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보 엔진을 달고 직진하는 스포츠카
나의 30대는 그랬다. 그녀가 본 나는 앞뒤 재거나 따지지 않고 '옳다고 믿는 일'에 혹은 '정의롭다고 여기는 일'에 불같이 뛰어드는 사람이었다. 두려울 것 없이 직진했고, 상처 따위 겁내지 않고 목표를 향해 돌진했다. 물론 그게 화가 되어 돌아오기도 했지만, 그런 진통을 겪으면서 성장했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였다. '관계 거리두기'를 무시한 덕분에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지독한 인간 바이러스에 감염되기도 했다.
파주에서 매일 성찰하는 시간을 보냈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지치게 만들었을까. 왜 나는 누군가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미워하게 된 걸까. 세상 무서울 것 없던 나는 왜 겁쟁이가 되었을까. 매일 똑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결론은, 모든 게 다 내 잘못이더라.
터보 엔진을 달고 직진했다. 미처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 직진했고, 무슨 일이든 다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 하나로 전진했다. 가끔 브레이크 잡으면서 백미러도 들여다봤어야 했다. 혼자 내달린 덕에 따라오던 동지들은 지쳐 떨어지거나, 방향을 달리하거나, 아예 달리는 것 자체를 포기하기도 했다. 그땐 몰랐다.
파주의 사계절은 느릿느릿, 하루가 다르게 변했다. 흙빛이었던 논바닥이 연둣빛으로 변하더니,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온몸으로 마주하면서 초록빛으로 바뀌었다. 벼이삭이 알알이 익어가면서 노란빛으로 물들더니, 추수가 끝나고 다시 흙빛의 논바닥이 드러났다. 파베리아에 부는 찬바람과 함께 폭설이 내리던 날엔, 창밖에 논이 커다란 백설기로 보였다.
자연은 느긋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나를 용서하고, 누군가를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가끔 위태롭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말했다. 기회가 있을 때 종종 말을 건네기도 했지만, 당시 나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상태였다고 했다. 파주에서 홀로 걷는 나를 보면서 이젠 이야기를 해도 되겠다 싶어 멀리 나를 보러 왔다고 했다.
같이 일해보자고 손을 내밀었을 때 그녀는 흔쾌히 내 손을 잡아줬다. 오늘에서야 알았지만, 그녀는 새로운 일을 함께 도모할 수 있을 거라는 부푼 꿈에 마음이 설레었단다. 협동조합에 모인 독특한 인물들이 각자의 전문성을 살려 함께 멋지게 일을 해내는 꿈...
지역사회 안에서 뜻있는 공동체, 살고 싶은 마을을 함께 만들어가고, 우리의 시선으로 마을의 삶을 기록하고, 미디어를 잘 읽어내고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을 키워내는 활동을 하는 게 우리의 목표였다.
네 시간 쉬지 않고 이야기 나누면서 문득 '다시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겁난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겁내는 게 당연한 거라고 위로해줬다. 회초리와 토닥토닥을 아주 절묘하게 꺼내 드는 그녀 앞에서 난 언제나 온순한 강아지가 된다.
새로운 사람을 조직에 끌어들여볼까, 초심으로 돌아가 판을 벌려볼까, 협동조합에서 협동이란 무엇인지 다시 공부해볼까... 그런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다음을 기약하고 손을 흔들었다. 이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끄적끄적 글로 남긴다.
그녀는 고마운 사람이다.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사람, 살리는 사람.
잘 도착요~ 제가 힘 받아 왔어요.
다시 찬찬히 해보아요.
그대는 가진 것이 많으니 걱정 마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