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함구증에 대한 오해와 진실
선택적 함구증에 대한 오해와 진실
“집에서는 그렇게 잘 떠들어요. 근데 어린이집만 가면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안 해요.”
“선생님이 불러도 고개만 끄덕이고, 친구들과도 대화가 없어요. 도대체 왜 그런 걸까요?”
아이의 침묵 앞에서 부모는 당황하고,
어린이집에서는 걱정 섞인 시선이 쌓여갑니다.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성격이 너무 소극적인 건 아닌지, 말이 느린 건지…
혼란스러운 질문들 사이에서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단어를 처음 듣게 되는 분들도 많습니다.
오늘은 어린이집에서만 말을 안 하는 아이들에 대해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선택적 함구증의 오해와 진실을 차분히 짚어보려 합니다.
선택적 함구증(Selective Mutism)은 특정한 상황이나 환경에서만 말을 하지 않는 불안 장애입니다.
가정, 부모, 친한 사람 앞에서는 말이 자유로운데,
낯선 공간이나 공식적인 자리, 또는 또래가 많은 환경에 들어서면 입을 닫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말 안 하고 싶은 성격이 아니라,
극심한 사회적 불안으로 인해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즉, 아이가 말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많은 부모가 처음엔 이렇게 생각합니다.
“성격이 조용한 거겠지.”
“적응하면 자연스럽게 나아질 거야.”
하지만 선택적 함구증은 단순한 성격 특성과는 다릅니다.
내향적인 아이들도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면서 말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선택적 함구증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도 불안이 줄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말하는 상황 자체를 두려워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 시기를 “그냥 기다리자”고 넘기면,
말하지 않는 습관이 고착되고, 자존감 저하와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많은 보호자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집에서는 너무 잘 떠들고, 장난도 잘 쳐요. 문제없어 보여요.”
맞습니다.
집에서 말이 잘 된다는 건, 아이가 언어적 능력이 있다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동시에, 외부 환경에서는 불안을 견디기 어려워 말을 못 하고 있다는 단서이기도 합니다.
아이의 언어 능력이 정상이더라도,
불안이 언어 사용을 억제하는 상태라면, 적절한 개입이 필요합니다.
선택적 함구증은 부모와 교사가 함께 아이의 심리적 안전지대를 넓혀주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말하도록 강요하지 않기
“대답해봐”, “왜 말 안 해?”라는 말은 아이를 더 위축시킬 수 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환경을 먼저 만들어 주세요.
고개 끄덕임, 손짓, 그림, 스티커 등 비언어적 표현을 존중해 주세요.
말하지 않아도 ‘사람으로서’ 인정받는 경험 쌓기
“얘는 말도 안 해요”라는 식의 표현은 아이에게 부정적인 자각을 심어줍니다.
대신 “○○는 잘 듣고 있어요”, “눈으로 예쁘게 인사해줬네요”처럼
말 이외의 행동을 인정해주는 피드백이 중요합니다.
신뢰 기반의 관계 형성부터
어린이집 선생님이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아이와 조용히 앉아 그림을 보거나
말 없는 놀이를 반복해보세요. 신뢰는 말보다 먼저 오는 것입니다.
작은 성공을 반복시켜주기
“오늘 고개 끄덕였네.” “오늘 눈으로 친구 쳐다봤네.”
이런 미세한 변화를 민감하게 발견하고, 자연스럽게 기뻐해 주세요.
말은 바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준비는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모든 아이가 치료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만 3~4세 이후에도 특정 공간에서 전혀 말하지 않고,
그 시간이 2~3개월 이상 지속되며, 불안과 회피가 강한 경우라면
언어치료사나 아동 심리 전문가의 평가를 받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빠른 개입은 더 자연스럽고 부담 없이 아이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는 길이 됩니다.
선택적 함구증은 아이가 말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긴장과 두려움이 큰 상태’임을 이해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아이들이
작은 배려와 기다림, 믿어주는 어른의 시선 속에서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
선생님과 눈을 맞추고, 조용히 “안녕하세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되죠.
그 순간까지 필요한 건
설득이 아니라 신뢰,
가르침이 아니라 기다림,
질문이 아니라 공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