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인터뷰⑫] 캐나다 토론토 이성진, 권세은
우리(김병철, 안선희)는 10개월 동안 세계여행을 하며, 해외에 사는 한인 이민자들을 만났다.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 문화, 사람들 속에서 살아보는 것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기록을 공유한다.
20, 30대가 가장 많이 선택하는 이민 과정 중 하나는 ‘유학 후 이민’이다. 전문 기술을 배워서 현지 학위를 얻으면 취업에 용이할 뿐만 아니라, 몇 년 동안 안정적인 신분으로 거주할 수 있다. 이성진, 권세은 부부는 캐나다에서 제빵 공부를 마친 후 취업한 케이스다. 그들이 경험한 캐나다 이야기를 들어보자.
- 가족 : 부부, 아들(4세)
- 거주지 : 캐나다 토론토 2년
- 거주 신분 : 취업비자
*모든 내용은 2017년 4월 인터뷰 시점이 기준입니다.
2000년 대학 입학(건축공학 전공)
2009년 대학 졸업 후 건설협회, 건설현장 근무
2010년 한국해비타트 취업, 결혼
2014년 NGO 퇴사, 유학 결정
2015년 토론토 도착, 조지브라운대학 입학(Baking and Pastry Arts Management)
2016년 포시즌호텔 근무, 졸업
대학 시절부터 이성진씨는 외국과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필리핀 어학연수 1년, 중국 교환학생 1년, 캐나다 어학연수 2개월을 다녀왔고, 여러 해외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이런 행사를 운영하는 NGO(비정부기구)를 알게 됐고, 그곳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97년 대학 입학(산업공예디자인 전공)
2000년 대학 졸업, 주얼리 디자인 취업
2002년 편집디자인으로 이직
2010년 결혼, 임신 후 재택근무
2012년 출산, 육아
2015년 토론토 도착, 한인 신문사 취업
산업공예디자인을 전공한 권세은씨는 주얼리, 학습지, 기업보고서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기회가 왔을 때 항상 새로운 일에 용기 있게 도전했던 그는 캐나다에서도 신문 편집을 배우며 자신의 영역을 넓혀갔다.
이성진씨는 한국해비타트, 지구촌나눔운동, 송탄국제교류센터 등 NGO에서 해외 봉사활동을 기획하고 운영했다. 그러나 NGO의 속 모습이 정작 자신이 생각과는 다름을 느끼고 전업을 결정했다. 제빵을 배우기로 결심한 그는 2015년 아내, 아들(3세)과 함께 캐나다 토론토로 떠났다. 당시 그의 나이는 33살이었다.
-성진님은 해비타트 일을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성진 : 사실 건축보다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에 더 마음이 갔어요. 필리핀에 쓰나미가 왔을 때 ‘당신이 가진 능력으로 도와주세요’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봤어요. 해비타트 2년 해외 봉사를 지원했는데 면접에서 떨어졌어요. 그다음 해에 직원으로 국내에서 일하는 건 어떠냐고 해서 입사했어요.
-대학 졸업 후 줄곧 NGO에서 일했는데, 전업을 생각한 이유는 뭔가요?
성진 : 일에 회의감이 생겼어요. 10년 뒤 내 모습이 어떨지 보이니까 계속 이 분야에 있는 게 맞을까 생각이 들었거든요. 전문가가 되고 싶었는데 그게 어렵다는 게 보였어요. 매년 직위는 높아져도, 내가 하는 일과 신입사원이 하는 일에 차이도 별로 없고요.
그리고 4년 정도 여러 기관에서 일해보니 NGO 사업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어요. '사람을 돕는다'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결국엔 사업의 하나일 수밖에 없더라고요. 장기 해외 파견을 기대했는데 그것도 어렵고요.
-캐나다로 이민을 결심한 이유는요?
성진 : 처음부터 아예 이민은 아니었고요. 일단 전업을 생각하고 제빵 유학으로 온 거예요. 한국으로 돌아오더라도 1, 2년 나가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캐나다에 남을 수 있으면 남고요.
-제빵을 공부할 생각은 어떻게 하신 거예요?
세은 : 제가 조지브라운 대학(George Brown College)에서 제빵을 공부하는 사람의 블로그 링크를 보내줬어요. 지나가다 보고 ‘제빵 기술을 배워서 캐나다에 사는 것도 가능하겠다’해서 보내준 거예요. 남편이 그때는 음식을 자주 하지는 않았지만 뭘해서 먹이는 걸 좋아했어요. 특히 디저트류를요. 잘 맞을 것 같아서 보내준 거예요.
