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나를 포함해 딸 둘을 낳고 기르셨다. 그중에서 아들처럼 조금 더 듬직해 보였던 나에게 청소년 무렵부터 인터넷 환경이 낯선 부모님은 사소한 부탁을 하셨고, 그때부터 엄마는 딸과 친구처럼 오래 함께하고 싶으셨지만 나는 어서 이 가정을 벗어나고픈 마음이었다.
엄마는 누가 보아도 자녀에게 헌신과 희생의 아이콘으로 비친 점은 분명했다. 그러나 직접 자녀를 양육하는 입장이 되어보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중, 고등, 대학교를 선택할 때도 집과의 근접성을 최우선시했으며 성인이 되어 남자친구와 놀러 갈 때에도 먼저 피임시술을 권할 정도로 걱정이 과한 면이 있었다.
어려서는 엄마니까 자녀를 걱정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으나 성인이 된 지금은 아빠가 그리 가정적인 면이 없어서 부부관계가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엄마의 온 신경이 딸에게 쏠린 것으로 느껴졌다. 안나 프로이트의 말을 빌리면 좋은 엄마는 좋은 남편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다.
엄마가 건강한 육아를 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건강해야 한다. 실제로 엄마는 가족들의 상차림을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집안일에 최선을 다했으나 자녀의 마음이 어떠한지는 들여다보지 못하셨다. 지금도 만나면 대화 한번 없는 아빠에게 엄마는 딸이니까 먼저 가끔 안부를 물으라고 하신다.
이것이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고 느끼는데 오래 걸렸다. 딸이 왜 먼저 전화나 문자조차 잘하지 않는지 전혀 궁금해하지 않으신다. 엄마는 딸이 한 가정을 이루었음에도 밥을 잘 챙겨 먹는지 염려되어 가끔씩 반찬을 한 아름 만들어 가져다주신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음이 여실히 느껴졌다. 어린 시절에는 선택지가 없었기에 주시는 대로 밥이 마음의 양식인 듯 먹었으나 지금은 배달이나 포장이 너무 잘 되어있는 시대에 반찬은 충분히 구입할 수 있는 것이다. 자녀가 원하고 필요한 것은 정서적인 부분인데 엄마는 여전히 본인의 욕구대로 마음을 전달하신다.
어린 시절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해서 헌신하는 것이 아닌 배우자와의 어려운 부분을 털어놓는 창구이거나 양육할만한 능력이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공생하는 관계로 느껴졌다. 그럼에도 엄마가 딸에게 희생하는 부분을 잘 알고 있기에 소극적으로 엄마를 밀어내고 있다는 죄책감과 불편함은 떨치기 어려웠다.
아들이 초등 입학을 앞두고 있던 어느 겨울, 주말에 개인적인 일정으로 외출해 있는데 갑자기 엄마로부터 연락이 왔다. 뜬금없이 목적은 말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어디냐고만 묻는 것이었다. 말씀드리자 같은 지역에 있던 부모님은 차를 타고 내비게이션에 바로 입력해서 얼마 후 정말 내가 있는 곳에 도착하셨다.
갑작스레 이루어진 만남에 카페를 찾으시더니 차를 주문하자 그제야 아들의 책가방을 사는데 보태라며 봉투를 건네주셨다. 당황스러웠지만 좋은 마음으로 특별히 생각해서 주신 것을 알기에 별다른 말 없이 감사히 받았고, 차를 다 마시고 나서야 개인적인 일정으로 돌아왔다.
또 다른 어느 주말에는 아들의 생일날이었고, 오전에 운동을 마친 뒤 케이크를 구입해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케이크를 사기 위해 들어간 카페에서 포장을 기다리고 있는데 엄마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며칠 전 통화에서 아들의 생일날에 패밀리레스토랑에 갈 수도 있다고 말했는데 그 식당 앞에 와있다고 하는 것이다.
당황스러웠다. 엄마와 식사약속을 확실히 해둔 것도 아니었고, 아들은 패밀리레스토랑에 가고 싶지 않겠다는 의사를 보여서 예약을 취소한 상황이었다.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얼굴을 보고 어떻게 된 일인지 묻자 엄마는 그저 평소 생일날 비슷한 시간에 만났으니 당연히 그럴 것을 예상해서 온 것이라고 했다.
나는 결국 부모님과 함께 구입한 케이크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서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고 바로 떠나시는 모습을 또 지켜보았다. 용돈을 주시는데 감사한 것 아니냐는 마음과 계획된 일이 자꾸만 틀어지는 J성향의 마음이 저 깊은 곳에서 티격태격하면서 머릿속은 어지러운 때에 막내 아이가 진심으로 궁금한 듯이 물었다.
왜 짜증이 난 거야?
아차 싶었다. 혼자 해결하지 못하고 가족들이 인식할 만큼 이미 나는 화가 나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진심으로 스스로가 왜 짜증이 났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용돈도 중요하고 감사한 부분이지만 이것을 주러 왔으니 다른 부분은 다 괜찮겠지라는 마음이 이제는 괜찮지 않았다.
부모님은 친척이나 지인을 집에 곧잘 초대하셨는데 선택지나 권한이 없던 청소년시기에는 군말 없이 인사드리고 방에 들어가 있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자녀가 독립한 지금도 어쩌면 엄마는 자녀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이전과 똑같이 행동하시는 모습에 답답함을 느꼈던 것 같다.
돈은 벌면 되고, 반찬은 사 먹으면 되는데 부모와의 관계를 위한 대화 혹은 정서적인 부분은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같았다. 중요한 것은 엄마는 전혀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힘들 때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하시지만 지원해 주시는 반찬과 돈 이외에 다른 것이 필요한 나는 연락할 수가 없다.
진짜 사랑은 주고 싶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부모도 자신의 모성애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지 돌아보며 자녀를 독립된 성인으로 자율성을 인정해 주어 경계선을 두길 바란다.
자녀는 부모가 원하는 대로 언제까지 살아갈 의무가 없듯이 적절한 거리를 두며 정서적으로 분리할 수 있어야 한다. 정서적으로 독립된 개인이 인생이라는 도로를 달리다가 기쁨과 축하와 응원을 해야 할 시기에 휴게소에서 만나 부둥켜안을 수 있는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와 내 아이들이 미래에 그러한 관계이길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