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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살에 캐나다로 건너가 공무원이 된 남자

[이민자 인터뷰⑭] 캐나다 토론토 이장헌

우리(김병철, 안선희)는 10개월 동안 세계여행을 하며, 해외에 사는 한인 이민자들을 만났다.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 문화, 사람들 속에서 살아보는 것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기록을 공유한다.

이장헌

-거주지 : 캐나다 토론토

-공사 소속 부동산 감정평가사

-캐나다 거주 13년(시민권자)

*모든 내용은 2017년 3월 인터뷰 시점이 기준입니다.


Timeline

1999년 두산 취업

2000년 캐나다 이민 신청

2001년 캐나다 영주권 취득(독립기술이민)

2004년 토론토 도착, 대학에서 감정평가 공부(UBC, Seneca College)

2006년 MPAC 취업

1998년 유럽 배낭여행 당시 영국 버킹엄 궁전 앞에서. 사진=이장헌 제공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나? 

이장헌씨가 대학생이었던 90년대 초반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책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가 베스트셀러였다. 그도 이 책을 읽고 유럽 배낭여행을 가고,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꿈을 꿨던 대학생 중 한 명이었다.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했지만 좀 더 넓은 세상에 대한 생각은 오히려 더 커졌다.


-두산에서 일할 때는 어땠나요?

두산이 주류 판매 회사잖아요. 그래서 술을 엄청 먹어요. 자동차 회사 직원들이 자동차 팔아주는 것처럼 술 회사 직원들은 술을 팔아줘야 해요. 시장 점유율이 중요하잖아요.


점심 때도 폭탄주를 마셔서 취해서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승인되는 게 주류회사예요. 계속 술에 취해서 살았어요. 마시면 2차, 3차 가게 되고, 취해서 새벽 3, 4시에 집에 들어갔죠. 술을 싫어하진 않았지만 강압으로 죽자 살자 마시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그렇게 주중을 보내면 주말에 피곤해서 잠만 자잖아요. 제 시간이 없더라고요. 대부분 직장 생활이 그렇다고 들었지만 막상 해보니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민을 알아본 건가요?

잠깐이지만 대학생 때 영국에서 외국 생활해본 것도 있고, 한 번 나가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리고 다른 큰 이유는 사실 로스쿨에 가고 싶었어요. 근데 술만 먹으니 로스쿨 입학시험 공부가 되겠어요? 그리고 로스쿨이 비싼데 영주권자에겐 싸다는 정보를 얻었어요. 그래서 이민 갈 수 있는 나라를 알아봤죠.


-한국에서 영주권을 받아서 가신 거죠?

회사 경력(인사 부문)으로 독립기술이민을 지원했어요. 나이, 학력, 성적, 가족 여부, 직장 경력별로 점수가 있는데 저는 30세 싱글이라 무난했어요. 제일 중요한 게 영어 실력 증빙이었는데, 영어시험 대신 캐나다 대사관에서 인터뷰를 보고 그 자리에서 승인 도장을 받았어요. 영주권 신청하고 1년 만에 받은 거예요.


-영주권 받고 바로 캐나다로 가셨나요?

당시 영주권 받으면 1년 안에 입국해야 해서 2002년에 캐나다에 갔어요. 근데 두산에서 더 일을 하게 돼서, 한국 돌아가서 재외국민으로 회사를 더 다녔어요. 2004년 법이 바뀌어서 거주기간 2년을 채워야 했을 때 다 정리하고 토론토로 이주했어요.


-많은 지역 중에 토론토를 결정한 이유는 뭔가요?

보통 선택지가 토론토, 밴쿠버인데 제 성격이 많이 꼼꼼한 편이에요. 이민 준비할 때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 정보를 많이 알아봤어요. 밴쿠버가 살기 좋다고는 하는데 취업시장은 썩 좋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날씨가 좋지만 우기가 있어서 비도 많이 오고요.


돈이 조금 있으면 시골 가서 슈퍼마켓이나 세탁소를 할 수 있는데 젊은 사람은 직장을 구해야 하니까 토론토로 정했죠. 정착해보니 캐나다 경제의 허브라 한국의 서울처럼 활기도 넘치더라고요. 잘 선택한 것 같아요.

