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점점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매주 월요일 저녁 8시, 우리는 저녁 먹은 설거지를 끝내자마자 고무장갑을 벗어 던지고 아파트 무인 택배보관소에 모인다. ‘경기도 공동주택 공동체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준비해야 할 일에 관한 회의도 하고, 각자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읽고 요약해서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기도 하다. 회의, 독서모임... 사실 이런 건 다 핑계다. 슬리퍼 끌고 나와 상쾌한 밤공기를 마시며 수다 떨 수 있는 동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그 짜릿한 기분! 우리가 야밤에 드라마를 포기하고 모이는 이유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그 기분을 알랑가 몰라?
지난 7월, 우리 아파트 작은도서관 초대 관장이 된 ‘호랑’은 주민들과 함께 에세이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마을학교 운영에 참여할 주민강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냈는데, 호랑이 가장 먼저 신청서를 작성해 보내왔다. 그녀는 국공립 어린이집과 직장보육어린이집에서 10여 년간 교사로 근무했고, 아들 태우를 낳고 키우면서 쓴 육아 에세이 <선생님도 육아는 처음이라서 : 자신만만 보육교사의 좌충우돌 육아 입문기>를 출간한 작가였다.
신청서를 열어보고 바로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다. 아파트 카페테리아에서 만나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으로 호랑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호랑은 직장을 그만두고 태우 육아에 전념하고 있으면서도, 어떻게든 틈을 내서 자기 계발에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이었다. 첫 번째 에세이를 출간한 이후 두 번째 책을 준비하면서 글쓰기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는 호랑에게 북토크를 진행해보자고 제안했다. 책 주제가 ‘육아’이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거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에세이 작가가 되고 싶은 주민들을 대상으로 에세이 글쓰기 강좌를 운영해보자고도 말했다. 호랑은 자신이 쓴 책으로 진행하는 북토크도 처음이었고, 성인 대상 강의를 진행해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강의계획서를 작성해 보내달라는 요구에 몇 날 며칠을 고민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본인이 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2023년 6월 17일 토요일 아침, 아파트 카페테리아에서 호랑 인생에 첫 번째 북토크를 열었다. 북토크 진행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인 메이플이 맡았다. 이날 북토크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장면은 돌이 안 된 아기를 안고 참석한 부부였다. 아파트에 이사 와서 공식적인 첫 나들이가 바로 북토크였다. 행사를 준비한 드림커뮤니티 회원들은 들뜬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북토크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글쓰기 모임을 이어갔다. 그게 몇 사람이든 동아리를 조직하고 운영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은데, 호랑은 모두를 살뜰하게 챙겼다. 며칠 전엔 시어머님이 담근 알타리무김치, 친정엄마가 담근 알타리무김치를 두 봉지에 나눠 담아서 우리집 현관문에 걸어놨다. 김치 옆에 붕어빵 두 마리도 함께...
“문고리에 걸어뒀어요! 붕어빵도 따뜻할 때 드세요.”
에세이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는 주민들이 틈날 때마다 쓴 글을 모아서 책을 출간하기로 했다. 핵심 주제는 ‘공동체 활동과 나의 변화’로 정했고, 전체적인 맥락과 통일성, 연결성을 고려해 다섯 개의 소주제를 정했다. 첫 번째 이야기는 나를 소개하는 글을 써보기로 했다. 우리는 각자 써온 글을 돌아가면서 낭독했다.
나르샤는 엄마 배 속에 있을 당시 아버지께서 국민학교 교사로 근무하셨는데, 아내의 임신 소식을 듣고 ‘박봉에 아이 셋을 키울 자신이 없다’며 아내와 함께 산부인과를 찾게 되었다고 한다. 하늘이 도우셨는지 ‘임신이 아니다’라는 의사 선생님의 오진 덕분에, 나르샤는 1977년 7월 7일 7시 세상과 마주할 수 있었다. 세상에, 7이 다섯 개? 그는 행운의 싸나이인가?! 나르샤는 가정에서, 일터에서, 동아리에서 다양한 모습의 페르소나로 변신하며 사는 자신의 모습을 글로 담담하게 풀어냈다. 사진을 잘 찍는 나르샤는 아파트 잔디광장에서 열린 마을축제에서 주민들 가족사진을 촬영하고 인화해서 선물해줬다. 단짝 싸이먼과 함께 자원봉사로!
룰루는 첫 문장을 읽을 때부터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금방 눈시울이 붉어지고, 미간에 주름이 잡히더니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결혼 전에 일하던 호텔로 재취업을 하게 되면서, 근무하는 시간 동안 떨어져 지내야 하는 다섯 살 아들 지호가 걱정돼서 흘리는 눈물이었다. 아이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울먹이며 글을 읽어 내려가는 룰루 때문에 나도 괜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떻게든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내 얘기를 꺼냈다.
“육아휴직 끝나고 복직하면서 기저귀 한 보따리 안고, 17개월 된 딸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야 했어요. 걸음마가 늦어서 잘 걷지도 못했거든요. 매일 어린이집 앞에서 엉엉 울면서 생이별했어요. 근데 열두 살이 된 지금은 혼자 있는 게 더 좋다고, 엄마 일하고 늦게 와도 된대요! 지호도 아무렇지 않게 잘 받아들일 거예요. 일하는 엄마 멋지잖아!”
다들 얼마나 성심성의껏 글을 잘 써왔는지, 속으로 깜짝 놀랐다. 눈물까지 왈칵 쏟아내는 룰루, 타인에게 자신을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는 고백을 동네 사람들 앞에서 하게 된 나르샤를 보면서 우리 마음의 거리가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겐 이웃들이 보물이다. 제대로 찾았다. 보물!
*이 글은 2023년 11월 7일 업데이트한 버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