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춤추는 것도 잠시
시어머님이 내려가셨다. 딸아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4학년 겨울방학까지 꼬박 4년을 돌봐주셨다. 일하는 며느리 집안일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모든 살림을 맡아주셨다. 덕분에 하고 싶은 건 다 해봤다. 문화공간 만들어서 재밌는 활동도 해보고, 협동조합 법인 만들어서 사업도 시작했고, 대학원 졸업했고, 여행도 실컷 해봤다.
정말 이기적인 며느리였다. 이기적인 아내였고, 이기적인 엄마였다.
딸아이는 엄마가 곁에 없는 시간 동안 너무 많이 자랐다.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고 부비던 꼬마 아이였는데, 어느새 고개를 떨구지 않아도 눈 맞춤이 가능할 정도로 키가 자랐다. 아이가 자고 있을 때 집을 나서고, 깊은 밤 잠이 들고난 후에 들어가는 날이 허다했다. 딸아이와 통화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엄마 언제 와?"라는 말이었다.
파주로 이사하고, 신변을 정리하느라 또 1년을 바쁘게 지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아이에게 집중했다.
딸아이는 무언가 집중할 때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시력이 나빠져서 안경을 껴야 했고, 이가 많이 썩어서 치과에 가야 했다. 딸아이 옆엔 다정한 아빠가 있고, 사랑으로 잘 챙겨주시는 할머니가 계시니 엄마가 잠깐 자리를 비워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니, 괜찮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괜찮지 않았다. 괜찮을 리 없었다.
선생님께 허락을 구하고 한 달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교외 체험학습 신청을 하고, 겨울방학까지 붙여서 석 달을 함께 뒹굴었다. 아이는 점차 손톱을 물어뜯지 않게 됐고, 엄마가 집에 들어오는 시간을 체크하지 않게 됐다.
지난 4년, 정말 즐거웠다. 내 남은 인생에 다시 이런 날들이 펼쳐질까 싶을 정도로 행복했다. 매일 도전했고, 새롭게 마주하는 모든 일에 감사했다. 꿈같은 나날들 속에서 자유롭게 춤을 췄고, 훨훨 날아다녔다.
잠시 멈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았다.
다시 시작,
내가 앞으로 걸어야 할 길 앞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