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로부터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알림장 속 준비물에 신문지가 적혀있었다.
우리 집은 신문 구독을 하지 않았고, 하필이면 그날은 단지 내 분리수거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분리수거장으로 가서 살펴보았지만 종이신문이 귀해진 시대라는 것을 실감했을 뿐이다.
회사에 있는 배우자에게 연락해 보았지만, 구할 수 없다는 답변과 함께 본인보다는 장모님에게 연락해보라는 질문만 남겼다.
친정엄마에게 한번 여쭤보라는 권유에도 꼬박 반나절을 고민했다가 전화를 걸었다.
엄마도 신문을 구하기 어렵다는 답변과 함께 찾아보시겠다고 하셨고, 얼마 후 몇 장 구하셨는지 퇴근 후 가져다주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같은 지역에 살고 계신 친정엄마는 1차 퇴근 후 들러서 신문지를 건네주셨고, 가방을 내려놓으신 후 주방으로 향하셨다.
우스갯소리로 시어머니가 오시면 곧장 소파로, 친정엄마가 오시면 곧장 주방으로 가신다는 말을 들었는데 우리 집에 딱 들어맞아서 소름이었다.
친정엄마는 잘 먹고 사는지 냉장고를 열어 쭉 훑어보시고,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는 없는지 살펴보신 후 가스레인지 청소까지 마치면 진짜 집으로 2차 퇴근을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엄마의 발목을 잡은 것이 있으니 주방 싱크대 배수구가 막힌 것을 발견하신 것이다.
알고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긴 이유는 아이들이 자고 난 뒤 밤에 다시 살펴보거나 그래도 어려우면 다음날 배수관 클리너 용액을 구입해서 해결해볼 생각이었다.
친정엄마도 나와 같이 '잘 해결되겠지'라고 생각하시고 집을 나서신 줄로만 알았다.
다음날 예고 없이 친정엄마는 다시 딸의 집에 오셨고, 무슨 일인지 자세히 묻기도 전에 엄마는 주방으로 향하며 가볍게 물으셨다.
"주방 배수구 막힌 것은 어떻게 되었니?"
어제 배우자가 퇴근해서 살펴보고 도움을 주었고, 혹시 몰라 클리너 용액도 부어 놓았다고 답변을 했다.
들으시곤 이것 때문에 방문했다며 실토를 하시고 걱정을 하셨다며 아빠에게도 상황을 공유하셨다.
알고 보니 어제 집으로 돌아가셔서 우리 집 주방 배수구가 막힌 상황을 아빠에게 이야기하신 것이다.
이야기를 들으신 아빠는 걱정을 하시며 퇴근이 늦은 본인은 직접 오셔서 해결해주기 어려우니 우리 집 근처에서 일하시는 아빠 지인분에게 좀 들러서 해결해달라며 말씀을 해두었다고 하셨다.
오. 마. 이. 갓.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딸의 집에 배수구 막힌 것을 봐달라는 말씀을 어찌 그렇게 하실 수가 있으셨을까..
아이 준비물이라고 신문지를 부탁한 나 자신이 후회스럽고, 용기를 무릅쓰고 이웃집에 문 두드리며 신문지를 구하는 게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 내내 상급학교로 진학할 때마다 엄마는 집과의 가까운 거리를 가장 우선으로 말씀하셨다.
대학과 취업을 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20살이 넘어서 독립을 원하는 사람은 나뿐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20대 초반에는 학교에서 장학금을 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도 기쁜 마음을 꽁꽁 잘도 숨겼다.
엄마의 입에서 아빠의 입으로 전해진 소식은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기에, 다음학기 대학교 등록금 용지를 최종 확인하고서야 말씀드렸다.
그 무렵 2년에 한 번씩 겪는 위경련이 새벽에 찾아왔을 때, 지인에게 콜택시번호를 물어서 택시를 타고 혼자 응급실에 갔다가 수액을 맞고 진정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별일 아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린아이의 발언이 부모를 거쳐 아주 작은 휴지조각이 되어 휴지통으로 가게 되면서 모든 기쁨과 슬픔을 잘도 숨기는 가면을 쓰게 되었다.
이후 요청하지 않은 그들의 도움은 불편하게만 느껴지고, 더 달아나게 만들었다.
자녀에게 내 어린 시절 결핍을 채우려고 하듯, 그들도 그들의 어린 시절 결핍을 나에게 채우려고 한 것일까.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아빠는 부모님이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배고픔을 물려주기 싫으셨을지도 모른다.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엄마는 고등학교부터 큰 외삼촌댁에서 통학하며 부모가 그립고, 뒷바라지를 바라셨을지도 모른다.
아이의 준비물 신문지와 신문지를 가져다준 엄마.
그 너머에 상상하기 어려운 그들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헤아려보기 시작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