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사주는 남자

by 쥐방울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주말에 공부를 좀 알려달라는 같은 과 남학생의 요청으로 집 근처 지하철역 7번 출구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잡게 되었다. 공과대학에 여학생의 비율은 10% 미만이었기에 같은 과 동기가 남자라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편인데 이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 미스터리다.


과 동기는 고졸 이후 바로 회사에 입사하여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니 관련학과 대학 졸업장의 필요성을 느껴 학업을 시작하기 위해 입학한 경우였다. 그래서 같은 연도에 입학한 동기가 분명하지만 20살인 나보다 네 살 많은 24살이었다. 선배도 아니고, 그냥 이름을 부를 수도 없지만 반말을 해대며 호칭만 오빠를 붙였다.


공과대학 1학년 수업은 전공과목을 수강하기 전에 수학이나 물리 등 기초과목들을 수강해야 하는데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데다 공부에 손을 놓은 지 오래되었다며 고등수학을 알려달라고 했다. 아무래도 학교에서 누군가가 무언가 물어보거나 요청하면 눈부터 동그랗게 뜨고 상세히 알려주어서 타깃이 된 것 같다.


필기한 것도 잘만 공유했는데 나중에는 아예 복사기에 들어가기 좋게 A4용지나 노트패드에 필기를 하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교외에서까지 재능기부를 결심하게 된 것은 어린 시절 축적된 경험이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생 시절 엄마가 보내주신 보습학원에 수업시간보다 훨씬 일찍 가서 어린 친구들의 숙제를 도와주는 것을 좋아했고, 그것이 학창 시절 내내 이어졌다. 그래서 데이트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밥을 사주겠다는 것도 아니며 보상을 따로 주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순순히 번화가 로데오거리 앞에 각자 백팩을 메고 나타났다.


복잡하고 소란한 프랜차이즈 카페를 제외하고, 조용하고 눈치 안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정말 문제집을 꺼내 들고 공부란 것을 했던 것 같다. 요즘 말하는 카공족이었다. 그리고 한두 시간 지나 식사시간이 되면 밥집을 찾아 나섰고, 수업료인 것처럼 대부분 밥을 사주었다. 덕분에 더치페이란 것을 거의 모르고 학교생활을 했다.


밥을 사주면 커피는 내가 사야겠다는 마음이 있었기에 편하게 밥을 얻어먹는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밥을 사주던 시기는 1학년 입학 초기에만 그치지 않았다. 학교에 어느 정도 적응된 이후에도 4년 내내 시험기간만 되면 밥집과 카페 혹은 밥집과 도서관이라는 루틴이 있었기에 거의 졸업까지 유지되었다.


시험기간에 같은 과목을 공부한다는 말인즉슨 수강신청 기간마다 같은 과목을 암묵적인 상의하에 클릭했다는 것이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엄마는 딸이 학교에 공부하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거의 밥 먹으러 학교 간다는 것도 알게 되셨다.


직장인 신분에 학업을 지속하던 동기는 자가용이 있었기에 밥집의 경로는 교내식당뿐만 아니라 학교 근처 차로 갈 수 있는 거의 모든 맛집을 가게 되었다. 동계시즌에는 늦게 끝나는 수업을 마치고 하이원에 야간권을 끊어 보드를 타러 간 적도 있었는데 이때부터 음식을 제공하는 생리적 욕구에서 상위단계의 욕구들도 채워졌다.


알고 지내는 시간들이 쌓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족관계도 알게 되었다. 그의 남동생의 생일에는 패밀리레스토랑에서 함께 식사를 했고, 갑자기 학교에 결석하는 날은 촉이 좋지 않아서 연락해 보니 역시나 그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이었다.


학교를 다닌 동안 밥을 함께 먹었던 시간만큼은 남자친구보다도 훨씬 많았다. 남자형제도 없고, 여고를 졸업한 내가 처음으로 오빠라고 부르던 밥 사주는 남자는 그 당시 나에게 무지개였다. 무지개는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주인공 나희도가 백이진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단어다.


가족에 사연이 여럿 얽혀있고 흡연하는 그를 진심으로 응원했고, 살면서 계속 얼굴 보며 지내는 관계이고 싶었다. 어느 드라마의 결말처럼 그는 내 결혼식에 와주었고, 나는 그의 결혼식에 참석해서 축하해 주었다. 여전히 그가 잘 살기를 바라며 언젠가 혹시 한 번쯤 마주치는 날도 오면 꼭 커피가 아닌 밥을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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