토론토 시내. 사진=김병철

신의 한 수가 된 부동산 공부

한국에서 캐나다 로스쿨 입학을 준비하던 이장헌씨는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UBC)과 세네카 대학(Seneca College)의 RPA(Real Property Administration; Appraisal and Assessment) 프로그램을 알게 됐다. 부동산을 공부하면 앞으로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 그는 캐나다 생활을 학생으로 시작했다. 그때의 선택이 많은 걸 바꿔놓았다.


-어떻게 부동산 공부를 선택하게 됐나요?

한국에서 로스쿨 입학 시험을 계속 봤는데 점수가 잘 안 나왔어요. 어차피 영어 공부도 해야 하니까 차라리 대학에 들어가서 영어 겸 부동산 공부를 하면 되겠다고 싶었죠. 부동산 변호사를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로스쿨 나와도 제가 외국인인데 형법 변호사를 하겠어요?


-학교 다닌 이야기 좀 해주세요.

학교를 갔는데 수업을 못 알아들었어요. 한 문장 중에 2, 3 단어밖에 안 들렸어요. 그나마 예습하면 50% 정도 이해하고요. 스스로 실망하고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한국에서 영어를 조금 한다고 생각했는데 와보니 개뿔도 아니구나. 그래서 1학기 마치고 휴학하려고 했어요. F 받으면 학점은 안 좋고 돈은 돈대로 나가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다행히 2학기를 마치니까 완전히 달라졌어요. 수업도 들리고 말도 자연스럽게 하게 됐고요. 1학기가 고비였던 것 같아요. 2학기에는 성적 장학금도 받았어요. 3학기가 되니까 이 공부가 어떤 건지 알게 됐고요. 전문직이라 캐나다 사람들도 원하는 직업이더라고요. 캐나다에도 대학 졸업하고 취직 못하는 사람이 많아요.


-정확히 어떤 공부를 하는 건지 설명 좀 해주세요.

부동산 감정평가를 배우는 거예요. 감정평가는 목적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누는데요. 저처럼 정부 소속으로 세금 부과를 위해 감정평가(Assessment)를 하는 게 있고요. 부동산 투자, 매매, 모기지(주택담보대출)를 받을 때 회사나 금융기관이 하는 감정평가(Appraisal)가 있어요. 참고로 이 프로그램은 영주권자만 할 수 있어요.


-공부가 많이 어려운가요?

중간에 낙오되거나 두 번 이상 D를 받으면 다음 학기를 쉬어야 해요. 캐나다 애들도 수업을 못 따라가는 경우가 있어요. 정원이 40명이었는데 졸업은 18명밖에 못했어요. 그중에서 MPAC으로 취업한 건 5명이고요. 저 빼고는 다 캐나다인이었어요. 나머지는 기업이나 감정평가(Appraiser) 회사로 갔어요.


-처음엔 로스쿨 준비용이었는데 그게 직업이 됐네요.

한국에서 직장생활하면서 모았던 돈, 국민연금 냈던 거 다 가지고 왔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통장에서 쭉쭉 빠져나가죠. 등록금은 한 학기당 약 2800캐나다달러(아래 달러)였고 월세는 500달러 정도였어요. 공부는 계속하고 싶은데 돈은 계속 떨어지니 불안해져요.


그래서 졸업하고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2006년 4월에 졸업했는데 운이 좋게 5월에 바로 MPAC(Municipal Property Assessment Corporation)에 취업했어요.

MPAC 동료들과 함께. 사진=이장헌 제공

캐나다에서 공무원이 되다

영주권을 가지고 도착했지만, 영주권이 모든 걸 해결해 주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이민자라는 신분은 모든 경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안정적인 직업이 좋겠다고 판단한 이장헌씨는 캐나다 공무원에 도전했다.


-공무원이라고 하셨는데,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 건가요?

