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날이 아니어도 집밥에 흔히 등장하는 메뉴인 미역국. 조개나 갑각류, 흰살생선이나 소고기 등 개인마다 미역에 다양한 재료를 더하지만 엄마의 미역국은 한결같이 소고기 미역국이다. 다양한 풍속 덕분에 미역국을 가장 많이 먹는 때인 산후조리 시기가 나에게도 찾아왔었다.
출산 후 여성의 산후조리와 요양을 목적으로 요즘은 한국에서 흔하게 이용하는 시설인 산후조리원을 세 번의 출산동안 소문으로만 들었지 실제 이용경험은 없었다. 첫 번째 출산은 집을 장만하기도 빠듯한 결혼식을 올린 지 10개월 뒤였다.
한 사람의 월급은 온전히 대출금을 감당하느라 산후조리원에 갈 수 있을만한 수백만 원의 여윳돈을 마련할 수 없었다. 예정일이 다가오자 아직 어리게만 보이는 딸의 산후조리를 도와주겠노라며 일을 마치고서 오후에 다시 신생아의 집에 출근하겠다는 엄마를 거절하기에는 나 또한 별다른 방도가 없었기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나와 배우자 모두 속싸개를 제대로 쌀 줄도 몰라 병원에서 집으로 퇴원하자마다 아기는 내내 울어댔고, 엄마는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울음소리에 바로 직행해서 속싸개를 다시 고쳐 단단하게 싸매주었다. 이후 조용해지자 엄마는 신생아의 키만큼 길쭉한 산모용 미역을 가지고 부엌으로 들어서 끓이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면 아기를 목욕시켜 주시고 나서야 엄마는 진짜 퇴근을 하셨다. 그리고 다음날 문자나 전화로 엄마가 묻는 질문은 항상 비슷했다.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물은 다음 미역국이 집에 얼마나 남았는지 여부를 꼭 확인하셨다. 그리고 주말이 되면 아예 냄비채 미역국을 끓여서 통째로 들고 나타나셨다.
어떤 음식이든 가리지 않고 제법 잘 먹는 사람이지만 모유수유를 했던 6개월 동안 엄마의 미역국 루틴은 기어이 지속되었고, 넌더리가 날 정도로 피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기도 했다. 그래서 반찬배달을 시켜 먹기도 하며 엄마의 미역국을 거절하기도 했는데 그때는 그게 엄마가 할 수 있는 전부인지 몰랐었다.
첫 출산을 한 지 1년이 조금 지나자 뱃속에 생명이 또 찾아왔다. 잦은 해외출장으로 출산 이후 산후조리와 육아에 도움을 주기 어려웠던 배우자는 첫 번째 산후조리를 기억하며 적극적으로 엄마의 집 근처로 이사하는 것이 좋겠다며 설득했고 결국 나도 뾰족한 수가 없었기에 동의했다.
두 번째 출산일에 배우자는 입원과 퇴원을 함께 동행해 주고 바쁜 일정으로 인해 이후에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던 엄마는 출산 며칠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다녀오신 후 이해하기 어렵지만 삼칠일 동안 신생아가 있는 집에 방문할 수 없다는 소식을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기에 산후조리원이나 업체를 이용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으면서도 당연하게 도움받을 생각을 하다가 모든 계획이 틀어지니 답답하고 벅차기만 했다. 출산 3일 차부터 신생아를 데리고 20개월이 된 첫째 아이와 함께 보내는 일상은 온종일 머리가 새하얘지는 순간들 뿐이었다.
분유를 타고 기저귀를 갈며 첫째와 보내는 낮시간에 알림이 와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 엄마의 문자였다. "현관 앞에 미역국 갔다 놨어. 데워서 먹어" 혹시나 잘못된 기운이 전해질까 엄마는 딸의 집에 들어오진 못하고, 나조차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그게 뭣이 중해서 그러냐고 SOS를 하지도 못했다.
세 번째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 제일 알리기 어려운 대상은 바로 친정엄마였다. 그간 딸의 어려움을 가까이서 보시며 도움을 주시려 한 것을 잘 알기에 감사함과 동시에 어떤 말씀을 하실지 두렵기도 했다. 실로 출산 때까지 비밀로 하고 싶었으나 임신초기를 지났을 무렵 얼마가지 못해서 결국 말씀드리게 되었다.
엄마의 반응은 예상했던 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쁨과 축하보다는 놀라움과 걱정이 먼저 앞섰지만 이내 결국 받아들이셨고, 지금의 친정부모님은 세 아이 중에 막내를 가장 귀여워하신다. 그렇게 지겨워하던 미역국도 아이가 셋이나 되니 어떤 음식이든 감사히 받아서 남김없이 싹싹 먹게 되었다.
몇 년간 지속되던 코로나 시국에도 엄마는 거리두기 기간에 가족의 생일달만 되면 꼭 미역국을 끓여서 현관 앞에 전해주고 가셨다. 결혼 10년 차에도 불구하고 국물요리와 나물반찬은 성공률이 낮아 잘 시도하지 않는 딸의 성격을 잘 아시고 요즘에도 아이들은 생일날 할머니의 미역국을 먹고 자란다.
아낌없이 삶아서 찢어 넣은 소고기와 엄마의 고향 친구가 보내준 완도산 미역 건더기가 듬뿍 든 미역국은 엄마의 마음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