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 임민아 Sep 05. 2022

태풍이 온다, 아빠가 생각난다.

2003년 기장에서 매미, 2022년 파주에서 힌남노

태풍 매미를 떠올린다.


2003 9 늦은 저녁, 군대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자친구가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갔다.  남친이 지금  남편인데, 컨테이너가 둥둥 떠내려가는  보면서 집에 갔었다고…(옆에서 말해준다.) 시어머님도 그때 얘길 종종 하시는데, 우리 아들 다시는 못 보는 줄 알았다고 말씀하시면서 웃으신다.


부산 기장 온정마을, (내 기억엔) 이름처럼 따뜻하지 않았던 마을. 태풍 매미가 온정마을을 덮친 날, 밤새 빗물과 바닷물이 뒤섞여 집안으로 들이쳤다. 2층 거실은 한쪽이 바다로 향하는 통창이었는데, 태풍에 활처럼 휘어지면서 그 사이로 물이 마구 쏟아져 들어왔다.


남자친구에게 ‘정말 사랑했었다’고 말할 걸… 그날이 마지막인 줄 알았다. 비바람과 새카만 어둠이 모든 걸 집어삼켰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날이 밝고 비바람이 그쳤다. 바다에서 날아온 물고기들이 마당이 널브러져 있었다. 초록빛 잔디와 나뒹구는 물고기, 해초와 쓰레기까지 난장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태풍 매미는 그렇게 내 인생을 제대로 할퀴고 갔다.




우리 집은 바다에서  300미터 떨어진 곳에 지어진 전원주택이었다. 엄마도, 나도, 동생도 반대했지만, 결국 아빠 뜻대로 바닷가에 집을 짓고 살았다. 20대 초반이었던 나는 늦게까지 데이트도 하고 싶었고, 대학 동기들과 매일 신나는 밤을 보내고 었다. 피가 뜨거워 펄펄 끓는 내게 아빠의 시골마을 전원주택 로망은 달갑지 않았다.


매번 버스 막차시간 맞추느라 소주잔을 들었다가 그냥 내려둔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왕복 두 시간 거리를 매번 데려다줘야 했던 남자친구 얼굴이 썩어가기 시작했다. 그 표정을 들키는 날엔 서운한 마음에 토라져서 며칠간 말도 안 했다.


마을 앞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188 버스를 기다리면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빨리 독립해서 나가 살겠다고


매미가 지나가고 3년을 그 집에서 더 살았다. 2006년 결혼했고, 기장을 떠난 정도가 아니라 부산을 떠나 경기도 부천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남자친구가 수도권으로 취직을 했고, 남편이 됐고, 난 자유를 얻었다.




그땐 몰랐는데, 아빠에겐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상실에 빠졌던 게 아닌가 싶다. 바다가 있는 구석진 어딘가로 숨고 싶었던 게 아닐까. 손에 쥐고 있던 무언가가 빠져나간 후 견딜 수 없이 외롭고 힘들었던 것 같다.


박찬욱 감독 <헤어질 결심>을 보면서 아빠 생각을 했다. 3차 관람하고, 한 달여가 지난 오늘… 난 아빠를 생각했다. 아무도 찾지 못하게, 저 바닷속에 스스로를 묻고 싶었던…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가 일기장이 되지 않도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