MPAC라고 온타리오 주정부에 소속된 감정평가공사라고 보면 돼요. 저희가 감정평가하면 그걸 기준으로 시가 재산세를 매겨요. 저는 주정부 공무원 신분이고 공무원노조 조합원이에요. 캐나다는 공무원의 처우가 좋아요. 급여도 좋아서 취업 경쟁률도 높아요.


-많은 직업 중에 왜 공무원이 되셨어요?

안정적이라서 선택했어요. 공무원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자르지 못하니까요. 자영업을 하려면 밑천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해요. 그리고 저는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해서 사기업 생리를 알잖아요. 특히 캐나다는 실적이 안 좋으면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어요. 아무리 영어를 하더라도 저는 이민자잖아요.

 

-급여나 복지 조건은 어떤가요?

신입으로 들어오면 연봉이 대략 4만5000달러 정도 될 거예요. 급여도 적지 않고 연금 혜택도 좋아요. 퇴직 후 내가 은퇴하기 전 5년 급여의 평균치를 죽을 때까지 매달 줘요. 65세까지였던 공무원 은퇴 제도도 3년 전에 없어졌어요. 매년 업무 평가를 받고 실적이 안 좋으면 재교육은 받지만, 노조원이기 때문에 해고는 못해요. 여러 조건이 좋기 때문에 들어오면 다들 안 나가려고 하죠.


-정말 좋은 직업이네요. 어떤 일을 하는 건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레벨 1에선 현장에 직접 나가서 부동산을 확인하고 감정해요. 승진해서 레벨 4, 5가 되면 현장보다 법원 관련한 일이 많고요. 집주인이 세금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면 MPAC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요. 그러면 저희는 세금 부과 근거를 설명해주죠. 그래도 동의가 안 되면 법원으로 가는 거예요. 딜로이트나 컬리어스 인터내셔널 같은 미국계 컨설팅 회사와 법정다툼을 하기도 해서 (그쪽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많이 들어와요.


-캐나다에 비슷한 일을 하는 한국 사람이 또 있나요?

온타리오주에는 7명이 있어요. 제가 이 일을 시작하고 후배들을 끌어왔죠. 다른 일을 하다가 제 일을 보고 공부해서 한 사람도 있고요. 최근엔 이민 1.5세, 2세들도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제가 한국어로 서비스를 할 수 있다 보니 한국분들도 많이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그 전에는 세금에 불만은 있지만 영어 때문에 제기 못한 분들도 있었거든요. 교민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나름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일하면서 알게 된 한국과 다른 점은 어떤 게 있나요?

한국은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면 대리, 과장을 달잖아요. 여기는 그런 게 없어요. 저희 회사에 레벨이 5까지 있어요. 올라갈수록 업무나 책임도 달라지죠. 몇 년 지나면 레벨 2, 3이 되는 줄 알았는데 20년 지났는데 아직 레벨 2인 사람이 있어요. 알아보니 일하다가 그 위 직급 자리가 나오면 지원해서 시험, 면접도 봐서 승진하는 거예요. 아니면 은퇴할 때까지 같은 직급이에요.


처음 신입으로 들어가면 급여 욕심이 조금 나요. 저는 지금 레벨 4인데, 레벨 3까지는 3년 정도 걸렸어요. 매니저가 되면 채용 권한이 생기거든요. 그러면 한국 사람을 더 뽑을 수 있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했어요.


근데 매니저부터는 노조 자동 탈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됐어요. 2009년 세계 금융위기 때 온타리오 주정부 예산이 없어서 구조조정을 했어요. 부서 통합하면서 한 매니저는 해고됐죠. 그때 더 승진하지 않고 노조에 남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2015년 연말 MPAC 동료들과 함께한 저녁식사. 사진=이장헌 제공

7시 반 출근, 3시 반 퇴근

요즘 한국사회에서도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 바람이 일고는 있지만 막상 그 생활을 누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에 계속 남았다면 이장헌씨의 삶도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일과 개인 생활의 조화를 만끽하며 지내고 있다.


-어떻게 지내시는지 일과를 좀 설명해주세요.

