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몰래 중학교 원서 1 지망을 집에서 제일 가까운 학교가 아닌, 버스를 타고 20분 걸리는 학교를 적었다.
'몰래'라고 생각한 이유는 3가지다.
1. 엄마가 입시제도에 대해 잘 모르셔서 당연히 가까운 학교에 가게 될 줄 알고 계셨을 수도 있을 것이다.
2. 자녀에 대한 두터운 신뢰로 1 지망을 가까운 학교로 적었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3. 1 지망으로 다른 학교를 적게 될 내 마음을 굳이 상의하거나 말씀드리지 않았다.
서류는 정확했고, 배정은 당연히 1 지망으로 써낸 중학교로 3년간 다니게 되었다.
엄마는 내심 황당한 배정 결과를 듣게 되어 당황하신 기색이었지만, 한참 마음 가면을 쓴 청소년은 추첨이기에 간혹 그런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며 잘도 둘러댔다.
좋은 점도 있었다.
그 시절 안전을 염려하여 구입해주신 휴대폰은 반에서 몇 명 없는 신문물이었다.
버스로 20분 거리이지만 도보와 정류장에서 하염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포함하면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이었고, 이어폰을 꽂고 라디오와 음악을 들으며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도 멀리 떨어진 새로운 공간에서의 새로운 출발은 마음을 새롭게 다잡아 주기도 했다.
중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성적표에 등수는 반에서 9등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기억나는 등급도 몇 있지만, 정확한 등수를 기억하는 건 이때가 유일하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텅 빈 집에서 펑펑 울었기에 기억을 안 하기도 어렵다.
그 당시 내가 그냥 서울 시민이었다면, 학우들은 대치 키즈 같은 느낌이었다.
분명 같은 지역인데도 공동주택이 밀집해있던 중학교 주변에 거주지역 아이들은 모두 어느 정도의 선행학습을 해놓은 상황에서 중학교를 입학한 것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만 해도 나중에 SKY는 갈 줄 알았던 청소년은 공부도 시작부터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제일 어려운 수업시간은 체육이었다.
공부에 큰 두각을 드러내지 않아도 체육시간에 날아다니는 아이들이야말로 이 시기에 훨씬 생존(학교생활)에 유리할 것이다.
운동은 젬병이고 경험도 없었던 나는 발야구를 하면 파울이고, 피구를 하면 이리저리 피해 다니기만 했다.
어쩌다 마지막 생존자 1인이 되던 날에는 배구인지 피구인지 분간이 안 되는 공간을 피하고 싶을 뿐이었다.
공부도 운동도 안되니 믿을 건 뼛속까지 스며든 '성실'뿐이었다.
아파도 학교는 가야 한다는 말씀 덕분에 초등학교에도 개근상은 기본이고, 중학교 내내 가장 먼 거리에서 가장 빨리 등교한 학생이었다.
수업시간에도 청소시간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낼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미움을 사게 되었다.
청소시간에 정해진 역할을 하고 있었던 나의 청소하는 태도를 걸고넘어지며 누군가 공개적으로 지적을 해댔고, 그 길로 화장실에 가서 눈물을 흘리는 나를 반에서 가장 착했던 반장이 따라와서 위로해주었다.
사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내가 잘못한 일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 당시 상황과 마음을 담임선생님은 물론 부모님에게도 말씀드리지 못했던 이유는 이러한 결과에 대한 원인을 나 자신에게 물을 것이라는 예상을 했기 때문이다.
'네가 뭔가 잘못을 했겠지~'라는 답변만 듣게 될 것을 청소년은 예상했다.
물론 지금 부모가 되어보니 그렇지 않았을 확률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부모님께서 나에게 10년 이상 보여주신 여러 상황과 태도로 인해 듣게 될 답변을 스스로 예상하며 또 한 번 가면을 써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에서 철학자는 대화중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행복해지려면 '미움받을 용기'도 있어야 하네.
그런 용기가 생겼을 때, 자네의 인간관계는 한순간에 달라질 걸세.
그 시절 미움받을 용기는 없었고,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기 위해 두터운 마음 가면을 쓴 채 이어폰 속으로 전달되는 음악으로만 위로받을 수 있었다.
해가 바뀌어도 중등 생활은 다르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현장학습 장소는 <서울랜드>였지만, 놀이공원에 간다는 설렘보다는 누구와 어떻게 긴 시간을 보내고 와야 할지 고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