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쁜 년이다 1

by 쥐방울

명절에 친정에 가기 싫었다.

시댁도 아니고 친정에 가기 싫은 이유는 어릴 적부터 결혼 이후에도 경험적으로 명절 하면 떠오르는 풍경이 싫어서였다.

구체적인 이유를 사례로 들어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크게 차지하는 것은 가보았자 밥만 한 끼 먹고 올 것이고 만약 아빠의 기분이 안 좋으시다면 거들떠도 안 보실 그 불편한 상황이 싫었다.

그러나 배우자와 자녀, 부모님 모두에게 그럴싸한 설명도 없이 명절에 찾아뵙지도 않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설 전날 외식하지고 제안했다.


'OOO 숯불갈비'

이전에도 한번 가보았던 곳이고 연휴에도 영업을 한다길래 그곳으로 향했다.

엄마와 아빠도 선뜻 오셔서 돼지갈비 7인분을 맛있게 먹고 기분 좋게 헤어졌다.


매년 명절 때 친정에 가서 식사하고, 반찬을 바리바리 싸주시던 것이 없으니 연휴 때 먹을 것이 부족해 장 보러 설 다음날 창고형 대형마트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엄마에게 카카오톡이 와 있었다.

배, 깻잎 전, 갈비, 시금치, 꼬막, 식혜 오후에 문 앞에 두고 갈까?

바로 전화를 걸어 지금 마트에서 나오는 길이니 내가 엄마집으로 들리겠다고 했다.

주차를 하고 승강기로 올라가려고 했는데, 엄마는 1층 경비실 앞으로 나와있겠다고 했다.

아파트 정문에 다 와가자 도로변에 엄마와 아빠가 양손 가득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반찬들을 한 아름 싸서 기다리고 계신 것이다.

정차를 하고 기어를 P로 바꾸자 보조석 문을 열어 큰 검은 봉지들을 넣어주시며 잘 가라고 인사해 주셨다.


일부러 멀리 있는 마트로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장 보러 다녀오면서 연휴의 스트레스가 날아갈 줄 알았다.

다시 집으로 출발하는데, 나 자신이 너무 나쁜 년 같아서 계속 눈물이 났다.

진짜 나쁜 년이다.


아침도 안 먹고 나와서 점심때가 되어 집에 도착하자 나는 또 엄마가 싸주신 꼬막과 시금치 반찬에 밥을 처먹었다.


이것도 저것도 제대로 안 되는 길의 한가운데 서서 어찌해야 할까 싶은 하루였다.

그래도 다음 명절엔 잡생각 집어치우고 외식도 하고 엄마집도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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