성진 : 재밌는 건 그전에 아내가 호주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부부에 대한 글을 보내준 적이 있었는데 그땐 아무런 느낌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캐나다 보다 제빵을 배우고 있는 모습에 반했던 것 같아요. 제가 손으로 뭔가를 만들고,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블로그 보고 그날 바로 (캐나다행을) 결정했어요.
어떤 물건을 봤는데 둘 다 그냥 맘에 들어서 다른 고민할 필요가 없는? 딱 그랬어요. 그리고 대학생 때 밴쿠버 UBC 대학에서 2달간 영어연수를 한 적이 있어요. ‘여기는 가족이 함께 살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게 떠올랐어요.
세은 :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캐나다에 가기 전에 (남편이) 빵집(빵굼터)에서 일해봤는데 잘 맞는다고 하더라고요.
성진 : 대학생 때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풀타임으로 일했어요. 요리는 급하게 돌아가잖아요. 빵굼터에서 일해보니 제빵은 전날이나 아침에 주문이 다 나와요. 스케줄 있는 곳에서 일하는 게 좋겠더라고요.
-캐나다에서 무조건 정착하겠다는 건 아니네요?
세은 : 여기는 제빵을 공부하고 싶어서 왔어요. 베이커로 일하면서 열심히 하면 영주권까지 오면 좋은 거고요. 캐나다 올 때 사람들한테 ‘이민 간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어요.
성진 : 장기 계획은 짜는데 (정착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항상 해요. 저는 여기서 ‘살고 있다’지, ‘이민 왔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민’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영주권을 목표로 오거든요. 저는 그 과정이 싫었어요. 살긴 살더라도 살만한 이유가 돼야 사는 건데요.
“베이킹해서 돈 못 벌어요, IT하세요” 이렇게 얘기하는 분들이 있는데, 저희는 영주권이 최종 목표는 아니거든요. 물론 기회가 되면 영주권 취득하고 시민권까지도 바라보겠지만, 우선은 기술을 익히고, 경력을 쌓아 잘 적응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어요.
다들 이민 생활이라고 하면 ‘힘들고 어렵다’라고만 느끼다 보니, 저 스스로 '이민'이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고 ‘이사 왔다’는 생각으로 지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다른 나라에서 산다는 게 굳이 힘들다고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싶기도 하고요.
-조지브라운 대학 제빵 수업 과정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성진 : 2년 과정(4학기)이고요. 원래 9월이 입학 시즌인데, 제가 들어갈 때는 제빵학과가 인기라 5월 학기를 추가로 개설했어요. 한 학기에 4개월씩이고 입학 후 (4개월 방학을 포함해) 20개월 즈음에 졸업해요.
제가 공부할 땐 학생 50명 중 한국인은 2, 3명이었어요. 중국 사람이 많아서 동양인 다 포함하면 전체의 40~50% 정도예요. 캐나다인은 약 20~30% 정도고요.
대학에서 제빵을 배운 이성진씨는 지금 토론토 포시즌호텔에서 ‘페이스트리 쿡(Pastry Cook)’으로 일하고 있다. 새로운 직업을 처음부터 시작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지만, 지난 2년을 잘 버텨 여기까지 왔다. 3년짜리 PGWP(Post-Graduation Work Permit)라는 취업 비자를 받은 그는 한발 한발 캐나다에서의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
-호텔은 어떻게 취직했어요? 과정을 설명해주세요.
성진 : 3학기에 한 달 동안 인턴 수업이 있는데 베이커리, 호텔 등 여러 군데로 갈 수 있어요. 저는 기본부터 배우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호텔로 갔어요. 베이커리에 가면 특정 제품만 배워요. 호텔 뱅킷(Banquet)은 학교에서 배우는 메뉴를 다 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장기적으로 강단에 서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 호텔이 낫다고 생각했어요. 존경하는 학교 셰프가 토론토에서는 포시즌과 샹그릴라 호텔이 제일 좋다고 했는데, 저는 포시즌이 됐어요.
인턴한다고 취업이 보장되는 건 아닌데 마침 제가 일하는 기간에 파트타임을 구하고 있었어요. 인턴 첫 주에 지원했는데, 인턴이 끝날 때까지 사람을 못 구해서 저만 면접을 봤어요. 뽑으려는 사람만 면접을 봐서 면접을 보면 50%는 돼요. 면접까지 가는 게 어려운 거죠.
