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 이대로 영원히
우리 집 세 아이가 가진 영어에 관한 정서는 사뭇 다르다.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다. 먼저 만 4세인 막내 아이는 이미 첫째와 둘째 덕분에 두 돌 무렵부터 영어 노출 환경에 놓인 덕분에 모국어가 한국어인지 영어인지 헷갈리는 지경이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야 할 아이가 그래도 영어보다는 한국어가 더 능숙해야 할 듯한데 또래 정도의 한국어 능력 수준을 갖추고 기관에 보내는 게 맞는 것 같아 여전히 가정보육 중이다. 그러나 가끔 틀어주는 한글 애니메이션을 보고 소스라치게 이건 고장 났다며 리모컨을 들고 와서 음성을 영어로 바꿔달라는 행동을 보이면 여전히 당황스럽다.
만 6세인 둘째 아이는 집안에 일단 영어동요가 울리면 '엄마가 또 시작했구나' 싶은 표정으로 이젠 그러려니 한다. 그러나 영상 시청일 경우에는 첫째의 영향으로 강력히 한국어 음성으로 나오게 해 달라며 요청을 했었다. 이럴 경우 막내가 영어로 보는 영상을 원하니 지금 영상을 마칠 때까지만 기다려달라고 요청하거나, 원하는 영상을 보고 싶을 때는 같은 영상을 영어로 먼저 보고 이후 한글로 영상을 틀어주는 1+1 작전을 통해서 엄마가 깔아놓은 판에 놓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영어에 대한 감정은 좋지도 싫지도 않은 상태였는데, 올해부터 다니게 된 기관에서 일주일에 한 번 방과 후로 접한 놀이식 영어수업 덕분에 영어에 대한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치솟으며 긍정적인 감정을 갖게 되었다.
늘 그렇듯 인생과 육아는 순탄하게 흘러갈 리가 없다. 현재 초등 저학년인 첫째 아이가 영어에 관해 가진 흥미는 제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좋아하는 영상을 시청할 때에도 동생처럼 한글과 영어를 1+1으로 보는 것조차 거부하고, 영어영상도 보자고 제안하면 아예 영상을 보는 것조차 거부하는 어린이다. 물론 나는 지금 만 7세인 아이가 한국어 실력이 월등히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영어에 대한 극히 부정적인 감정이 들 수밖에 없는 시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잠들기 전 이야기를 나누다 첫째 아이와 최근 같은 반에서 친해진 아이가 하교 후 영어학원에 다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아이는 영어에 관심이 조금도 없기 때문에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일은 전혀 벌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많고 많은 영어 학원 중 어떤 영어 학원을 다니는지 학원 이름을 단순히 궁금해서 물어도 아이는 결코 기억해내지 않는다. 그저 그 영어 학원 가방이 회색이며 각진 네모모양인지, 청색이며 캐주얼한 백팩인지, 빨강과 파랑이 섞여 있는지 정도의 힌트를 주면 혼자 대략 알아차릴 뿐이다.
아이가 다니고 있는 음악학원은 동생이 먼저 배우는 것을 몇 달 관찰한 끝에 진지하게 배우겠다고 하여 지금까지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아이의 요즘 관심사와 학습에 대한 흥미를 엿보기 위해 현재 영어라는 언어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질문해 보게 되었다.
"영어학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아마 내가 다닐 일은 없지 않을까?"
"그럼 그 많은 아이들은 어떻게 다니는 걸까?"
"글쎄"
"다른 아이들은 미술, 피아노를 원해서 다니는 것처럼 영어도 배우고 싶어서 다니는 것일까?"
"아! 수학은 자기가 원해서 다니는 아이는 있는데, 영어는... 없었던 거 같아!"
"어머어머~ 엄마 말씀을 잘 듣는 초등학생이 그렇게나 많은 거야?!"
"그게 아니고~ 우리 엄마가 좋은 엄마라는 거지!"
엄마가 나를 어떻게 영어학원 보낼 수 있겠어
세상에나, 웃음이 나면서도 말문이 막혔다. 아이는 나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지금까지 아이가 원하지 않은 사교육은 해본 적이 없어 학습지도 안 해본 어린이고, 책 읽기를 비롯한 집에서 하는 모든 활동은 아이가 힘들거나 쉬고 싶다고 용기 내서 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분량을 줄이거나 중단하는 일도 매우 잦았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달랐다. 아이를 존중해 주면서 시도 때도 없이 이것저것 들이밀고 있다. 거절당할 때가 훨씬 많지만 단지 때가 아니라고 느낄 뿐이고, 그중에서 아이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있다면 연계된 도서 혹은 활동으로 꾸준하면서도 깊게 제안할 뿐이다. 거절당하는 게 특기인 나는 영어에 대해 흥미를 보일 때까지 조금 더 기다릴 뿐이고, 영어 영상을 볼 때 맛있는 간식을 더 챙겨주는 사람이다.
아이는 본인이 엄마 딸이라서 무척 좋고, 행복하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 말은 사실 과분했다. 머릿속에는 얼마 전 피곤인형을 업고 저녁에 깨어있는지 램수면 단계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아이에게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던 기억이 스치고 있어서 더욱 부끄러웠다. 앞으로 동네 아이들의 영어학원 가방에 눈길을 더욱 거두고, 이렇게 좋은 날 아이와 한번 더 산책을 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우리 사이 이대로 영원히 변치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