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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Mar 11. 2023

지옥에 존재한 한줄기 희망

더 글로리 스포 있음

2023년 3월 10일 17시 <더 글로리> 파트 2(9화~16화)가 넷플릭스에 공개되었다. 온갖 욕설이 난무하는 청불 관람등급이기에 아이들이 잠든 새벽시간을 공략해서 시청을 감행했고, 마지막화까지 많은 시간을 들여 본 것에 전혀 후회가 없었다. 마지막 16화를 제외하면 눈물도 웃음기도 하나 없이 오직 공포에 질려서 본 가장 무서웠던 드라마였다.


3월. 봄이 오려고 새싹이 피는 듯 보이지만 여전히 아침 공기는 차갑다. 초등학교 등굣길 수많은 인파 속에서  아침마다 울고 있는 어린이와 엄마가 서로 실랑이하는 모습을 한 팀쯤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하굣길도 울면서 혼자 걸어가는 어린이를 매일 마주친다. '무슨 일일까' '큰일은 아니었으면' '울고 나면 부디 괜찮아져 있길'이라는 생각을 혼자 하게 된다. 부디 개인적인 속상함으로 저녁에 부모님과 이야기 나누거나 푹 쉬고 나면 풀리길 바랄 뿐이다. 울고 있는 어린이의 사연 속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

새 학년 새 학기 새로운 마음으로 등교하는 아이를 보며 마침 업로드된 <더 글로리>는 더욱 정신을 바짝 나게 해 주었다.


출처 넷플릭스시리즈 <더 글로리>


등장인물에는 인간과 짐승이 존재한다. 짐승은 인간이라는 탈을 쓰고 수치심이 존재하지 않았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다지만 그 행위의 끝은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뿐이었다. 한 번의 잘못을 덮으려 더 큰 잘못을 계속해서 저지른다. 극 중 학교폭력의 가해자인 박연진은 옥상에서 괴롭힘으로 동급생을 죽음으로 몰고 가 놓고 이후 변명에는 장난으로 벌어진 일이라는 식으로 엄마에게 SOS를 요청했다.


심심풀이 땅콩처럼 현실과 정말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신문 1면에는 '극단적 선택', '학교 폭력' 등의 단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쏟아지는 기사들 중 어느 것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정의를 실현한다면서 실제로 가해자는 아닌지, 피해자에게 제대로 된 용서도 구하지 않은 채 평생을 피해자로 살게 만드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모두 함구하며 한통속이 아닌지 일개 개인은 알 수 없다.


연진아, 우연히라도 마주치지 말자


주인공 문동은에게 인생 첫 가해자이자 위기 때마다 그동안의 계획이 송두리째 흔들릴 만큼 영향을 주는 인물은 엄마였다. 딸에게 그렇게까지 악랄하게 구는 엄마는 어쩔 수 없는 핏줄이라 무늬만 가족일 뿐 그 자체로 악마였다. 연진은 동은이 자신의 목을 죄어온다는 것을 알고 역으로 뒷조사를 하며 동은을 망가뜨릴 수 있는 엄마를 다시 찾아가고, 조력자 2명(강현남, 주여정)을 찾아낸다. 더불어 여전한 뻔뻔함을 무기로 잘 먹고 잘 살뻔했던 연진은 살인을 저지른 엄마와 같은 교도소에 수감되며 다행히도 동은의 복수는 성공적으로 보였다.


이후 주여정과 바다여행을 떠난 문동은은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며 곁을 떠나고, 복수의 끝을 본인의 죽음으로 마무리하려 옥상 끝에 올라섰다. 그러나 여정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복수를 돕는 것을 허락했으니 이번엔 동은을 살리는 것을 허락해 달라며 아들을 지옥에서 부디 구해주길 애원했다. 덕분에 동은은 살아냈고 6개월 후 여정 앞에 나타나 자신이 이번엔 칼춤 추는 망나니가 되어주겠다고 말한다. 권선징악의 대표적인 결말을 보게 되어 다행스럽고, 현실에서는 이러한 마무리가 몇이나 될까 싶어 마음 한구석은 회색빛이었다.


쓰기 시작할 때부터 지금도 종종 내 글에 비속어는 없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욕이나 다름없이 느껴진다. 아픔과 분노, 슬픔, 화가 글자라는 옷을 입고 있다. 그러한 일상을 기록하는 이유는 그 속에 1%라도 희망이 있기 때문이었다. 동은이가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고, 옥상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오고, 복수심에 공장에서 일하며 검정고시와 임용고시를 본 것도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짐승들 중에 희망을 상징하는 인간이라 생각된 등장인물이 있다. 강현남, 안정미, 구성희, 할머니, 박상임. 특히 지옥 속에 살면서 문동은의 복수를 위한 망나니와 사랑을 오갔던 주여정은 문동은과 "사랑해요"라며 마지막 대화를 주고받은 것이 기억에 남는다.


바쁜 현실 속에서도 어른들이 꼭 보길 추천한다. 자신의 과거 아픔을 폭로하거나 아이들의 일상에 의구심을 품고 목소리를 내기 원하는 것이 아니다. 알파세대 아이들이 가해자도 피해자도 되지 않게 부디 부모님과 주변 어른들이 많이 안아주시는 것으로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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