-제빵 공부를 한국이 아니라 캐나다에서 한 이유가 있나요?
성진 : 제빵이 한국에선 아닌데 캐나다에선 할만하다고 생각해요. 한국 빵집에선 아침 6시에 출근해서 저녁 7~10시에 퇴근했어요. 근데 급여는 월 130만, 150만원이고요. 4, 5년 해서 제빵장이 돼도 근무시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요.
저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최대한 보장되길 바라는데, 한국에선 직접 빵집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내 가게를 차려도 사장님 일하는 걸 보면 알잖아요. 사장님은 아침 6시에 문 열고 밤 12시에 문 닫아요. 하루 종일 빵집에만 있는 거예요. 저는 주 6일 일하지만 사장님은 주 7일이잖아요.
지금 저는 일주일에 4일(화, 수, 목, 토요일) 출근해요. 하루에 8시간 일하고 30분 휴식하고요. 호텔엔 노조가 있어 쉽게 자를 수도 없어요.
-캐나다에서 제빵 분야는 급여가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성진 : 정장 입고 사무실로 출근하는 사람의 초급이 4만, 5만캐나다달러(이하 달러로 표시) 정도일 거예요. 우리는 3만, 4만달러고요. 한국에서도 사장님, 매니저가 아닌 이상 월 300만원에서 더는 안 올라가요. 여기도 같아요.
매니저급이 아니면 연차 수당은 있겠지만 4만, 5만달러에서 더 안 올라갈 거예요. 그래도 매니저 안 하려고 해요. 우리는 8시간만 일해도 4만달러를 받는데 매니저는 급여가 조금 더 높은 대신 메뉴 개발, 직원 관리 스트레스도 있고, (시급 아닌)월급으로 받으니 근무시간이 훨씬 길어요. 참고로 호텔 총괄 셰프(Executive Chef)는 유명세에 따라 10만달러 내외로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많이 버는 것에 대해서 미련이 별로 없어요. 6만, 7만달러 받나, 4만달러 받나 비슷해요. 많이 벌면 그만큼 세금도 많이 내고 정부지원금도 적어져요.
-파티시에로서는 어떤 계획을 갖고 계세요?
성진 : 나중에 영주권을 신청할 건데, 이민 정책이 불과 몇 년 사이에 많이 바뀌었어요. 지금 저는 경력을 잘 쌓는 게 더 중요해요. 그래야 회사에 들어가면 그 회사가 나를 잡을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된다면 제 가게를 하고 싶어요. 그리고 더 멀리 가서는 가르치는 일도 하고 싶어요. 제가 졸업한 조지브라운 대학에도 현업에 일하면서 파트타임 또는 풀타임으로 가르치는 셰프들이 있어요.
-한인 이민자는 요리사(Cook)를 많이 하는데 이유가 있나요?
성진 : 제빵보단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일단 영어를 많이 안 해도 되는 직업이고요. 그리고 캐나다는 요리사가 영주권 받을 수 있는 직업군에 포함되어 있었어요.(2014년에 잠시 빠졌다가 이후 다시 추가됨) 요리가 좋아서 유학 온 사람들이 있고요. 다른 공부하다가 요리를 ‘알바’로 시작했는데 잘 맞아서 계속하는 경우도 있고요.
-캐나다는 유학 후 이민을 준비하는 사람이 많은데 어떤 직업을 많이 하나요?
성진 : 20~30대는 처음 시작하는 거니 크게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해요. 40대 이상은 한국에서 하던 직업을 가져오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사무직 출신이 많으니까 전공을 바꾸는데 좀 헤매죠. 돈 많이 번다고 해서 IT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근데 졸업하기도 어렵지만 취업도 쉽지 않아요.
-취업을 못하면 영주권을 딸 수 없을 텐데, 취업이 많이 어렵나요?
성진 : 대학에서 기술을 배우고 나오면 바로 건축현장 등에서 일할 수 있지만, 사무직(Office Job) 회사 취업은 생각보다 어려워요. 여기 현지인들도 취업이 어려워요. 주변에 IT전공으로 졸업한 지 1년이 지나도 취업이 안 돼서 마트에서 일하거나, 건설현장 일용직을 나가는 사람들도 봤어요. 어떤 사람은 영주권 취득이 쉽다고 해서 다른 주로 갔는데 아직 일자리를 못 구했다 하고요.