오전 5시 반에 일어나요. 20분 강아지 산책하고 7시에 나와요. 출근길에 맥도널드에서 아침 사서 가면 7시 반에 일을 시작할 수 있어요. 출퇴근 시간을 오전 7시 반부터 9시 사이에서 30분 단위로 정할 수 있어요. 엄마들은 9시를 선호하죠.


저는 오후 3시 반에 퇴근해요. 오전, 오후에 휴식시간이 15분씩 있고, 점심시간은 45분이고요. 근데 사실 시간은 유동적으로 사용해요. 현실적으로 커피라도 마시러 나가면 30분이에요. 근무 시간을 빡빡하게 확인하지는 않아요.


-퇴근은 정시에 하시나요?

오후 3시 반 되면 칼퇴근해요. 안 하면 돈으로 줘야 하거든요. 그래서 오후 시간을 다 쓸 수 있어요. 운동하거나 은행도 가고, 영화관도 가고. 그렇게 해도 오후 6, 7시예요.


캐나다 사람들은 안 그러는데 저는 집에서도 가끔 일하는 편이에요.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해서 마감이 있는데 일을 못 끝내면 머릿속에 남아서 신경 쓰이거든요. 잠은 밤 10시 반, 11시에 자요. 주중엔 술도 잘 안 마셔요. 한국에선 날마다 마셨는데 여기선 이게 익숙해서 금요일이나 마시고요. 평소엔 밥 먹으면서 와인이나 한 잔 마시죠.


때때로 한국 돌아가고 싶다고 느끼는 게, 퇴근하고 재미가 없어요. 스트레스가 없다고 해도 소주 한 잔 생각날 때가 있잖아요. 한국에선 동창도 부르고 직장 후배 강제로 데려가기도 하잖아요.(웃음) 근데 캐나다 애들은 끝나면 다 집에 가요. 미안해서 얘기를 못 꺼내요. 혼자 펍에 가서 홀짝홀짝 마시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생각도 하게 되죠.


-문화 차이로 겪은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신입 시절 매니저가 퇴근할 때까지 2~3시간 더 있었어요. 제가 계속 똑같은 시간에 있으니까 매니저가 ‘왜 집에 안 가냐’고 물어봤어요. ‘너가 안 가서 기다렸다’고 하니까, 제가 집에 안 가면 ‘수당을 줘야 한다’고 집에 가라고 하더라고요. 그 이후부터 집에 바로 갔어요.


-시간 날 때는 보통 뭐하면서 지내세요?

영화를 좋아해서 매주 화요일마다 영화관에 가요. 3시 반에 퇴근해서 가면 딱 시작하거든요. 또 화요일은 영화표가 반값이라 7달러예요. 그 영화관에서 한국영화도 많이 하고요.


주말엔 주로 하이킹을 가요. 브루스 트레일이라고 800km 코스가 있는데 군데군데 돌아요. 드라이브 좋아해서 근교로 사진 찍으러도 가고요. 많이 다녀요. 퇴근하고도 근교 드라이브해서 맥주 한 잔하고 돌아와요.


-캐나다에서 살면서 제일 좋은 점은 뭐예요?

제 시간이 많다는 거요. 일이 일순위가 아니기 때문에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거의 없어요. 그리고 나이 들어도 원하면 공부할 수 있는 시스템이에요. 캐나다 직장인들 저녁 수업 들으며 공부하는 사람도 많아요. 공부하면 정부가 세금 감면도 해줘요.


공부 못했다고 취직을 못하지도 않아요. 이력서에 나이, 성별, 학력도 안 적잖아요. 나이 때문에 떨어뜨렸다면 바로 소송 걸려요.

토론토 시내. 사진=김병철

한국에선 안 되지만 캐나다에선 되는 것들

캐나다는 땅이 넓고 자원이 많아 경제적으로 풍요롭다. 여기에 서양의 민주주의 전통과 유럽의 복지, 미국의 경제 시스템이 더해졌다. 한국과 캐나다를 모두 경험한 그에게 캐나다가 어떤 나라인지 물어봤다.

 

-캐나다에서는 되는데, 한국에서는 안 되는 것이 있을까요?

