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관계의 시작과 부모의 역할
“엄마, 나는 친구가 없어.”
아이의 이 한마디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았던 유치원, 어린이집, 학교에서의 생활.
막상 아이의 입에서 ‘혼자’라는 단어가 나올 때, 부모는 당황스럽고 안쓰럽고, 괜히 속상해지기까지 합니다.
그럴 땐 이런 질문이 이어지곤 하죠.
“왜 친구가 없지?” “혹시 우리 아이가 이상한 걸까?”
하지만 ‘친구가 없어요’라는 말은 그 자체로 문제라기보다, 아이 마음의 창을 열어준 표현입니다.
오늘은 또래관계의 시작이 왜 중요하며,
친구를 사귀는 일이 아이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그 곁에서 부모가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지 천천히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영아기까지는 주로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던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또래와의 관계’가 정서 발달의 중심으로 옮겨갑니다.
같은 눈높이에서 장난치고, 미소를 주고받고, 때로는 다투고 화해하면서
아이들은 사회성, 감정 조절, 자기 표현을 배워가기 시작합니다.
친구는 아이에게 단순한 놀잇감의 상대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사회 안에서 확인하는 중요한 거울이 되는 셈이죠.
그래서 친구가 없다는 건,
그저 외로움의 표현일 수도 있고,
아직은 친밀감을 맺는 법을 배우는 중이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친구가 없어’라고 말할 때, 그 말의 배경은 다양합니다.
친구는 있지만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어서
예를 들어, 자신만을 바라보는 친구를 원하거나, 함께 놀고 싶은데 초대받지 못했을 때
아이는 ‘친구가 없다’는 식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관계의 불균형에서 오는 위축감
또래 무리에서 리더 역할을 하는 친구와 자꾸 비교되거나,
자꾸 놀자고 했지만 거절당한 경험이 누적되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나는 친구가 없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말보다 감정이 먼저 나오는 표현
실제로는 함께 노는 친구가 있음에도,
서운함, 질투, 소외감 같은 복합적인 감정이 섞여서 ‘친구 없음’으로 말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처럼 ‘친구가 없다’는 말은 단순한 상태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느끼는 감정의 표현일 수 있다는 걸 기억해 주세요.
부모로서 “이럴 땐 이렇게 해봐” 하고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사회성은 ‘말로 배우는 것’보다 ‘경험하면서 익히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라는 질문보다는
“무엇이 불편했을까?”
“어떤 상황이 힘들었는지 기억나?”
아이의 감정을 함께 정리해 주는 시간이 먼저입니다.
이런 감정의 이름 붙이기, 상황 되짚어보기를 통해
아이는 자기 마음을 인식하고, 다음 관계에서 조금 더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됩니다.
부모가 먼저 건강한 관계의 모델이 되어주세요
아이는 부모가 누군가와 대화하고, 갈등을 풀고, 감정을 나누는 모습을 통해
‘관계란 어떤 것인지’를 자연스럽게 배웁니다.
다그치지 말고 감정을 인정해 주세요
“왜 친구가 없다고 생각해?” “그게 속상했구나.”
말보다 감정을 먼저 받아주는 자세가, 아이를 더 깊이 위로합니다.
놀이 속 관계 연습을 함께 해보세요
인형놀이나 역할극을 통해 “놀자고 말해보기”, “거절당했을 때 감정 표현하기” 등
상황을 연습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관계를 서두르지 않기
모든 아이가 외향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아이는 적은 친구와 깊은 관계를 맺는 성향일 수 있습니다.
아이의 기질을 인정하며, 아이만의 속도로 사회성을 익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에게 친구란, 함께 뛰노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자기 마음을 알아주고,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는 어른이 먼저 있어야 가능합니다.
부모가 그런 존재가 되어준다면
아이는 조금 늦더라도,
자신의 속도대로, 진짜 친구를 만나게 됩니다.
“우리 아이는 지금 관계를 배우는 중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기다려주는 시간,
아이에겐 무엇보다 깊은 위로가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관계에서 상처받은 아이가 다시 마음을 여는 과정’과,
그때 부모가 어떤 언어로 함께할 수 있을지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친구보다 먼저 필요한 건, 내 마음을 먼저 들어주는 어른 한 사람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