한국은 스펙을 쌓고 면접 준비를 하는데, 여기는 경력 위주 채용이라 경력 없이 취업은 솔직히 어려워요. 어떻게든 졸업 전에 학교 다니면서 인턴, 파트타임으로 일 시작한 사람은 그래도 잘 구하는 것 같아요. 경력을 안 쌓고 있다가 졸업한 뒤 찾으려 하면 힘들죠.
저도 바로 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5월에 대학 입학하고, 6월부터 바로 식당에서 일했어요. 6개월 후에는 친구 소개로 새로 오픈하는 빵집에서 일자리를 구했고요.
권세은씨는 캐나다로 떠날 때 걱정보다 신나는 감정이 앞섰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그에게 캐나다에서 생활은 “그냥 새로운 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기 때문이다. ‘캐셔라도 하면 되겠지’ 생각하며 취업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그는 남편보다 먼저 일자리를 구해 취업비자를 받았다.
-세은님은 캐나다로 가기 전에는 어떤 구상을 하셨어요?
세은 : 저는 워낙 해외 경험이 적어서 영어를 안 써봤어요. 빨리 영어를 익혀서 파트타임으로 캐셔(Cashier), 서빙이라도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성진 : 캐나다는 서빙으로 돈 많이 벌어요. 웨이터만 십 년 넘게 한 사람이 있는데 매니저보다 많이 번대요. 기본 급여는 낮지만 팁이 있어서 월 3000~4000달러를 벌어요. 캐나다 사람들은 말 잘 걸어주고 웃겨주면 팁을 많이 줘요. 사람 만나고 얘기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면 좋아요.
-근데 경력을 살려서 취업을 하셨네요? 취업도 남편보다 먼저 하고요.
세은 : 외국 나가서도 제가 하던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캐나다 도착한 둘째 날 은행에 가서 계좌를 만들었는데요. 도와주던 한인 직원이 대뜸 직업을 물어보더니 디자이너를 뽑는다며 직장을 추천해 줬어요. 그땐 정말 마음의 준비가 없어서 고사했어요.
그다음에 남편이 주간지 신문사에서 디자이너를 뽑는다고 넣어보라고 해서 지원했어요. 제가 신문은 안 해봤지만 거기도 사람이 급하게 필요해서 일하게 됐어요. 목요일 발행이라 금요일은 쉬고 월, 화, 수요일만 출근했는데, 초반엔 처음 하는 일이라 벅찼어요. 그런데 익숙해지니까 나중에는 집에서도 할 수 있더라고요. 익숙해진 뒤로는 월요일만 출근하고 나머지는 재택 근무했어요.
-지금은 다른 신문사로 이직하셨는데 출퇴근 시간이 어떻게 되나요?
세은 : 근무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반까지인데요. 아이가 8시45분에 학교 들어갈 때까지는 같이 있어야 해요. 그래서 회사에 양해 구하고 15분 늦게 출근하고 있어요.
-일과를 좀 더 설명해주세요.
세은 : 오전 6시 반에 일어나서 아이와 제 도시락을 싸요. 8시 반쯤 나가서 45분에 아이가 등교하면 저도 출근하죠. 아이가 요즘엔 방과후학교를 해요. 오후 6시까지만 데리러 가면 돼서 일이 적으면 4시 반, 많으면 5시쯤 퇴근해요.
월~금요일 7시간씩 근무하는데 여유롭게 일하는 편이에요. 아이가 병원이나 학교에 가야 하면 정오에 출근해도 돼요. 한국 회사지만 사람들이 캐나다에 오래 살아서 그런지 집안일이면 무조건 ‘오케이’예요.
일에 지장만 안 주면 돼요. 오후 1시에 퇴근하면 (남은 일은) 다음날 하면 돼요. 이렇게 애 키우면서 일하기가 편하니까 여자들이 일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한국은 못하잖아요. 첫 신문사에 취업할 때도 ‘당장 아이를 맡길 데가 없다’고 했더니 거래처 중에 사립학교가 있다고 어린이집(Daycare)을 싸게 알아봐 줬어요.
주말엔, 토요일은 놀러 다니고 주일은 교회를 가요.
성진씨와 세은씨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캐나다는 아이를 키우기 좋은 나라였다. 육아지원정책도 예상보다 좋았고, 아이와 함께라면 어느 곳에서든 환영받았고 모두가 친절했다. 그 무엇보다 제일 만족스러운 건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 점이다.
