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쥐방울 May 13. 2024

나는 왜 이런 것을 좋아할까

어린 시절 나와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의 내면이라고 스스로는 자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지지 않은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심보다. 비슷한 유의어로는 마음씨가 있고, 마음을 쓰는 속 바탕이라는 뜻이지만 보통은 청개구리 혹은 놀부 뒤에 붙는 명사로 많이 불린다.


지금까지 줄곧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서 시도하곤 했다. 달리말하면 누가 시켜서 하는 일에는 간혹 반감을 갖기도 해서 하려던 것도 하기 싫어지는 청개구리 심보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이 두 가지가 쌓여서 어쩌면 지금의 내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초등 저학년 때 엄마께서는 심심할까 봐 속셈학원을 보내주셨는데 당시 더 어린 친구들의 과제를 도와주려고 일부러 나의 수업시간도 되기 한참 전에 도착하곤 했다. 그리고 집에 엄마가 안 계실 때 동생 친구들이 오면 나도 모르게 과일을 꺼내고 라면이라도 끓이며 간단한 상차림 흉내를 내어보았다.


반면 말라깽이 동생과 함께 식사를 하면 늘 동생이 안쓰러워 더 챙겨주는 엄마 모습이 못마땅했는지 우걱우걱 더 열심히 먹었다. 초등 고학년이 되어 급격히 불어난 몸집이 스스로도 난감했지만 엄마가 딸에게 살을 좀 뺐으면 하는 바람으로 돼지라고 말하는 것에 더 충격받아 자연스럽게 체중은 여전히 상승세였다.


이후 희망 중학교 신청서에도 당연히 집과 가까운 학교에 배정되리라는 희망을 안고 계신 엄마의 기대를 저버리고 1 지망으로 다른 학교를 써내는 나름의 일탈을 벌였다. 그렇게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는 나름 조용히 청개구리 심보를 애써 숨겨가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내면에 채워갔다.


스무 살이 되었다고 해서 바로 독립을 하지는 못했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간과 경제적으로 약간의 독립성이 생겼고, 일상에 소소한 즐거움을 더할 수 있었다. 한 번은 과대표로 있을 때 해당 학년 학생의 번호를 모두 알고 있었기에 누군가의 생일을 몰래 축하하고자 깜짝 축하 문자를 보내달라는 이벤트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학 시험기간에는 누구라도 보기 좋게 필기한 노트를 서슴없이 친한 지인들에게 보여주며 노는 건지 공부하는 건지 모를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어느새 나의 필기내용은 모두 복사되어 동기들 대부분이 가지고 있었음에도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아무래도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결혼 후 첫 임신 8개월 차 휴직에 들어서자 배우자가 좋아하는 장아찌 담그는 시도를 했다. 반응이 좋자 양파에 이어 고추, 마늘 등 다른 재료로도 조금씩 만드는데 재미를 붙였는데 딸의 냉장고 살림에 보탬이 되고 싶으셨던 엄마가 재료를 한 아름 안겨주자 직접 담가보는 장아찌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버렸다.


요즘도 번뜩이는 머릿속 회로는 멈추지 않고 있다. 친구를 만나서 갑자기 밥 먹을 기회가 생겼는데 메뉴는 정해졌고 갑자기 회장실이 급하다며 본인 카드로 계산해 달라고 부탁하며 사라졌다. 바로 이때다 싶은 마음에 내 카드로 결제했고, 돌아오자 친구카드로 결제했다며 천연덕스럽게 말했었다. 그날 내내 아주 즐거웠다.




최근 출석이 뜸했던 헬스장에 방문하니 '챌린지 참여하고 선물 받자'라는 배너 속 문구가 눈에 띄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한 달간 체지방률 감소 TOP5를 선정하여 상품권을 준다는 내용이었는데 갑자기 호기심이 생겨 한 달간 감소 혹은 어쩌면 증가할 수도 있는 체지방을 어떻게 측정하는 것인지 문의해 보기로 했다.



문의한 결과 챌린지 기간 한 달 전후로 인바디 측정을 한다고 안내받았는데 직원의 "신청해 보시겠어요?"라는 질문에 나도 모르게 약 2초 후 "네"라고 답변해 버렸다. 여자라서 체지방이 많이 빠지지도 않을 텐데 라는 생각과 동시에 몸을 스캔해 보니 아직 체지방은 충분히 많이 남아 있는 듯해서 안 할 이유가 없기도 했다.


그리고 이름과 전화번호를 남기면서 도대체 내가 이걸 왜 하는 걸까 라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아는 타인들이 생각하기에 내가 전혀 할 것 같지 않은 것들을 가끔 시도한다. 다이어트에 한 번도 성공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이런 챌린지를 한다는 것이 나조차도 쉽게 믿기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보면 스스로가 우선 재미있고 좋아서 하는 것이고, 그다음으로는 다른 사람에게도 즐거움과 재미를 줄 수 있을 때 나의 상상이 현실에서 시작된다. 이번 챌린지를 통해서 뜸했던 헬스장 출석률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면 더욱 바랄 것이 없겠다. 더 이상 헬스장에 기부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오른 식욕 덕분에 줄어들 생각이 없어 보이는 체지방을 단 몇 그램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성공이다. 만약 결과가 그 반대의 상황이라면 그간의 상황을 낯낯이 파헤쳐 모두에게 즐거움을 줄 것이다. 나의 실패로 그대들이 웃을 수만 있다면...

작가의 이전글 가족보다 친근한 이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