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쥐방울 Apr 05. 2024

무리 짓는 본능의 한국엄마들

최초의 인류는 지금보다 훨씬 왜소한 체격이기에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서 여러 명이 무리를 짓고 다수의 행동을 따르는 것이 생존에 직결되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오랜 기간 이어져온 무리 짓는 본능이 오늘날의 현대사회에는 필요성이 없음에도 여전히 유전되어 나타나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초등학교 앞에 엄마들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때는 1학년 어린이가 하교하는 시간이다. 하교시간이 가까워져 올수록 수십 명의 엄마들이 모이는데 적게는 둘, 많게는 열명 가까이도 자연스럽게 모여 어느새 무리 짓는다. 이들은 아이가 같은 유치원에 다녔거나 현재 같은 반 혹은 같은 주택 등 공통된 무언가로 뭉쳐진다.


무리 짓는 다음엔 대화가 오간다. 간단한 안부인사부터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거리낌 없이 털어놓는다. 이들 중 엄마들끼리 마음이 맞아서 친해진 경우에는 며칠만 보지 못해도 혼자 아이를 기다림에 있어 외로웠다는 말도 들려온다. 한마디로 부부관계 빼고는 모두 오가며 했던 이야기를 또 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는 달라도 모두 학부모의 신분으로 모인 이들이 가장 많이 주고받는 이야기 소재는 다른 가정의 사교육 현황이었다. 학교에서의 정규 교육과정은 누구나 동일하니 하교 후 어디론가 아이를 보내는 엄마들은 본인 자녀만큼이나 옆집 아이 사교육을 궁금해한다.




몇 달 전까지 가정보육을 해왔던 나에게도 무리 짓는 본능의 유전자가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세명의 아이들 총합 9년간 가정보육을 하는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왜 기관에 보내지 않는지의 여부였고, 막내와 함께 첫째, 둘째 아이의 등교를 함께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 느낀 이상한 외로움이 그것이었다.


그러다 병설유치원을 졸업하고 같은 초등학교로 입학한 둘째 아이 덕분에 엄마인 나도 등하원 시 마주쳤던 익숙한 분들이 생겨났다. 누구에게나 가볍게 인사말을 건네는 아메리칸 스타일과는 달리 전형적인 한국인으로서 낯익은 사람을 마주할 때만 인사를 건넸다.


보통 허리를 굽히거나 고개만 숙여서 인사를 하고, 반가운 아이들이 보이면 두 손을 위로 흔들면서 놀이공원 아르바이트생 흉내도 내어본다. 그것이 전부였다. 모든 아이가 같지 않고, 가정마다 다른 환경이기에 나에겐 반가움 이외에 물음표가 생겨나지 않아 질문이나 사소한 이야기들로 연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엄마들의 질문공세는 피할 수가 없었다. 학원을 다니거나 학습지를 하지 않고 학교에 입학했을 시기에는 우리 아이가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는지 궁금해했으며 방과후수업은 어떤 것을 신청했는지 또 분기를 다 채우지 않고 왜 그만두었는지도 꽤 여러 번 답해야 했다.


예체능 학원은 어떤 것을 다니고 있는지 묻던 어느 엄마는 짧은 대답을 듣자마자 왜 가깝고 저렴한 곳이 있는데 다른 선택을 했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에 웃으며 대화를 마무리해야만 했다. 다수의 행동에 따르지 않는 사람을 보는 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며 다름을 인정하기 어려워 보였다.


놀이터에서 여러 아이들이 놀고 있을 때 혼자 엄마들 무리에서 대화하지 않고 아이들의 부름에 달려가곤 하면 그저 이게 운명이려니 하며 받아들였다. 이제는 오히려 무리에 속하지 않고 그 시간 동안 아이와 시선을 더 맞추고 가족들 혹은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외로운 늑대가 된 지금이 조금 더 편하고 행복하게 느껴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