-캐나다에서 아이 키우는 건 어떤가요?
성진 : 캐나다는 복지가 좋고, 공부하는 동안 아이가 무료로 유치원에 갈 수 있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근데 막상 와보니 생각보다 더 괜찮았어요. 무상지원이나 아이 양육보조금의 종류도 다양했고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세은 :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4살까지는 '일 하지 말고 집에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린이집 지원금(Child Care Subsidy)을 알게 됐어요. 부모가 둘 다 일하거나 공부하면, 정부가 수입에 따라 차등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에요. 외국인이든 시민권자든 모두 받을 수 있어요. 국공립 어린이집은 월 1000~2000달러예요. 저희 아이는 전액 지원받아 무료로 다니고 있어요.
그리고 아이가 캐나다에 거주한 지 18개월이 지나면 자녀양육보조금(Canada child benefit·일명 우윳값)이 나와요. 신청을 늦게 해서 만약 못 받은 금액이 있으면 일괄 소급 정산해주고, 18세 전까지 계속 나와요. 지금 저희 기준으로는 자녀가 1명이라 월 650달러예요.
어떤 사람은 학교만 다니는데 일 안 해도 애가 둘이니까 월 1400달러 정도 나와요. 월세 정도 충당할 정도인 거죠. 저희 집 월세가 1400달러예요.
-한국에선 육아지원정책이 어땠어요?
세은 : 한국에선 월 10만원을 받았어요. 10만원 대신 무료로 어린이집을 보낼 수도 있고요. 비용상으로는 어린이집이 무료니까, 캐나다 오기 전까지는 어린이집을 계속 다녔죠.
-예산은 얼마나 가져오셨어요?
성진 : 첫 학비를 내기 전에 한국 은행 외화통장에 4만달러를 넣어놓고 시작했어요. 다른 통장에 예비비가 있긴 했는데, 지금까지 건드리지 않고 잘 버텨왔네요. 저희가 학비(3만2000달러)는 낼만큼 있었고 ‘알바’해서 월 1000달러씩은 벌겠다고 생각했죠. 2년은 우리가 가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세은 : 우리가 한 달에 2500달러 정도 쓸 거라고 예상했는데 어림도 없어요. 한국보다 여기서 더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성진 : 실제 살아보니 자동차 보험비, 주유비, 월세가 월 2000달러 정도라 매달 생활비로 2800~3000달러 정도 나가요. 지금은 저희 둘이 버니까 한 명분 소득은 저금하고 있고요. 세금은 소득의 20% 정도 떼간다고 보면 될 거예요.
-캐나다 어린이집은 한국과는 어떤 면이 다른가요?
세은 : 한국에선 거의 엄마처럼 돌봐주잖아요. 애가 밥을 안 먹어도 옆에서 한 숟가락 더 먹이고. 근데 여기선 애가 아파도 약을 함부로 주면 안 돼요. 꼭 부모의 사전 허락을 받아야 하고, 알레르기가 다양하게 많다 보니 아이 스스로 밥을 안 먹으면 딱 거기까지만 주고요. 아무리 아기라도 독립적으로 키우더라고요.
-교육은 어떤가요?
세은 : 목요일마다 교육청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한글 학교를 보내는데요. 한글 학교를 갔다가 다음날 금요일에 유치원에 가면 선생님이 항의를 해요. (다른 날은 안 그러는데) 애가 너무 ‘젠틀(Gentle)’하지 못하고 다른 친구들을 발로 막 차고 한다고요. 여기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예절을 더 따져서 아이들이 좀 더 차분해지는 것 같아요.
-캐나다 부모는 자녀에게 엄한 편인가요?
한국에선 흔하지만 캐나다 와선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차분하게 말하는데 아이들이 알아들어요.
-미국의 한인 이민자들은 사교육을 꽤 하던데요. 캐나다는 어떤가요?
세은 :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꽤 많은 한인들이 캐나다에서도 사교육을 시켜요. 사실 제가 고3까지 서울 대치동에 살아서 대치동 학원가를 보며 자랐어요. 애들이 그렇게 사는 게 너무 불쌍한 거예요. 그때부터 애는 이렇게 키우지 말아야지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점점 한국에선 살지 말아야지, 안 되면 시골 가서라도 살아야지 생각했어요. 그렇게 싫어서 왔는데 여기서도 한국처럼 사는 사람이 있어요.