정치권이 시민과 거리감이 없어요. 예를 들어 세금이 너무 많다고 민원을 내면 국회의원을 쉽게 만날 수 있어요. 한국에서 이런 이유로 국회 찾아가서 의원 만나는 게 쉽겠어요? 캐나다에선 이메일 한번 보내면 다음날 연락이 와서 약속을 잡아요. 민원 피드백이 바로 와요. 그걸 보고 이게 정말 민주주의라고 느꼈어요.


세금뿐만 아니라 도로 공사 때문에 장사에 지장이 있어서 민원 넣으면 바로 ‘언제까지 한다’고 설명이 와요. 민주주의 경험이 100년이 넘게 쌓이니까, 시민들이 쉽게 얘기하고 피드백도 바로 와요.


-회사에서 느끼는 다른 점은 뭐가 있을까요?

한국과 직장 문화가 다른 건, 일이 일순위가 아니라는 점이에요. 안전과 가족이 최우선 순위예요. 일은 그다음이고요. 가족이 아프다고 하면 매니저가 일은 다 멈추고 집에 가라고 해요. 한국은 일이 가족보다 우선이잖아요. 마인드가 달라요. 일은 못하면 나중에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아빠의 전쟁’이라는 한국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아빠가 하루에 일하는 시간이 9시간 이상인데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6분이래요. 커피 마시러 가도 10분은 걸리는데, 커피 마시는 시간보다 적은 시간을 아이와 보낸다? 동료들에게 얘기했더니 ‘그렇게 사는 나라가 있냐’면서 아무도 안 믿어요.


캐나다에선 상상도 못 하거든요. 일하는 시간은 하루 8시간으로 고정되어 있고 그 나머지는 다 가족과 보내요. 24시간 중에 8시간만 나와서 생활하고 나머지는 가족과 함께 하는 거죠. 휴가도 보장되어 있고요.


-한국에선 안 되는데 캐나다에선 가능한 이유가 뭘까요?

제 생각엔 마인드 자체가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캐나다에선 일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가족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예요. 더불어 유럽처럼 복지 제도가 잘 정착되어 있어서 직업이 없을 때도 두려움이 없기 때문일 거예요. 재취업할 때까지 최소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실업 급여가 나오니까 일보다는 내 건강이나 가족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사는 것 같아요.


한국은 6.25 한국전쟁으로 무너진 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해 우리 부모 세대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죠. 그 시대에는 ‘국가가 없으면 나도 가정도 없다’는 생각에 일에만 시간을 투자한 거예요. 그리고 군대 문화가 직장 문화에 고스란히 흡수되면서 일하는 사람이나 가족 구성원들조차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생활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라가 개방되면서 사회가 점점 바뀌어 가는 것 같아요. 이제는 일도 중요하지만 나와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거죠.


-복지가 좋은 만큼 세금을 많이 내는 거죠?

제가 작년에 8만8000달러로 세금 신고를 했어요. 물론 누진세 적용이긴 하지만 과세 표준이 높아 세금을 38% 정도 내요. 거기에 노조비, 연금을 빼면 실질적으로 받는 건 소득의 약 60%라고 보면 돼요.


캐나다는 세금을 많이 떼서 없는 사람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정책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어요. 경제가 안정돼서 세금을 많이 내도 물가가 요동치지는 않아요.


-연금 같은 복지는 잘 되어 있죠?

연금 급여액이 많지는 않고 생활할 정도 나온다고 해요. 기초연금(OAS)도 나오고요. 자원이 많은 나라니까 망할 일이 없죠. 한국처럼 연금 기금이 고갈될 일이 없어요.


그리고 캐나다는 건강보험이 있어서 의료비가 전혀 안 들어요. 약값만 내요. 한국 사람들이 캐나다 이민을 선택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무상의료예요. 대신 병원에서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게 단점이에요. 그래서 미국으로 병원 가는 사람도 있어요.

