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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서 20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순간들

아이들과 나눈 작은 눈빛, 그 안에 담긴 세상

by 우리아이마음

‘선생님’이라는 이름을 달고 살아온 지도 어느덧 20년이 되었습니다.

세월은 빠르게 흘렀지만,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 순간의 긴장감과 설렘은

지금도 처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난 20년 동안, 저는 수많은 순간들을 만났고,

그 중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던 작은 장면들이 있습니다.


아이의 눈이 처음 나를 믿었을 때

교사 생활 초반, 매일같이 말을 안 듣던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수업 중에 갑자기 일어나고, 친구를 놀리기도 하고,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던 아이.

하지만 어느 날, 제가 조용히 “힘든 일이 있었니?”라고 물었을 때

그 아이가 잠시 눈을 피하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민 그 눈빛.

그날 이후로, 그 아이는 매일 내 옆자리에 와 앉았습니다.


신뢰는 가르침보다 먼저 오는 것임을

그 눈빛 하나가 가르쳐 주었습니다.


칭찬보다 필요한 건 기다림이라는 것

누구보다 조용하고 존재감이 거의 없던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한 학기 내내 손을 들지 않았고, 발표도 없었죠.

어느 날 저는 조용히 그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너의 말이 궁금해. 천천히 괜찮을 때, 들려줄래?”

그리고 정말 천천히, 한 달 뒤.

그 아이가 처음으로 손을 들고 말했을 때의

작고도 또렷한 목소리는

그 어떤 발표보다 큰 울림이었습니다.


칭찬보다 먼저 필요한 건 기다려주는 믿음이라는 것.

그 순간 저는 그걸 배웠습니다.


한 줄의 편지, 평생의 울림

학기가 끝날 무렵, 한 아이가 작은 메모지를 주었습니다.

“선생님, 저를 있는 그대로 좋아해주셔서 감사했어요.”

그 글을 보고 저는 책상에 앉아 한참을 울었습니다.

아이들은 잘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다 느끼고, 기억하고, 가슴에 담고 있었다는 것.

우리가 하는 모든 말, 모든 눈빛은

아이에게는 평생을 가는 흔적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걸 저는 수없이 많은 작고 따뜻한 메모들로 배웠습니다.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곁에 있어주는 사람

20년 동안 수많은 교육과정이 바뀌고, 시스템이 바뀌고, 교실의 풍경도 달라졌지만

아이들이 바라는 건 언제나 같았습니다.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봐주는 사람.

내가 틀려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


교사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 이상으로

‘마음을 견디게 해주는 존재’로 남는 것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놓치고 싶지 않았던 순간들

수업보다 더 소중했던 건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던 그 조심스러운 눈빛,

작은 칭찬에 환하게 웃던 표정,

가끔은 울먹이며 내 품에 안기던 순간들입니다.

그 순간들이 저를 이 자리에 서 있게 했고,

매일을 버티게 했으며,

오늘도 ‘다시 교실로 돌아가야지’라고 다짐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앞으로도 수십 번의 계절이 바뀌겠지만,

저는 여전히 작은 순간을 놓치지 않는 교사이고 싶습니다.

교단에 서는 하루하루가

아이들과 함께 쓰는 하나의 이야기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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