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발로 찾은 날
2020년 코로나가 시작되고, 집 앞에 놀이터마저 꼭 누가 죽어나간 것처럼 출입금지 테이프로 둘러싸였다.
아이들과 나는 건강했음에도 불구하고 바이러스라는 불안에 휩싸여 사주에도 없는 집콕생활을 시작했고, 그렇게 1주일 정도 집에만 있다 보니 코로나가 아닌 정신병으로 어찌 되어버릴 것만 같아 빠르게 포기했다.
최대한 사람이 없는 시간대를 찾아서 공원이나 개방된 놀이터를 찾아다녔고, 그 해 여름에는 넷이서 서울대공원을 찾게 되었다.
여기서 네 명은 부모 2명+아이 2명이 아닌, 엄마 1명+아이 3명이다.
아빠 없이 혼자 미취학 아이들 3명을 데리고 서울대공원에 간 이유는 두 가지였다.
1. 동물복지를 이유로 동물원은 동물들에게 감옥과 같은 곳이라서 배우자는 갈 수 없다는 것이다.
무척 이해되는 이유이고, 타인이 발언했다면 존경할만한 태도이지만 그게 우리 집에 있는 사람이라는 게 조금 아쉬웠다.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데 한번 같이 가줄 수 있는 것 아닌가?'
'동물에 초첨을 맞추지 않고, 다른 즐길거리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마음속 악마의 속삭임을 누르고, 나는 아이들과 출발했다.
2. 코로나 시대에 사람이 붐비는 주말보다는 평일을 택한 것이다.
배우자의 동행여부는 차치해 두고, 코로나로부터 안전을 위해 나 홀로 아이들과의 출발을 도모했다.
평일은 매표소와 가까운 여성주차장에 주차할 수 있다는 장점과 보호자가 나 하나뿐이라 아이들이 의외로 잘 따라와 줘서 통솔하는데 생각보다 어려움이 없었다.
차로 가면 짧은 거리였던 서울대공원에 아이들과 나는 이후에도 그해에 여러 번 평일에 방문했다.
코끼리 열차를 타기 위해서, 동물원에 있는 긴 코끼리 미끄럼틀을 타기 위해서, 테마공원에 있는 놀이터에 가기 위해서 등 이유야 붙이자면 끝도 없었다.
이렇게 경험을 한 아이들은 코끼리 열차를 타다가 <서울랜드>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해가 바뀌었고 코로나는 여전했지만, 첫째 아이는 이번엔 아빠도 함께 코끼리열차를 타고 서울랜드에 가고 싶어 했다.
둘째와 셋째가 아직 보호자와 동행해야만 탈 수 있는 놀이기구가 많았기에 나 혼자 아이들과 놀이공원에 가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해서 계속 미뤄왔었다.
그렇게 계속된 아이의 설득 끝에 남편은 추운 겨울날 처음으로 우리와 코끼리열차를 타러 함께했다.
그런데 놀이공원에 도착한 지 두 시간이 지났을 무렵 식사도 했으니 이제 가자는 것이었다.
세상에 아이들은 이제 시작인 것 같은데, 추위에 약한 아들과 아빠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첫째가 안된다고 하자 남편은 안 좋은 기분을 그대로 드러내며 "얘랑 여기 다시 못 오겠다"라는 발언을 꺼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외쳤다.
'나도 남편 너랑 다시 오긴 어렵겠어.‘
결국 주차장에 돌아와서 남편은 마지막으로 "나 여기 다신 안와"라고 말하며 차에 탔던 기억이 생생하다.
배우자가 아이들의 성화에 추운 겨울 용기를 내며 놀이공원으로 발길을 향했지만, 나의 발걸음은 조금 더 무거웠다.
중학교 2학년 현장학습 장소였던 <서울랜드>는 나에게 딱 두 가지 장면만 머릿속에 기억으로 남아있다.
1. 정해진 시간에 모여서 입장 전 단체사진을 찍었던 그 순간.
2. 입장 후 그 넓었던 공간을 여기저기 배회하며 다녔던 순간.
이상하게도 그 밖에 무슨 말을 했고,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에 대해서는 정말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덕분에 지금까지 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단지 가끔씩 어린 내가 놀이공원 안에서 인기 없는 놀이기구 주변을 뛰어다니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장면이 떠올라 마음이 아파서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세 아이의 엄마가 되고는 아이들에게 이렇다 할 이유를 내놓지 못하고 미루다가 온 가족이 함께 가게 되었다.
추워서 정신없었고, 아이를 안고 다니느라 힘이 들기도 했고, 남편이 난리 치느라 여기저기 달래주느라 내 지난 기억을 떠올릴 새가 없어서 감사했다.
다시는 가지 않을 줄 알았던 장소에 발길을 하며 나는 또 엄마로서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