성진 : 여기도 학군이 있어요. ‘학군이 좋다’는 말은 그 동네에 동양인이 많다는 거예요. 우리는 사교육을 안 시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왔어요. 사교육을 받은 아이와 안 받은 아이들의 차이가 있잖아요. 그런 환경에 따라 직업군 선택도 달라지고요. 앞으로 한두 세대는 지나야 이런 것도 바뀌지 않을까요. 바뀌고 있지만 당장은 어렵다고 보는 거예요. 기본적인 것 자체가 평등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어요.
이성진, 권세은씨는 한국이 싫어서 떠난 건 아니다. 외국 출장을 많이 다니면서, 전업과 아이 교육 등에서 캐나다가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이 둘은 자신의 성향과 적성, 직업을 잘 따져보고 이민을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캐나다에 와보니 한국에서 삶과 어떤 부분이 달라졌나요?
성진 : 가족과의 시간이 훨씬 많아졌고,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었어요. 아들 학교 문제와 교육, 놀이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등하교를 같이 할 수 있게 됐고요. 그리고 정치 문제 같은 고민을 덜하고, 경제적 문제 특히 수입에 대해 오히려 덜 걱정하게 된 것 같아요.
-캐나다에서 살아보니 좋은 점은 뭔가요?
성진 : 직장에서 일에 대한 스트레스는 있지만, 한국에서 상사 눈치와 퇴근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없어요. 초과근로하면 돈을 더 줘야 하니까 바로 퇴근하죠. 그리고 ‘이거 일 누가 했어?’같이 잘잘못 따지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내가 뭘 잘못 만들었다면 그걸 확인 못한 상사의 책임이에요.
세은 : 한국은 사람이나 줄에 따라서 결정되는 상식 밖의 일이 있지만, 여기는 되는 건 무조건 되는 거예요. 나라를 믿어도 되는 거, 그게 달라요. 대신 행정처리가 엄청 느려요. 서류를 보내면 잊어버릴 때쯤 답장이 와요.
성진 : (이민자를) 많이 이해해주려고 해요. 상대가 유색인종이면 영어가 서툴 수도 있다는 걸 전제로 두고 있어서 그런지 대체적으로는 너그러워요. 제 신용카드가 도용됐다는 연락이 온 적이 있어요. 아무래도 좀 복잡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통역사를 요청해 삼자 통화를 했는데요. 영어 쓰는 사람이 그걸 귀찮아한다거나, 더디다고 불편하다고 표현하는 게 전혀 없어요.
세은 : 여긴 통역사가 어디든 있어요. ‘교통티켓’ 때문에 벌금 조정을 하기 위해서 법정에 갔을 때, 통역사를 요청했는데 통역사가 안 오면 그 벌금이 무효가 돼요. 그리고 사람들이 매너가 좋아요. 특히 운전할 때 많이 느껴요. 웬만하면 다 기다려줘요.
-불편하거나 안 좋은 점도 있지요?
세은 : 의료시스템이 안 좋은 건 유명해요. 아프거나 병원 갈 때 불편해요. 한국은 한 군데서 검사를 모두 받을 수 있는데, 여기선 피 검사, 초음파 검사하러 다 따로 가야 해요. 그 대신 다 무료이긴 해요. 약값은 들지만요.
성진 : 제가 아침 8시에 응급실을 간 적이 있어요.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렸는데 저녁 6, 7시 다 돼서야 치료를 받았어요. ‘아파서 죽겠다’는 아니라서 기다리긴 했는데 너무 오래 걸리죠. 천천히 하지만 정확하게 한다는 건 있어요.
-캐나다에서 살면서 가치관 달라졌다거나 변화가 있나요?
성진 : 가치관은 같은데, 가치관대로 살아가고 있느냐가 달라진 것 같아요. 일과 삶의 균형이 있고, 수단으로써 일이 아니라 내가 추구하는 걸 위해 일하길 바랐어요. 그래서 NGO를 하고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을 선택한 건데요. (현실은) 그게 아니었던 거죠.
그리고 내가 성장하고 싶고 전문가가 되고 싶었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가능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기술을 배우고 싶었어요. 여기는 기술이 우선이에요. 실력이 있으면 인정을 해줘요. 출신, 학교도 보지만 어디서 몇 년 근무했다고 하면 인정해주거든요.
