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무렵이었다. 집에 있던 엄마가 마트에 간다는 말에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싶어 부리나케 엄마를 따라나섰다. 엄마가 향한 곳은 걸어서 1분 거리에 있던 기업형 슈퍼마켓인데 평소와 다르게 내부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계산대 앞쪽에 마련된 포장대 방향으로 가서 이것저것 둘러보셨다.
택배 보낼 물건이 있으셨는지 크고 튼튼한 상자를 찾는 것으로 보였다. 얼마 후 엄마의 마음에 꼭 드는 상자 두 개가 눈에 띄었고, 포장을 위해 펼쳐져 가지런히 쌓아진 상자더미 속에서 꺼내려는 순간이었다. 손님이 별로 없던 시간대에 나와 엄마는 직원의 레이다망에 포착되고야 말았다.
유니폼을 입고 있던 남자직원은 엄마에게로 다가와 여기 있는 상자들은 장을 보고 포장대용으로 쓰이기 위해 마련된 것이니 개인이 함부로 가져갈 수 없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 말이 끝난 순간 엄마의 말과 행동을 아직까지 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엄마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엄마는 그 넓은 슈퍼마켓에 다 들릴 정도로 크고 성난 목소리를 장착한 채 화가 난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셨다. 직원은 규정대로 안내했을 뿐이지만 엄마는 자신이 이곳의 단골인만큼 이 정도는 당연히 괜찮겠지 싶은 마음이셨을 것이고, 그것을 거부당하자 자녀를 포함한 그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으셨다.
결국 뜻대로 되지 않은 엄마는 가져가려고 양손에 하나씩 집었던 상자 두 개를 바닥에 패대기치고 나서야 슈퍼마켓을 나오셨다. 별 뜻 없이 엄마를 따라나섰다가 그저 당황스럽고 멍해진 나는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은 엄마를 졸졸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엄마는 함께 다녀왔던 슈퍼마켓에서의 상황에 대해 어떤 것도 언급하지 않으셨다. 다시는 가지 않을 것 같던 그 슈퍼마켓을 엄마는 며칠 발길을 끊으시더니 마감세일 상품을 장보기엔 그만한 곳이 없어 결국 그곳에서 장보기를 다시 시작하셨다. 아이러니하게 나는 여전히 기억하고 그곳을 가지 않게 되었다.
어린 시절 엄마와 마트를 자주 갔던 것처럼 내가 엄마가 되자 우리 아이들도 참새방앗간처럼 마트에서 함께 장보기를 즐긴다. 매주 가는 마트에서 이날도 카트 한가득 장을 보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길을 건너려고 횡단보도에 가까이 갈수록 어른들의 고성이 오가는 소리가 더 생생히 들렸다.
마트에서 꽤 무거워 보이는 캣타워를 구입한 여자분과 교통통제를 위해 도로에서 수신호 하던 남자분이었다. 주차된 곳으로 가려던 여성은 캣타워를 횡단보도 앞에 잠시 두고 차를 가져와서 금방 실어가려는 입장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이것쯤이야 괜찮겠지 싶은 마음이고, 찰나의 순간으로 여겨졌을 테다.
그런데 그곳은 우회전 차량이 끝없이 이어진 곳이었고, 도보로 건너는 이들도 많았기에 통행의 어려움이 있으니 교통지도를 하시는 분은 반대의 입장을 내세우셨다. 그 과정에서 남자분의 말투와 톤이 거칠었는데 상대방의 감정버튼을 누른 모양이었다.
캣타워 주인 여성분은 왜 그리 성질을 내냐며 목소리를 높이고, 교통지도를 하시던 남성분은 더욱 성나운 목소리를 드높이며 같은 말을 반복하기만 했다. 서로가 서로의 말에 대응이 아닌 반응만 할 뿐이었고, 이성보다 감정만이 앞선 순간을 목격했다.
하필이면 그 모든 광경을 아이들과 함께 목격했고, 어리둥절한 표정의 아이들에게는 어른들도 화가 날 때가 있다며 어설프게 얼버무렸다. 동시에 20년 전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전에 알고 있던 엄마의 모습처럼 이들에게도 친절하고 근사한 인간의 모습이 숨어져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