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 끓이는 남자

by 쥐방울

첫인상은 훈훈한 느낌과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키만 컸지 턱선과 눈썹뼈 등 얼굴 윤곽에 지방 없이 전체적으로 도드라져 보여 센 인상으로 보였다. 분위기를 자아내는 코디는 세 보이지도 센스 있는 패션을 보여주지도 않는 애매함 덕분에 크게 눈에 띄지도 않았다.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복무를 다녀와 복학한 그와는 1학년 2학기부터 함께 학교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저 과 선배로서 같은 수업에서 만나면 인사를 하고, 연락처를 공유하는 정도였다. 나와 그가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나는 수능을 마치고 집 근처 하나로마트에서 설 선물용 갈비를 포장하는 알바를 첫 시작으로 1학년 2학기부터 졸업 때까지 교내 근로를 꾸준히 하는 학교죽순이였다. 그는 학기 중에 서비스직 알바를 하며 용돈을 마련하고, 방학 때는 지방에서 숙식제공되는 고액 알바를 하며 등록금을 마련했다.


그렇게 평일에는 일하고 강의 듣기를 반복하고 주말에는 공부를 하며 겨우 수업진도를 따라잡기 하느라 입 안 곳곳에 발생한 구내염은 점점 나아질 기미 없이 커지고 있던 때에 SNS 메신저로 그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말에 병원을 같이 가주겠다고 나선 그와 뜬금없지만 함께 가게 되었다.


병원 진료를 마치고, 약국에서 처방약을 받아 나올 때까지 정말 동행만 해주었다. 대개 밥 먹자는 제안을 한 사람이 밥값을 내기도 하니까 병원비를 내주려고 그러나 싶었지만 병원에서도 약국에서도 그는 수납을 할 때면 내 뒤로 한두 발자국 떨어져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정말이지 쓸데없는 몹쓸 기대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황금 같은 주말에 여자친구도 아닌 그냥 후배가 아프다고 해서 병원에 함께 와주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던 찰나 약을 먹어야 하는데 빈속에 먹을 수 없으니 죽을 끓여주겠다고 해서 또 미스터리하게도 따라나서고 말았다.


근처에 살던 그의 집에는 누나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마침 일정이 있던 누나는 집을 비우셨다. 그리고 그는 냉장고에 있던 해산물을 꺼내어 뚝딱 죽을 끓여주었고, 죽이란 것을 한 번도 끓여본 적이 없는 나는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고맙게도 맛있게 먹었다. 덕분에 약까지 모두 흡수하고 별일 없이 잘 돌아왔다.


무사히 집에 잘 올 수 있었던 날, 죽을 끓여주던 그에 대해서는 다행히 크게 이상한 사람은 아니라고 인식했다. 그렇게 반년정도 친한 선후배 정도로 지내오다가 찾아온 방학에 그는 멀리 낙동강 근처에서 하루종일 힘든 노동을 하는 일꾼의 삶을 살고 있었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안부전화가 오던 어느 날 끊어질 듯 지속되는 통화가 한 시간 넘게 이어졌다. 몇 초간 발생되는 정적이 어색하지 않고, 수다를 잘하지 않음에도 계속 이야깃거리가 탄생되며 대화가 이어지는 게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때 이후 문자와 메신저 등을 자주 주고받으며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렇게 스무 살에 알기 시작한 죽 끓여주던 남자는 스물한 살에 남자친구가 되었다. 그로부터 5년 후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고, 아직까지는 웃지기도 않은 남자와 슬기롭게 결혼생활을 제법 꾸려가고 있다. 죽 끓이던 남자는 이제 주말마다 제육볶음과 닭볶음탕, 김밥 셋 중 한 가지를 골라 10년 동안 번갈아가며 하고 있다.


첫째 아이를 낳고 건조대에 빨래 널기를 도와달라는 말을 너무 못 들어서 건조기를 구입했고, 둘째 아이를 낳고 설거지 도와달라는 것을 꾸준히 미뤄서 식기세척기를 구입했다. 셋째 아이를 낳고 이제 그가 하는 집안일은 분리수거 정도인데 음식물쓰레기 쌓이는 속도가 무척 빨라서 올해 새로운 주방가전을 들일까 봐 두렵다.


가끔 그가 세탁기를 돌릴 때면 탈수 후 건조기가 있지만 건조대에 널어둔다. 어쩌다 그가 설거지를 할 때면 식기세척기가 있지만 주방세제와 수세미를 찾는다. 아프면 배달어플에서 죽집부터 검색하는 나와 달리 그는 쌀부터 불린다. 그가 죽을 끓이고 병원비는 내가 결제했던 것처럼 여전히 돈은 나만 쓰고 그는 물가를 모른다.


우리는 다르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하나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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