캐나다 사람들은 경력자들도 부족한 게 있다고 느끼면 따로 가서 더 배우고 와요. 페이스트리 셰프도 레시피 관련해서 모르는 게 있으면 저에게 물어봐요. 담당 셰프는 페이스트리 쪽이고 저는 베이킹 쪽이거든요. 그런 면에서 되게 수평적이고 제 기술을 존중해준다는 걸 느끼죠. 내가 공부하고 배운 만큼 여기서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요.
-다른 분들이 캐나다로 이민 온다고 하면 추천하겠어요?
세은 : 막연하게 한국의 부조리가 심해서, 미세먼지 때문에 온다면 추천 안 할 텐데요. 싫다고 그냥 도망치듯 오는 건 아니고, 목적을 가지고 와야 할 것 같아요. 그 대신 여기선 정말 열심히 살아야 해요. 제 남편에게 이민을 상담하는 친구가 많아요. 그런데 질문만 계속하고 오는 사람은 사실 없어요.
성진 : 한국이 경제적으로 못 사는 나라는 아니에요. 대신 일과 직장, 가정의 균형을 찾기 어려운 곳이긴 하죠. 친구들한테도 얘기하다가 대부분 마지막에는 ‘그럴 거면 그냥 한국 살아라’라고 대답을 해줘요. 저희도 한국이 싫어서 도망치듯 떠나온 건 아니거든요.
세은 : 또 한편으로는 저와 남편이 돈 많이 벌고, 엄청 어렵게 들어간 직업이라면 ‘이렇게 쉽게 포기하고 올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해요. 놓기 쉬웠기 때문에 올 수 있었던 거죠.
-노후 계획이 있으세요?
성진 : 캐나다 오래 사신 분이 이렇게 계획하라고 알려주셨어요. 월세가 비싸니까 집을 빨리 하나 마련해서 기초연금 나오기 전까지 다 갚아라. 그러면 집으로 나가는 돈이 없으니 연금만으로 살 수 있다는 거죠.
한국은 기초연금이 월 몇 십만원인데 여긴 150만원 정도 들어온다고 해요. 근데 여기도 집값이 너무 올랐어요. 집이 없으면 노인들만 사는 공공아파트에서 살 수도 있다고 해요.
저는 가능하다면 충분히 경험을 쌓은 뒤에는 제 가게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 은퇴 걱정 없이 오래오래 제 일을 하고, 기회가 있을 때 해외 선교를 나가고 싶어요.
세은 : 여기는 퇴직이 65살인데 디자이너는 정말 65살까지 디자인을 한대요. 한국은 (그 나이면) 위에서 편하게 관리직을 하는데 여기는 나이 드신 분도 일하는 분 많아요. 여기선 당연히 일하는 거로 알고 있어요. 저도 필요하다면 학교도 다시 다니면서 배우고, 오래 일하며 살고 싶어요.
o 인구 : 약 3598만명
o 면적 : 997만㎢ (세계 2위, 한반도의 약 45배)
o 유럽계 백인 약 80%, 여타 지역 유색인종 20%
o 언어 : 영어, 프랑스어(연방 공용어)
o 영어 사용자 68%, 프랑스어 사용자 12.5%, 영어·프랑스어 사용자 17.5%
o 종교 : 가톨릭 43.6%, 개신교 29.2% 등
o 동포 : 22만4000명(2015년)
-캐나다 정부는 이민자를 2018년 31만명, 2019년 33만명, 2020년 34만명(현 캐나다 인구의 1%)으로 확대할 계획
-수용 예정인 이민자는 크게 경제이민(58%), 가족이민(27%), 난민(14%)
-특히 유학생과 캐나다 노동시장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고급 노동인력의 이민을 장려할 계획.
-기존 이민 쿼터보다 연간 2000명 이상 추가 수용하는 ‘대서양 이민 프로젝트(New Atlantic Immigration Pilot Program)’를 연장: 뉴펀들랜드,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 노바스코샤, 뉴브런스위크
글쓴이의 한마디 : 저희가 만난 분들의 이민 이야기는 그분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다른 방식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과 비교하지도 말고, 함부로 재단하거나 동경(혹은 훈계) 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저 사람은 저런 선택을 했구나’라는 정도의 시각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행복을 찾아 한국을 떠난, 이민자 11팀의 정착 이야기가 담긴 저희 책이 나왔습니다.
브런치에는 없고 책에만 실린 인터뷰도 있습니다. 아래 링크에서 구매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