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3번의 이사를 거쳐 4번째 집에 살고 있다. 과거에도 좋은 이웃을 만나왔지만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더욱 이웃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신혼부부로 입주한 첫 번째 집에서는 옆집에 살고 있던 선배 육아맘으로부터 아이에게 나쁜 것을 제한하기보다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하기를 배웠다.
둘째 아이를 출산했던 두 번째 집에서는 신생아와 마트에 가려던 아기 엄마에게 필요한 것을 대신 전달해 주신 옆집 아주머니가 계셨다. 코로나 시국에 집콕을 자주 해야만 했던 세 번째 집에서는 출퇴근으로 집에서는 잠만 자는 것 같았던 이웃이 그저 고맙기도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는 아이 셋과 함께 어엿한 5인가족의 모습을 갖추고 이웃과 인사를 나누었다. 계단식 공동주택에 살고 있는 터라 현관문만 열면 이웃집이 바로 보이고, 세 걸음만 가면 초인종까지 닿을 수도 있는 거리다.
옆집이 이사오던 날, 초인종이 울려서 나가보니 롤케이크를 하나 사들고 선물이라며 전달해 주셨다. 그리고 에어컨 설치로 소음이 발생할 수 있다며 미안해하시기도 했다. 양해를 구하시는 모습에 저희 가정은 아이가 셋이라 더 시끄러울 수도 있다며 걱정 마시라고 웃으며 훈훈하게 첫인사를 마무리지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결혼 10년 차로 아이 셋이 된 지금까지 꾸준한 로망이 한 가지 있다. 단독주택이나 공동주택 최하층에 살아보는 것이다. 현실적인 문제로 실현되기 어려웠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장점과 엄마로서의 정신건강을 위해 아직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머릿속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그로 인해 어느 곳에 거주하든 명절이나 기념일에 이웃에게 작고 소소한 선물을 하는 것이 어느새 자연스러운 일상 속 순간들로 자리 잡았다. 매 순간 아이들에게 공동주택 주거예절에 대한 주의를 주지만 그럼에도 누구에게는 피해를 주게 되어 의도치 않는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명절에는 부담스럽지 않은 국민선물세트 혹은 과일을 주로 메모와 곁들여 아이들이 전달하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같은 기념일에는 작은 케이크나 간식들을 산타처럼 무기명으로 문고리에 걸어두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아랫집에서는 31가지 아이스크림가게에서 파는 큼직한 통을 역으로 아이들에게 선물해주시기도 했다.
부모님과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옆집 아주머니는 딸처럼 느껴지는 나에게 아이 키우느라 항상 고생이 많다며 대견하다는 눈빛을 보내주셔서 젊은 아줌마의 눈물버튼을 자극하신다. 그 외에도 직접 가꾸신 고구마, 무 등 농산물을 자주 나눔 받기도 하고, 둘째 아이가 초등 입학을 앞두고 있을 때에는 깜짝 선물도 해주셨다.
지난겨울에는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위해 여건상 멀리 갈 수가 없어서 지역 내 한옥체험 겸 숙박이 가능한 곳을 예약했었다. 차로 10분 거리였지만 하룻밤 자고 온다는 사실에 아이들은 캐리어에 이것저것 챙겨 담아 설레는 마음으로 체크인을 했고, 근처 맛집을 검색해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간식 타령을 하는 아이 덕분에 비가 오는데도 작은 편의점에 들렀다가 어서 나오는 중에 처음 보는 어떤 할아버지께서 아이 셋과 비 오는 날 밤에 다니는 나를 이리저리 보시더니 고생이 많다며 막내 아이에게 용돈을 쥐어주셨다. 당황스러웠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에 혼자가 아닌 마을이 함께한다는 느낌을 처음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평일에 아이들과 쇼핑몰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첫째와 둘째 아이가 화장실에 가고, 막내와 의자에 앉아서 덩그러니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떤 어르신께서 막내가 귀여워 보였는지 활짝 웃으시며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와 옆자리에 앉으셨다.
어찌나 최선을 다해서 아이와 눈을 맞춰보려는 노력을 하시는지 마스크를 쓰고 계셨지만 모를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아이에게 친구 하자며 말을 거는 할아버지는 묵묵부답인 아이를 위해 마스크를 벗고 대화를 시도하셨고, 함박미소를 마주한 아이는 자신을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이에게 결국 마음을 열었다.
할아버지와 함께 나들이를 오셨던 할머니는 함께 돈가스를 드시고 가까운 카페에서 커피를 구입하려고 하셨는데 생각보다 너무 비싼 가격에 결국 그냥 돌아오셨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요즘 비싼 물가에 충분히 공감이 되어 다녀오신 폴바셋 카페보다 아메리카노가 200원 저렴한 스타벅스 위치를 알려드렸다.
그 순간 아이를 위해 뭐라도 주고 싶으셨던 할아버지는 근처 도넛가게에 가서 아이가 좋아하는 핫도그를 하나 사주시려고 일어나셨다. 비싼 커피값에 되돌아오신 이야기를 방금 들은 터라 괜찮다며 한사코 거절했지만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한다는 듯이 받아도 괜찮다며 오히려 나를 진정시켰다.
커피라는 음료에 어느 정도 지출할지 나름의 기준금액이 있으셨지만 두 분이 연금으로 충분히 먹고살만큼 생활이 가능하기에 처음 보는 어린이에게 2,500원짜리 찹쌀핫도그 정도는 문제없다고 덧붙이셨다. 베풀어주신 마음이 감사해서 비슷한 또래의 손주가 있으신지 조심스럽게 여쭈니 갑자기 표정이 달라지셨다.
자녀를 떠올리니 내심 못마땅하셨는지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해 주셨다. "요즘 애들 결혼할 생각도 안 해요!" 그 순간 나도 처음 보는 분들에게는 양의 탈을 쓰고 한없이 친절하지만 낳아주신 부모에게는 남이라고 할 만큼 차갑게 굴 때도 있으니 가족이란 무엇일까 생각에 잠기곤 했다.
한때 방송에 비친 우애 좋은 남매와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보고 어쩜 저럴 수가 있을까 비결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핏줄로 이어져 20년 넘게 한 지붕아래에서 살다가 서로의 경계를 지켜주지 않아 자아를 공격받는다고 느끼는 순간 서서히 멀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을 대신해 친근한 이웃들이 나를 지켜주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