토론토 감정평가원 구성원들과 함께한 저녁식사. 사진=이장헌 제공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람들

토론토엔 수많은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함께 살고 있다. 고유한 색은 약하지만 다채로운 빛은 강력한 나라. 캐나다의 진짜 매력은 바로 ‘다양성’이다.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산다’고 하셨어요.

처음 토론토에 왔을 때 지하철 타고 깜짝 놀랐어요. 책에서 다민족 국가라고 했지만 예상한 것보다 너무 많아서요. 와 이렇게 섞여있을지는 몰랐어요. 토론토 다운타운 가면 백인 국가에 산다는 느낌을 못 받아요.


영어가 아닌 한국말, 중국말로 얘기한다고 시비 걸거나 낮게 보지도 않아요. 한국은 동남아 사람을 조금 우습게 보지만, 저는 아프리카 흑인, 동남아 사람과도 일해요. 처음엔 교육 수준이 낮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더라도 여기서 살다 보면 바뀌어요. 13년 생활하니까 그런 게 자연스럽게 배어져요.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될 정도로 미국중심주의가 강한데 캐나다는 시리아 난민도 많이 받잖아요. 둘 다 이민자 국가고 바로 옆 나라인데 왜 이렇게 다를까요?

정책이 달라서 그렇다고 해요. 미국은 미국화 되지 않으면 영주권을 주지 않아요. 군대에 갔다 오면 시민권을 주잖아요. 캐나다는 이민자에게 정체성 유지를 보장했기 때문에 그 민족성은 그대로 남아 있어요. 스포츠 응원을 보면 쉽게 구별이 돼요. 미국에선 미국팀 응원이 엄청난데, 캐나다에선 자기 출신 나라팀을 응원해요. 캐나다라는 정체성을 강조하지는 않아요.

토론토 한 교회에 붙어있는 현수막. 사진=김병철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성경 구절과 코란(이슬람교 경전)의 구절이 함께 적혀있다. 사진=김병철

-캐나다도 이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요?

예전보다 많이 어려워졌어요. 이민 정책도 자주 바뀌고요. 그래서 이민을 생각한다면 전문 기술을 공부하는 게 나을 수 있어요. 경험상 정착을 가장 빠르게 할 수 있는 건 현지에서 공부를 다시 하는 거예요. 4년을 다닐 필요는 없어요. 캐나다 대학(2년제 College)은 직업을 위해 다니는 곳이라 대부분 취업이 돼요. 4년제 대학을 나온 애들도 취업을 못해서 다시 2년제 대학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아는 후배는 스시가게를 하려고 취업했는데 일이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지금은 졸업해서 괜찮은 직장에 취업했어요. 그 순간은 긴 것 같지만, 당장 돈을 버는 것보다 공부를 다시 하는 게 장기적으로 나을 수 있어요.


그렇다고 캐나다 일자리가 넉넉한 건 아니에요. 실업률이 높은 건 아니지만 여기도 취업 못하는 사람들 많아요. 그리고 한국과 다르게 정규직이라는 개념이 적어요. 투잡(Two Job), 쓰리잡(Three Job)이 일상화되어 있어요. 시급제니까 두 가지 일을 해서 생활비를 버는 게 보편화되어 있어요.


-한국 사람이 많이 하는 직업은 어떤 게 있어요?

편의점, 식당, 세탁소가 많아요. 영어나 자본이 크게 필요 없어도 할 수 있는 업종이죠. 그리고 제일 많이 하는 게 부동산 중개인이에요. 자격증이 쉬워서 많은데, 그러다 보니 수입이 안 되는 사람도 많아요. 모기지 중개인도 자격증이 좀 쉬워져서 많이 하고요.


-한국에서 이민을 고민하는 분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나요?

한국은 요즘 많이 시끄럽잖아요. ‘헬조선’이다. 취업도 어렵다. 근데 마냥 외국 생활이 좋아 보이고 잔디밭 있는 이층 집만 동경하고 나오면 장담하건대 정착에 실패해요. 지금도 한국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이민 오려는 분이 많은데, 그분들이 영주권 따기도 어렵고 따더라도 한국보다 넉넉하게 생활하는 분 많지 않아요.

