사건을 자세히 취재하여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을 챙겨보셨다.


프로그램으로는 <추적 60분>, <PD수첩> 등이 있지만, 오랜 기간 엄마를 비롯한 시민들의 신뢰를 받아온 방송은 단연코 <그것이 알고 싶다> 일 것이다. 아무리 잠들기 싫어하는 청소년이라도 늦은 밤 시간대에 방영하는 그알을 잔인한 장면에 5분도 안되어 방으로 도피하듯 들어가 버리지만 엄마는 굳건히 자리를 지키셨다.


넷플릭스를 틀어놓고 지루한 빨래 개기를 하는 지금의 내가 즐거운 일과 하기 싫은 일을 접목하듯이 20년 전의 엄마도 밀린 일감들을 가지고 텔레비전 앞에 앉으셨다. 예를 들면 고구마순이나 마늘 껍질 벗기기 등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요리의 밑작업을 하곤 하셨다.


딸이 초등학교를 입학하기도 전부터 방영한 <그것이 알고 싶다>는 꽤나 장수프로그램으로 초, 중, 고 학창 시절을 보내는 내내 엄마는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각종 범죄들을 대부분 접하셨고, 이것들의 영향은 자녀로서 여러시기에 느낄 수 있었다.


엄마 본인으로서는 아마도 지루한 밤시간대에 시간 때우기 좋으면서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알아가니 제법 유익한 시간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이것의 연장선으로는 직장이나 동네 미용실에서 빠지지 않는 대화의 소재거리로 등장하니 수다를 위해서도 필수로 시청하는 것이 도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자녀인 딸에게 미치는 영향으로는 삶에서 안전이 최우선 되는 위험회피환경의 가스라이팅이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 잠은 집에서 자야 한다는 이유로 친구집이나 가까운 친적집에서도 하룻밤 지내는 것을 절대 허락해주지 않아서 파자마파티와 유사한 경험이 한 번도 없었다.


이후 초등학생 때는 반에서 해외에 가본 경험이 있는 아이가 손에서 꼽을 만큼 적은 시대였기 때문에 호기심이 폭발할 시기였는데 엄마는 타국은 치안이 좋지 않아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줄곧 해주셨다. 스무 살이 넘어 아르바이트해서 돈을 모아 제멋대로 떠난 해외여행 덕분에 알게 되었다. 모든 나라가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초등시절에는 해외 유학이라도 가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는 형편이라는 것을 깨닫자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살길이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제대로 된 방법을 모르는 공부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 욕심 많은 중학생은 SKY대학을 가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인문계 여자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고1 3월 첫 모의고사를 보던 날 담임선생님은 지금 성적이 수능 성적과 유사할 것이니 최선을 다해서 보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성적표를 마주하고는 코웃음을 쳤다. 수능까지 남은 2년 반동안 죽어라 노력하면 여기서 한두 등급은 더 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고등에서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없었다. 고1 담임의 예언대로 고등 첫 모의고사 성적 그대로 수학 2등급, 나머지는 3등급 내외로 최종 수능성적표를 받게 되었다. 진로를 정하게 될 고등시기에는 참으로 애매한 성적으로 스스로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해 참담한 심정이었다.


무리를 해서라도 상향지원으로 인서울 대학에 원서접수를 할 것인지, 아예 학비가 저렴한 지방 국립대를 지원할 것인지 여러모로 고민을 했을 당시 엄마의 조언은 딱 한 가지였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에 지원하라는 것이었다. 학교의 네임밸류도 상관없고, 원하는 학과 어떤 것이든지 관여치 않으셨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교는 정확히 10km 떨어져 있고, 바로 가는 버스가 있었으며 차로는 20분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우리 집은 수도권이었지만 서울은 아니었고, 지방이라고 할 수도 없는 곳이기에 대학도 내 성적만큼 참으로 애매했다.


기숙사도 안되고, 자취는 더욱 안된다던 엄마였기에 자연스레 어서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조금 더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덕분에 인서울도 지방대도 아닌 학교에 입학하여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으면서 1학년 1학기를 제외하고 직장인처럼 아르바이트하고서야 엄마의 가스라이팅으로부터 멀어졌다.




아이는 패러글라이딩과 수상스키는 물론이고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일주를 꿈꾸는데 부모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이 아는 땅을 벗어나는 것을 위험하다고 인지하며 주입시켰다. 그러자 처음에는 사랑을 느꼈던 그 아이도 나중에는 사랑이 아닌 분노를 품게 되었다.


분노를 품은 아이는 때가 되면 뒤돌아보지 않는다. 부모는 어떻게 이리도 자신들에게 멀어져 있고 다가오지 않는지 물음표를 가지지만 아이는 그동안 그들이 힘껏 잡아당긴 만큼 더 멀리 나아가는 중이다. 부모와 자녀는 각자 본인만의 길을 가다가 지칠 때 잠시 사랑이라는 휴게소에서 만나 관계를 유지하는 정도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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