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by 쥐방울

생식기능이 저하되고 성호르몬 분비가 급감하며 몸과 마음에 급격한 변화를 겪는 시기인 갱년기. 중고등 6년간 사춘기로 정신적인 힘든 시기를 보낸 때에 나는 '갱년기'라는 단어조차 모르고 살아왔다. 20년이 지난 지금 눈물로 지새운 나날들의 연속이었던 청소년보다 더 취약한 시기를 보낸 그들에 대한 경외심이 생겨났다.




유년시절의 자녀가 바라본 그는 가족에 대해서 절대적인 권력을 지닌 한 사람으로서 무섭기만 했다. 육류나 생선이 밥상에 꼭 올라와야 했고, 술을 즐겨했다. 가정에서는 거의 트렁크팬티 바람으로 지낼 만큼 열이 많아 보였으며 대부분 크고 많은 것을 좋아했다. 물 사용량도 많고, 칫솔 가득 치약을 짜며 화도 많았다.


별다른 소통 없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한 사람으로 살아오다 외환위기 이후로 이어져온 거취를 고민하며 그는 더욱 위기를 느꼈을 것이다. 평소 고민이 생겨도 가족과 상의하는 일이 없던 그는 가족을 걱정 없이 배부르게 하는 것이 자신만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애석하게도 그사이 관계는 점점 벌어지고야 말았다.


옛날에는 자식들이 바른말을 하면 부모들이 수긍하며 그 의견을 따라주었지만, 지금 세대의 부모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점점 머리가 크고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에 자녀도 눈과 귀가 있으니 생각을 펼치면 그는 네가 알면 뭘 안다고 그러냐는 듯이 맞대응하여 더욱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그 무렵 엄마는 "네 아빠가 요즘 달라졌어"라는 표현을 많이 쓰셨는데 난 듣고도 믿지 않았다. 설사 달라졌다 해도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대형 세단도 처분하고, 물도 절약하며 미니멀리즘화 되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돈이 될만한 물건 중 그의 명의로 된 것은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사실 그녀의 갱년기는 자녀에게 별 영향을 주지 못했을 만큼 예나 지금이나 희생의 아이콘과 다름없었다. 어린 시절 그녀에 대해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기억은 컨테이너 같은 큰 원룸에서 살 당시 늦은 저녁 나와 동생이 말을 듣지 않자 집 앞 화단에 숨어놓고 엄마가 사라진척 연기를 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떠오를 만큼 나름의 큰 사건이었는데 성년이 되기 전까지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싶었지만 육아를 하는 지금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일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라면조차 끓이지 않는 아빠와 살며 집안 살림과 육아를 10000% 전담했던 그녀의 고충이 어땠을지 절로 숙연해진다.


파트타임으로 가계에 보탬이 되려 일을 하던 그녀는 내가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풀타임 일자리를 구해서 워킹맘의 삶으로 들어섰다. 특이한 점은 그녀가 거쳐온 모든 일자리는 아빠의 급여에 비해 현저히 낮은 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꾸준히 바깥으로 나가려 애쓰며 사회생활을 지속했다는 것이다.


또한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집안일을 할 때에는 혼잣말이 많아졌다. 등을 보이며 설거지를 할 때에는 아빠에 대한 흉을 비속어를 섞어가며 마음속에서 뱉어냈고, 요리에 필요한 식재료를 준비할 때는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현실과 타협하는 듯 보였다. 이후 그녀는 티끌처럼 모은 돈으로 본인과 자녀에게 쓰기 시작했다.




자녀들을 나름 공식적으로 독립시킨 그와 그녀는 빅뱅 같은 시기를 거치고 인생에서 제법 평안해 보이는 제3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평일에는 각자 직장에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집에서 반주와 함께 저녁식사를 한다. 주말에는 아침과 점심을 겸하여 한 끼를 먹고, 외식도 빠뜨리지 않는다.


갱년기를 지나온 그는 집에서도 속옷차림이 아닌 상의와 하의를 제법 잘 갖춘 의복을 챙겨 입는다. 대부분의 생활용품을 아껴 쓰는데 익숙해져서 물 사용을 줄이는 그는 주말에 사우나를 자주 애용한다. 건강을 위해 시작한 등산과 러닝 덕분에 젊은 시절 술로 인한 내장지방은 이제 그에게서 찾아볼 수 없다.


자식들과 배우자의 밥상을 차려주기 위해 자유부인 같은 것은 누려본 적이 없는 시대에 태어난 그녀가 드디어 한 끼 정도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외출을 감행하고, 그러는 동안 그는 라면 따위를 끓이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개미처럼 꾸준함의 대명사인 그녀는 여전히 사회생활을 즐겨하며 진정한 큰손이다.


운전면허가 있는 그에게 남은 것은 소형자동차 한 대와 그가 달라진 것을 누구보다 실감하는 그녀뿐. 그녀에게 남은 것은 텔레비전이 사라진 집과 마찬가지로 배우자인 그뿐. 한적한 시골을 지향하는 그와 도심을 사랑하는 그녀의 삶에 보라색 꽃이 피어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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