 

여기 오면 한국에서 쌓은 모든 걸 다 버리고 주류사회와 경쟁해야 해요. 모든 면에서 한국보다 불리해요. 나이가 어리면 다시 도전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한국에 돌아가기도 힘들어져요.


근데 나와보면 한국이 정말 좁다는 걸 알게 돼요. 그래서 좀 더 넓은 시각과 마인드로 살아보겠다는 사람은 나와서 도전하는 것도 괜찮아요.


-이장헌님에겐 한국이 어떤 나라였나요?

바쁘고 술도 많이 마시는 나라?(웃음) 내 가족, 친구들이 살고 있는 따뜻한 나라라는 생각은 들어요. 근데 내가 평생 살기에는 내 개인적인 삶을 너무 희생할 것 같은 나라예요.


외국에 나오면 정말 더 애국자가 돼요. 지나가다 태극기만 봐도 마음속에서 뿌듯함이 끓어오르는 걸 느껴요. 더구나 한국이 못 사는 나라가 아니잖아요. 캐나다 사람들도 한국이 잘 살고, 열심히 일하는 걸 알거든요. 그런 걸 얘네한테 들으면 자랑스럽죠.


-캐나다로 이민을 추천하시나요?

개인적으로는 추천해요. 가끔은 세금이 너무 세서 미국으로 갈 걸 그랬나하는 생각도 들어요. 뉴욕주 버펄로에 가서 물건을 사면 세금이 5%라 훨씬 싸거든요.


그런데 치안이나 아이를 키우는 부분이나, 여러 가지를 보면 캐나다가 훨씬 더 안정적이죠. 인종도 다양하고 의견도 잘 수렴하고요. 캐나다는 미국의 자본주의 시스템과 유럽의 복지 시스템이 공존하는 곳이에요.


또 중립적이라 어느 나라도 캐나다를 싫어하지 않아요. 전쟁에도 참여하지 않고요. 이민을 할 거라면,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캐나다로 이민을 해서 후회하지는 않을 거예요.

토론토CN타워. 사진=김병철
토론토CN타워에서 바라본 온타리오 호수. 사진=김병철
토론토에서 가장 오래된 한인타운인 블루어 스트리트(Bloor St). 사진=김병철
토론토 나이아가라 폭포. 사진=김병철
붉은 화살표가 있는 곳이 토론토다. 이미지=구글맵스 캡처

[캐나다]

- 기본 정보

o 인구 : 약 3598만명

o 면적 : 997만㎢ (세계 2위, 한반도의 약 45배)

o 유럽계 백인 약 80%, 여타 지역 유색인종 20%

o 언어 : 영어, 프랑스어(연방 공용어)

o 영어 사용자 68%, 프랑스어 사용자 12.5%, 영어·프랑스어 사용자 17.5%

o 종교 : 가톨릭 43.6%, 개신교 29.2% 등

o 동포 : 22만4000명(2015년)

출처 : 외교부 


- 이민 정보

o 캐나다 이민부

o 주캐나다 한국대사관 이민정보

o 2017년 이민정책 보고서

-캐나다 정부는 이민자를 2018년 31만명, 2019년 33만명, 2020년 34만명(현 캐나다 인구의 1%)으로 확대할 계획


-수용 예정인 이민자는 크게 경제이민(58%), 가족이민(27%), 난민(14%)


-특히 유학생과 캐나다 노동시장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고급 노동인력의 이민을 장려할 계획


-기존 이민 쿼터보다 연간 2,000명 이상 추가 수용하는 ‘대서양 이민 프로젝트(New Atlantic Immigration Pilot Program)’를 연장: 뉴펀들랜드,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 노바스코샤, 뉴브런스위크


글쓴이의 한마디 : 저희가 만난 분들의 이민 이야기는 그분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다른 방식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과 비교하지도 말고, 함부로 재단하거나 동경(혹은 훈계) 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저 사람은 저런 선택을 했구나’라는 정도의 시각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행복을 찾아 한국을 떠난, 이민자 11팀의 정착 이야기가 담긴 저희 책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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