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사를 앞두고 가장 먼저 손을 댄 건 냉장고였다.
4년 동안 두 대의 냉장고로 지냈다.
내가 쓰던 냉장고는 그대로 썼고, 엄마도 자신의 냉장고를 유지했다.
식기류는 엄마의 것을 주로 사용하며, 내 살림살이는 어딘가에 밀어 넣어 두었다.
살림이 섞인 듯 섞이지 않은 채, 그렇게 네 식구의 시간이 흘렀다.
분가 하기 전, 제일 먼저 정리하는 냉장고.
냉장고를 열었다.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그 혼란은 고스란히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 같았다.
정리를 시작하며 이상하게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냉동칸에서 꺼낸 먹다 남은 음식들을 정리하며, 억눌러둔 미안함과 후회가 밀려왔다.
엄마가 우리 먹으라고 만들어 둔 반찬들.
'제대로 먹지도 않았네.'
버리면서 후련하면서도 이상하게 먹먹했다.
결혼 후 엄마와 이렇게 자주 다투게 된건 합가를 하고 나서 부터다.
가까이서 마주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짜증과 투정을 엄마에게 부리고 있더라.
신랑과 다투고는 엉뚱하게 엄마에게 화풀이를 하고,
딸을 키우며 쌓인 피로도 엄마에게 풀어버렸다.
어느 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우리가 이렇게 붙어있지 않으면 내가 엄마한테 짜증낼 일도 없고, 차라리 효도나 하겠지."
그 말이 엄마에게 어던 상처로 남았을지 모르겠다.
그저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는 핑계로 쏟아낸 내 말은,
엄마의 마음 한편에 묵직하게 내려앉았을 것이다.
냉장고를 닦아내며 다짐한다.
"이제는 정말 다르게 살자. 엄마도 나도 조금 더 가볍고, 조금 더 행복하게."
냉장고속을 깨끗이 비웠다.
그리고 마음속 미안함도 조금씩 비워낸다.
엄마는 후회없다고 말한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똑같이 너희가 원하면 합가를 했을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